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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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술 목적은 [중용]이 조선 사회에서 과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한손에 [중용]을 들고 떠나는 문화사 산책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

저자는 역사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 라고 한다. 독일과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역사 강의를 하면서 펴낸 책들도 다 역사관련 책들이다. 책들을 살펴보니 특히 조선시대 중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용] 이라는 책이 등장한 것은 적어도 2400년 전이라고 한다. 조선의 굵직한 선비들은 다른 책들을 먼저 공부한 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중용]을 꼽았다고 한다. 3천500여 글자수로 이루어진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하는 학문서적인 [중용]이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학자들에게 꾸준히 읽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를 연구하다 보니 조선시대의 학문적 흐름을 깨달은 저자가 펴낸 이 책은, [중용]을 철학적으로 깊이 분석하고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둔 책이 아니라고 한다. 철학적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중용]의 본문인용과 해설은 일부분일 뿐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살펴보며 시대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조선처럼 엄격한 제왕학 수업은 없었다.>>


조선시대의 세자 교육은 철저한 편이었다. 학문을 하는 세자가 임금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대의 학문적 흐름과 당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독서할 때는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는 성리학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라는 문장을 보며 주입식 교육이 오랜 역사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외우기만 하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외우고 나서 신하들과 스승들과 제자들과 그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토론하는 것을 즐겼고 필수로 여겼다. 그런데 암기만 남고 토론은 사라졌다는 것이 갑자기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라면 어느 경우에나 부합하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성리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 대응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황적 또는 상대적인 해법을 강구했다.>>

 

서양의 고대철학이 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았던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파가 있는가 하면 세상의 이치와 근본을 탐구하는 학파도 있었다. 이러한 학파는 형이상학적일 수 밖에 없다. 서양의 고대철학에서 다양한 갈래가 생겨나고 자연과학철학이 형이상학철학 못지않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형이상학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기준없이 두루뭉술했던 것도 아니었다. 비록 유교 성리학 이라는 학문이 비대하게 발달하긴 했으나 서양과 동양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객관적이다 상대적이다 라는 표현은 대표성을 배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록의 기록이라고 해서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기록은 주관적이다. 기록자의 구구한 변명 또는 자기합리화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는 한시도 기록을 떠날 수 없으나, 기록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일기인 일성록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다양한 자원을 발굴해 여러 책을 써온 저자로서의 마인드는 좋은 것 같다.


[중용]이 조선에 수용된 것은 14게 말 이라고 한다. 15세기부터는 선비들의 필수서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이 책은 조선 사회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중요한 처방전을 제공하며 세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태종부터 정조사이의 왕과 학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중용]이 중심에 있던 사회를 다루다 보니 그리 된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조 이후의 조선시대가 더 궁금하다. 정조 이후 학자들은 대체 어느 학문을 숭상했기에 그리 되었던 건가 싶어서....


<<16세기 후반 조선의 선비들은 [중용]을 통해 큰 용기를 얻었다.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실패로 인해 정지,사회적 전망은 어두웠다. 많은 선비들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이때 [중용]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 곧 '나 한사람의 도덕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선비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다. 이제 그들은 추악한 정치,사회적 현실 앞에서도 결코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정신적 자양분을 얻었다.>>


아쉽다. 본인만의 자아성찰에 머무르게 한 그 희망이 조선시대 학자들에게 시대적 실천의 의무에서 떠날수 있는 자유를 준것 같아서...


<<17세기 전반, 조선의 선비들도 형이상학적 사유의 한계를 조금씩 실감했다. 그들이 제아무리 형이상학적 연구에 매달려도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선비들은 이제까지외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당장에 김장생의 경우만 해도 그러했다. 그는 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제창했다.>>


안타깝다. 형이상학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실천지침을 예학에서 찾다니... 예학은 추후 궁내법도에 대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네마네 초상을 몇년 치러야하네마네 하는 당쟁으로 그 학문의 한계를 드러낸다... 제사를 4대(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지내는 것도 여기 기원을 둔다.


<<17~18세기 조선에는 한 가지 끔찍한 사회문화적 현상이 나타났다. 선비를 '사문난적'이라 손가락질하며 배척하는 사건이었다. 누가 사문난적인가. '사문'은 유교적 질서요, 이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난적'이었다. 그때는 주희를 비판하는 사람이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조선 건국 이래 대궐에서는 왕세자를 위한 서연과 국왕을 위한 경연이 수백년 동안 지속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조선의 왕은 성리학의 믿음직한 수호자로서 선비들의 학문적 논쟁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단호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왕은 자신의 위엄을 세우고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었으니, 그가 재판관의 역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왕이 학문에 공을 들여 경지에 이른 후 신하들에게 학문적 재판관 역할을 했던 시기는 별로 없다. 당쟁을 이용해서 왕의 정치력을 높였던 시기도 길지 않다. 한가지 학문에 집중했던 폐쇄성은 결국 서로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권력다툼의 도구가 됐을 뿐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정치투쟁과 경전해석을 별개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가치관의 다원성을 인정하기가 불가능한 선비들이 되어있었다. [중용]의 대가 라는 사람들이 [중용]에 반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물론 주류가 우물안의 개구리들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자신만의 해석과 세상에의 적용을 위해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도 있었다. 다만 항상 소수였다는 것이...


<<천주교 서적의 전래를 계기로, 조선의 선비들은 초자연적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8세기의 실학자들은 사물에 관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방법을 창안했다. 적당한 여건만 갖춰졌다면 그들은 한국의 역사적 운명을 새롭게 개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실학자들의 연구가 좀더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조이후 왕권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이후에 그렇게 빨리 일본에게 침략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들은 늘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문을 할 때는 반드시 의심을 품어야 한다. 의심이 없으면 배워도 굳건하지 못하다. 내가 말하는 의심이란 쓸데없이 믿지 않거나 우물쭈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저러해서 옳은 줄을 알면, 반대로 이러저러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것이 보고 아는 것이다. 만일 그런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틀린 것을 옳다고 주장해도 나는 대응할 길이 없다.>>

 

저자가 인용한 이익의 글이다. 대학자로서 [중용]을 새로 해석하고 책을 편찬한 깨어있는 지식인의 말은 지금도 의미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나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책을 읽을 때도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중용]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지만, [중용]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학문을 탐구했고 중요하게 여겼던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생각이 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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