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다시 던지는 질문,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지도에 없지만 실재하는 나라들의 경이롭고 안타까운 이야기>>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은 지구상에서 국가들의 지정학적 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 그 배치 상태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돼왔는지, 나아가 현 상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를 탐색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대표적인 예로 든 5개의 나라아닌나라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압하지야, 아크웨사스네, 소말릴란드, 쿠르디스탄, 키리바시.

이 다섯 국가의 현재 상황들은 국가란 무엇이고 국경이란 무엇인지 에 대해, 단순한 답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는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점을 내포한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들어가며] 에서 책의 주제와는 관계없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당황스러운 문장을 만났다.

<<트럼프는 인터뷰를 했던 기자에게 중국 주석 시진핑과 대화하는 동안 "한국이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 것이다.(p.29)>>

헐... 트럼프는 정말;;; 여러가지로 할말을 잃게 만드는 사람이다.;;;


1장 <국가 체제가 지배하는 세계> 에서는 [압하지야] 에 대한 이야기 이다.

[압하지야] 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분리주의 소수민족 거주지로 국제사회가 '조지아'의 영토로 인식하는 곳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러 다닌 곳에서 내가 늘 들었던 불만은 다양한 민족 집단에게 엄연한 독립국 지위를 누린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강대국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토 문제가 불거지는 지역에서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결코 아니다. (p. 41)>>

 

압하지야 는 고유의 언어가 있는 독자 문화권으로,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엄연히 주권이 있는 왕국으로서 존재했다고 한다. 그뒤 조지아, 오스만제국, 러시아의 통치를 받으며 半자치 체제를 갖고 있었는데, 공산주의가 러시아를 통치하던 시대에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의 자치 공화국으로 지정받았었다가, 1991년 조지가 가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벌어진 유혈 내전에서 압하지야의 자치는 막을 내렸고, 현재 압하지야를 향한 조지아 와 서구 세계의 대체적인 평가는 이곳이 러시아가 점령한 괴뢰 국가라는 것이다. 압하지야 인들은 자국 영토에 주둔하고 있는 수많은 러시아군을 조지아 공격을 막기 위한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조지아나 러시아로 재병합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는 더이상의 새로운 국가의 출현을 원하지 않는다.


무주지, 현대국가 영토와 고대 정부와의 정치적 무연속성, 베스트팔렌 체제, 민족주의, 발견자우선주의, 민족자결주의 등 국가가 형성된 역사를 되집어 보면 현재의 국가과 국경선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혼돈에 빠진다.


<<전후 몇 년 동안 UN 회원국 자격은 국가 지위의 황금률이 됐다. UN 회원국 자격을 받았다는 것은 전세계 국가 공동체에 실제로 속한다는 '공인증명서'였다. 창설 당시 UN 회원국은 51개국 이었다. 그 후 회원국이 약 200개로 늘어난 과정은 탈식민지화, 즉 역사상 가장 큰 흐름으로 존재했던 '건국'의 이야기다. (p. 70)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신생국들은 윌슨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 제시한 것처럼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분포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토 국가로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과거 유럽 식민지에 그려졌던 국경을 기반으로 국가가 된 것이었으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탈식민지화의 물결로 당시 제3세계라고 불리던 지역에 수십 곳의 신생 독립국이 탄생했지만, 이 나라들은 수십 년 전 베를린이나 파리에서 유럽 열강이 그려놓은 국경선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이렇게 그려진 국경선은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과 의논 한 번 없이 확정됐지만, 이제 개발도상국이라 불리게 된 이 신생국가들의 정부는 1945년 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그 당시의 국경을 유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p. 73)>>

 

현재 국가들의 건국과 국경선은 시작부터 이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들에 의해 그어진 국경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곳저곳에서의 작은 독립국들의 요청은 여전히 강대국들에 의해 묵살되고 있다. 압하지야 도 그런 작은 곳이다.


<<냉전 시대에 기원을 둔 장구한 내전 끝에 1993년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2002년에는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했으며, 2011년에는 남수단이 수단으로부터 독립했다. 세계지도는 이제 정체 상태로 돌입했고 이후 변화 없이 유지됐다. 지도에 더 이상의 조정을 가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이해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경선 변경에는 살상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국을 놓친 나라들에게 정체 상태는 가혹한 처사다. 이라크건 우크라이나건 캅카스건 간에 국경 유지는 그 자체가 바람직한 선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국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압하지야 같은 지역들이 탈퇴한 유사국가 이상이 되려면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1990년대 초반까지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면, 그런 집단의 운은 다한 셈이다.(p. 74)>>

 

크게는 세계대전 이후 작게는 소련의 해체 이후 국가들이 생겨났고 국경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개의 나라들이 생겨났다. 다만 그 나라들은 여전히 분쟁중이거나, 그 나라들을 보며 다른 지역에서 독립의 열망이 생겨나고 있어서 계속 작은 독립국들의 생성을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작은 독립국의 국가 인정은 독립에서 그치지 않고 인종청소로 이어져왔다는 문제가 있다) 그저 '유지' 만 하고자 하는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애초에 잘못 그어진 국경선인 것을 어째야 할런지...


