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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답게 삽시다 - 미운 백 살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위하여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8월
평점 :
<<미운 백 살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위하여
그때는 인생이 이렇게 길 줄 알지 못했다. 살아갈 날이 너무 짧아서가 아니라 너무 길어서 생긴 후회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될까요? 여든 여섯, 이시형 박사가 들려주는 인생 담론! 나이듦의 미학!>>
에세이를 안 좋아해서 잘 안 읽는 편인데, 이 책은 마음이 끌렸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화병'을 세계정신의학용어로 만드신 분이고, 한평생 꾸준히 한방향을 향해 살아오신 게 존경스러웠다.
나이를 제대로 먹은 어르신의 나잇값 하라는 말씀은 꼰대의 잔소리로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난 왜이렇게 표지에 마음이 왔다갔다하는건지;;; ^^;;;
<<나이가 들면 마음의 상처마저 더디게 아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순리라기보다는 선입견이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이제껏 살아온 연륜으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그리고 빨라진다는 게 뇌 괴학의 증언이다.>>
저자는 여든여섯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은퇴 아닌 현역 이다. 정신과의사로서 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날 지언정 마음은, 정신은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는 연륜의 미덕을 제대로 보여주고 계신 분이다.
글 사이사이 문인화 몇 점이 실려 있는데, 본인의 작품이다. <<문인화를 제대로 그리려면 최소한 오십은 넘어야 한다. 인생의 내공이 어느 정도는 쌓여야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그래야 삶의 경험을 함축하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라는 말에 공감한다. 나는 젊어지고 싶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나이들어 가는 것이 좋다. 점점 더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문인화를 그리지는 않지만 나이를 어느정도 먹어야 뭔가 깊이를 담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노인을 불편해하는 인식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은퇴를 하고 났으니 이제는 물러나 앉아 다 차려진 밥상을 받을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다음 세대를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일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이가 저절로 존경심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존경은 공짜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디서든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를 '미운 몇 살'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속이 시원하다. 이런 입바른소리를 여든여섯의 학자가 말씀해주시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 나잇값은 이렇게 치루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미운 백 살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위하여' 이다. 그렇다 어느새 백세 시대가 되었다. 책은 글자크기도 큰 편이고 여백도 많은 편이다. 다시 말해, 부제에서 말한 어른들이 읽기 편한 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어른들이 많이 읽을까? 적어도 아직 어르신 소리 듣기 전 세대인 나같은 어른 세대들이 먼저 읽으며 마음준비하기 좋을 책이긴 하다. 내가 여든 여섯이 되었을 때 이정도의 마인드는 있어줘야 하지 않겟는가.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는 늘 내일이란 것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내일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늘 고민해야 한다.
선례를 고집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휴식이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쉼표를 찍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휴식이 일상이 되면 그것 역시 노동이나 다름없어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데 그날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
제 앞가림을 한다는 것은 나 하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주변 모두를 위한 일이다. 온전히 독립한 하나의 존재로 사는 것이다. 끝까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다 죽을 수 있는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모든 문명도 시들어갈 때가 가장 감성적이다.
겸손하지 못하거나 자기 욕심이 많은 이들은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짧고 굵게 의미로 다가오는 명문장들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온갖 지식과 지혜, 경험과 기술, 정보들은 다 빚이다. 빚은 꼭 갚아야 한다. 내가 받은 것을 이 사회에 모두 돌려주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공한 전문직이거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우리 모두가 세상의 빚쟁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잘되면 내가 잘나서 잘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하기까지 하다.
나 역시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평생이 빚을 지며 산 세월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 내 머릿속에 든 것들을 다 내놓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는 인세와 강연료도 대부분 문화원의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에 한 푼이라도 더 쓰려고 하는 일이지 내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세상의 빚쟁이 라고 까지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세상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라는 편이다.;;; 다만 책을 비교적 많이 읽어온 편이었고 여유가 좀 생기기 시작하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좋은 책들이 정말 많았다. 끊임없이 새 책들이 나오고 있었다. 책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차피 읽는 책, 다 읽고 나서 서평이나 짧은 글 정도의 자료를 남기면 책을 찾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은 계속 읽게 될 것 같으니 일단 책에 대한 활동이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아서 열심히 읽고 쓰는 중이다.