영토는 있으나 주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압하지야 대비 영토가 없어도 주권을 인정받고 있는 '몰타기사단' 이 있다. 전에도 몰타기사단 관련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일종의 봉사단체로서 그 역사성이 주권까지 만들어낸 특이한 집단이었다. 몰타기사단 의 예가 신생독립국을 원하는 압하지야에게 답을 줄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2장 <나라들 사이에 끼인 나라> 에서는 [아크웨사스네] 를 다룬다.

[아크웨사스네] 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에 걸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 성격의 정치체이다. 역사적으로는 미국과 캐나다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곳이지만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곳이다.


아메리카 를 신대륙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사람도 아닌데 인디언이라고 불리며 원시종족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는 원래의 주민들은 캐나다 와 미국 이곳저곳에 작은 공동체 마을에 잔존해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아크웨사스네' 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라 더욱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집에서 회사까지 오고가려고 해도 미국의 승인 캐나다의 승인을 매일 같이 받아야 하는 곳인데, 주민들은 아크웨사스네 자치여권을 한번쯤 들이밀어 보고 거부당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는 그런 애매한...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현대 국가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사회의 "가독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의 가독성을 높인다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사회가 특정 지역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일원화한다는 뜻이다. 현대 국가는 안정적이고 설명하기 쉬운 국민, 질서정연하고 획일적인 체제를 선호한다.

오늘날 인디언 국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민권 및 영토의 가독성에 대한 도전이다. (p. 125)>>

 

사실 인디언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할 것 같다. 먼저 살고 있었는데 일방적인 침략을 당했고, 뒤늦게 국가를 세워보려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상대가 미국이니만큼 가능성이 없어보여서 더 안타까운 노릇이다. 영화에서 보는 인디언들만의 문화는 독특하면서도 약간 신비스러운 면이 있다. 그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해주기만 해도 굳이 국가로서 독립을 주장하지 않을 것도 같은데, 캐나다에서나 미국에서나 인디언 원주민들의 생활은 몹시 열악하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체제가 이미 있으나 주권이 없는 아크웨사스네 를 마무리 하며 저자는 '에스토니아'의 전자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는 전자 시민권을 제공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국가이다. 사실 그 시민권이 딱히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그런 정도의 권리라도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는걸까?


3장 <보이지 않는 국가> 는 [소말릴란드] 에 대한 이야기 이다.

[소말릴란드] 는 소말리아 북부의 半자치 지역으로서, 국가로서의 요소를 제대로 갖췄는데도 국제사회에서 묵살당하고 있다고 한다.


<<소말릴란드는 어딘가에 있는 곳인 동시에 아무데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 주된 이유는 세계의 다른 대부분의 지역이 이곳을 모르거나 이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p. 144)

국가의 지위는 법적 개념이지만 이를 얻는 일은 전적으로 정치적 과정이다. 어디가 국가이고 어디가 국가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확정하려는 시도는 무엇이건 간에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 (p. 147)​>>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의 북부지역이다. 해적과 내전으로 유명한 소말리아는 남부지역이다. 남부지역과 달리 북부지역은 비교적 오랜 기간 안정적 체제를 유지해왔지만,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원래 독립국이었으나 식민지배를 당했다가 독립하면서 남북 지역이 합쳐져 소말리아가 됐고 이 두 지역의 통일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소말릴란드가 마주하고 있는 실망스러운 현실은 세계지도가 국제법이나 심지어 관습보다도 경로의존성에 의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들은 현 상태를 바꾸지 않으려는 관성에 빠져 있고, 국민들은 현 상태를 바꾸는 것이 몹시 어렵고 위험을 초래하리라는, 어느 정도는 정당한 우려를 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p. 165)>>

 

아프리카에는 미국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가장 마지막으로 독립국 인정을 받은 남수단 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남수단의 분열과 내전 상황은 소말릴란드에 먹구름만 드리울 뿐이다.


<<20세기 동안 제국의 해체로 세계의 땅은 대략 200개 주권국가들로 쪼개졌고 이는 문제를 해결한 만큼 또 다른 문제를 남겨놓았다. 새로 국가가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 중 많은 수가 그 나라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문제가 그것이다. 문제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엥서 특히 극심했다. 이 지역에서는 신생국가들의 국경이 영토 자체에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과 연관을 맺고 그려진 게 아니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열강의 정치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를 세웠던 국가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과거의 국가 모두 전 세계 최대의 민족자결을 향한 윌슨의 원칙에 매진하기보다는 거의 예외 없이 기존의 국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했다. 다시 말해서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독립을 해야 하되, 일단 독립을 하면 그 이상의 국경 재편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p. 169)>>

 

아프리카 와 중동 지도를 보면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들이다. 아프리카와 아랍은 동양이나 서양보다 다양한 부족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국경을 이렇게 자대고 그은 듯 직선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분열이 일어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나라 처럼 고유한 영토와 국경을 오랜 기간 유지해 오고 있는 국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식민지 지배를 당할 때도 민족이 섞이거나 추방당하거나 국경이 무너지진 않았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중동의 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문화와 부족 관계없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와서 이제 와서 아프리카와 중동을 부족별로 국가로 인정해 줄 수도 없다.

<<소말릴란드의 인정을 통해 국제사회가 아프리카 식민지 시대 이후의 국경들을 재고중이라는 신호를 보낼 경우 앞리카 대륙 전체의 민족주의 운동에 청신호가 켜져 새로운 내전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다. (p. 180)>>


 

나름대로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국가로서의 인정을 원하는 소말릴란드는 세계의 철저한 무시 속에 그 어디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소말릴란드와 대비하여 저자는 [리버랜드] 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두 나라에게 다 별 관심을 받지 않는 지역으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사는 곳이다. 무시와 방치를 즐긴다고나 할까... 하지만 소말릴란드는 선진국들의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4장 <독립을 향한 꿈> 에서는 [쿠르디스탄] 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쿠르디스탄] 은 흔히 쿠르드 자치구라 불리는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을 말한다. 이곳은 월드 뉴스의 헤드라인데 단골로 등장하면서도 현재의 중동 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에서 계속 좌절을 맛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쿠르드족에게 로잔 조약은 서구가 저질러왔던 여러 배신 중 하나다. 서구의 배신은 쿠르드족의 현대 민족주의 운동을 규정해왔다. 쿠르드족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조약에 제시된 약속을 늘 환기시키곤 했다. ( p. 201)

오늘날의 지구상의 국경선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든 이유였다. 모든 국경에는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국경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의 시대, 골치 아픈 통념은 국경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아니다. 국경 재편이 민족 간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 되리라는 통념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IS가 등장하고 리비아, 예멘, 시리아, 이라크가 몰락하면서 이런 생각이 세를 얻게 됐다. (p. 2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시점에서 현 상태의 국경이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새 국경을 그리지 않는 것일까? 불행히 역사상 존재했던 국경 분할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를 더 많이 낳았다. (p. 231)>>

 

중동의 국경문제는 종교문제와 얽혀 있어서 더욱 복잡하다. IS 때문에 인식은 더 나빠졌고, 분리주의는 독립으로 이어지는 힘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살던 곳에서 더이상 살지 못하고 난민이 되어 떠도는 중동 사람들은 이제 무너진 국가의 의미도 국경선의 의미도 다 필요없이 그저 살던 고향에서 살고 싶은 소망만 가지고 있다지만, 그 소망은 결국 분쟁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인지라 그 해결이 점점 요원해지고 있는듯 하다.


쿠르디스탄 을 다룬 4장의 끝에 무국적자의 삶을 간략히 다루고 있다. 소련의 여권을 가지고 외국에 나왔다가 해체이후 무국적자가 되거나 동독의 소멸후 무국적자가 되거나 중동난민이 되어 떠돌다 무국적자가 되거나 사연은 다양하지만 무국적자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은 외국만 나가면 열렬한 애국자가 된다는 데 무국적이라니 도대체 상상이 안간다...


5장 < 지도에서 사라지는 나라들 > 에서는 [키리바시] 라는 섬나라가 나온다.

[키리바시] 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나라인데, 기후 변화 때문에 점점 가라앉고 있어서 '물리적 영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존속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새롭게 던지고 있는 나라 라고 한다.