<<나이가 들어서 쓸쓸하다느니 고독하다느니 얼른 죽어야겠다느니 하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의 빚쟁이'라는 인식이 없는 이들이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당장 그 방법을 짜내느라 한가하게 나이 타령을 하고 앉아 있을 틈이 없어진다. 일이 힘에 부치면 반나절도 좋고, 이틀에 한 번도 좋다.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이 얼마나 되든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일을 놓지 않는 것이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과 내가 사회를 위해 아직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간 닦은 경험들을 활용하며 아직 내가 속까지 녹슨 깡통은 아니라는 뿌듯함을 심어주는 적당한 노동, 그것이 답이다.
그게 어른답게 사는 길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함께 부대끼며 살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한 내일은 오고 내일이 오기전 누구나 오늘을 생각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느냐가 쌓여서 내일을 만들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모른다. 모를 수 밖에 없다. 자기 앞길 찾아가기도 바쁜 게 일상이다. 그렇게 내 뒤로 이력이 쌓이다 보면 한치앞도 안보이던 앞길이 조금씩 미리 눈에 들어오는 때가 온다. 나이들었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그때 내가 세상에 어느정도 빚을 지고 있고 어떻게 갚아야 할지 생각하는 삶과 여전히 내 삶에만 갇혀 있는 삶 중에서 어느 쪽의 내일을 만들어가야 하겠는가? 어른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어렵지만 생각하며 늙어가야 할 텐데...
<<은퇴하고 할 일이 없다고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만 온종일 들여다본다면 진짜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상은 즉각적인 정보를 주고 몰입도가 높지만 그만큼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그 대신 책은 연속적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경계가 모호한 아날로그 사고를 대표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성이 아날로그다. 디지털은 빠르지만 아날로그느 느리다. 디지털은 '대량'이 가능하지만 사적인 경험이 중요한 아날로그는 '대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책이 중요한 것이다. 책은 우리외 뇌를 깨어있게 하고 일을 하도록 만든다.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읽는 책은 치매 예방을 위한 보약과도 같다.>>
저자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활동적인 성격탓에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40대후반에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나이들어 읽는 책은 깊이가 남다르다며 나이들수록 책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나이' 에 대한 존경심이 변하고 노인을 존경하지 않게 된 시대를 탓하기 전에 혹시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시대' 가 된 것은 아닌지 나부터 살펴야 한다.>>
항상 남의 말은 하기 쉬워도 내 반성은 하기 어려운 법이다. 뼈때리는 말일지라도 옳은 말이면 새겨들어야 한다. 나도 어른이고 여든여섯의 노학자도 어른이다. 공원에서 장기두는 분들도 어른이고, 집안에서 시시콜콜 참견하시는 분들도 어른이다. 광화문광장에서 남의나라 국기를 들고 텐트치고 있는 분들도 어른이고, 죽는날까지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앞에서 집회연설을 하시던 분들도 어른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다 똑같은 어른은 아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고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만 먹은 노인네가 되느냐 존경스러운 어르신이 되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다. 선택하기 아직 힘들다면, 일단 귀부터 열어놓아야 한다. 저자의 말에 토달지 말고 일단 들어볼 일이다.
ps.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라는 이근후 박사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또한 여든의 정신과의사로서 어른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다양한 조언들을 해주고 있었고 무척 재미있고게 공감하며 읽었었다. '어른답게 삽시다' 의 이시형박사가 통통 에너지 넘치는 소년어르신 이라면 이근후박사는 중후하면서 위트넘치는 어르신 이랄까. 여하튼 두분 다 참 멋지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