키리바시는 앞의 나라들 처럼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국가로 인정받고 있기는 한데, 기후 변화에 의해 가장 먼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불운의 국가라서 언제까지 국가로 존재할 수 있을 지 알수 없는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기댈 만한 천연 자원도 거의 없고 서로 멀리 떨어진 섬들로 이뤄진 키리바시는 그 존재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이는 곳이다. 키리바시는 신생국가 중 하나로서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20세기 밀어닥쳤던 탈식민지 물결의 맨 끝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키리바시는 세계지도를 재편하는 다음번 주요 물결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정치적 경계 뿐 아니라 물리적 경계라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할 뿐더러 국가의 탄생이 아닌 소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p. 258)>>

 

영토가 없어도 주권이 있는 몰타기사단 같은 곳도 있지만, 영토가 있는 상태에서 주권을 행사하던 국가가 외국의 침략이 아닌 자연재해로 영토를 소실했을때, 그 주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바다의 제해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국민들은?


<<저자가 키리바시의 전 대통령에게 물었을때,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 나라가 세계지도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입니다. 키리바시인들은 종말이 올 때까지 여기 있을 겁니다. 우리 땅이 없어진다고요? 북극 만년설이 녹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기에다 우리를 데려다놓으시고 그런 계획을 세우셨을 리가 없어요"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p. 279)

타라와를 방문하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대부분의 키리바시 주민들이 대체로 이와 가까운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전적인 부인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무관심이 만연해 있는 것 같았따. 이곳 주민들은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섬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p. 280)>>

 

정말 놀랐다. 세계 곳곳에서 인터뷰가 오고 관찰을 하고 모두가 곧 사라질 섬이라는데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니... 어떤 대통령은 국민들을 이주시킨다며 인접국의 땅을 사기도 했지만 그 땅은 상징적일 뿐 이주계획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이래저래....


<<이 섬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경우에 일어날 일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신적 장벽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을 차단하는 주된 걸림돌이다. 키리바시는 미래에 닥칠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세계인들의 태도를 반영하는 축소판인 셈이다. 지도에서 사라지는 나라, 우리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아직 우리는 이런 소멸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p. 282)>>

 

미래에 닥칠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환경문제에서 가장 많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직 현실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망치고 있는 자연이 언제 어떻게 복수해올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가라앉을 섬나라까지는 아니지만 급속히 변화는 기후와 오염되가는 환경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줄 지 계속 이렇게 정면을 마주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다가 어떤 사태가 될지 정말 걱정스럽다.


<<확립된 지도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국제 기구와 강대국들은 지도를 현재 상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현재의 지도가 가능성 있는 대안보다 반드시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년간의 경험이 국경 재편의 파국적 성격과 위험성을 가르쳐줬기 때문이다.(p. 310)

현상을 유지하려는 논거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정말 현상 유지가 옳은가 하는 물음은 던질 가치가 충분히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 속하는 기존 국가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조직체가 아니다. 이들의 유용성과 가치는 세계 전체뿐 아니라 국경 내에 살고 있는 자국 국민에게 안전과 복지를 제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가 이런 순기능을 실행하지 못할 때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국경 유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국경을 개선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p. 311)>>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문제의식 조차 갖지 않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질문해 보는것,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단 문제자체를 벗어나 답으로 가는 길에 한발짝 걸음을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책표지 뒤에 다양한 추천사들이 있는데, 그중 <지도에 없는 마을> 저자가 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전혀 모르는 세상의 영역, 전세계에서 가장 취약하지만 확고한 희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국가들과 만나게 된다. 경이롭고, 따스하고, 절박하고, 안타까운 여정이 될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지도에 없는 마을> 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을 때 가볍게 시작했다가 쏟아지는 무거운 쟁점들에 쉽게 책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정치적 갈등이 있는 곳과 버려지고 감춰진 장소들부터 상상의 장소까지 모두가 논쟁적인 곳들이었지만, 그야말로 마을 단위여서 신기한 마음반 놀라운 마음 반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국가들> 을 읽으면서는 실재해 있는데 보이지 않는 취급을 당하는 국가들의 이야기를 국가단위로 역사와 정치성을 이해하며 읽다 보니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생전 처음 듣는 나라들의 힘들고 아픈 이야기... 하지만 세계는 점점더 자국의 이익만을 따지는 대세에 있으니 이거 참 안타까운...

그러나 한사람한사람 이 국가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국가 에서 보이는 국가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뉴스만 듣고 일본뉴스만 볼게 아니라 세계의 뉴스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타적 마음으로야 그 나라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지만, 이기적 마음으로라도 그 나라들에 관심은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국가들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그곳의 소식을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언제 어떻게 우리와 엮일지 모르는 세계의 실상을 좀더 빨리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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