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바치는 심장 문득 시리즈 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 / 스피리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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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하고 음산한 분위기, 불안과 광기로 가득찬 심리 묘사로 근현대 환상문학과 추리문학을 창시한 에드거 앨런 포의 세계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새로운 번역판!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루팡', '에도가와 란포' 라는 필명,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레이먼드 카버의 빛나는 단편들, 스티븐 킹 이라는 하나의 세계, 이 모두는 에드거 앨런 포로부터 비롯되었다!>>

 

학창시절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도 읽었었는 줄 알았다.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봐서...

그런데 홈즈시리즈와 루팡시리즈만 읽었었나 보다. 책을 읽어보니;;;

에드거 앨런 포 (1809~1849) 는 정말 유명한 작가다. 독자들에게도 유명하고 작가들에게도 유명하다. 추리소설 고전중의 탑이 아닐까.


그의 생애는 결코 행복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삶이었다.

순회극단의 배우였던 부모는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친척의 손에 자라면서 첫사랑에 실패후 큰 좌절을 겪는다. 사촌여동생과의 결혼했던 10년 남짓한 기간이 가장 행복했던 때였으며 이때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게 되지만, 아내와 사별후 절망에 빠졌다가 얼마안되 사망한다. 고작 마흔의 나이에...

부모를 일찍 여의였으나 가난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그의 멘탈과 심리는 유약한 편이었던 것 같다. 쉽게 망가졌고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11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에드거 앨런 포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우울함이 내 정신에 파고들었다. 견딜수 없다고 한 것은, 아무리 지독하게 황량하거나 끔찍한 자연 풍경에서라도 인간 심리는 시적이고 감상적인 반쪽짜리 즐거움을 얻게 되어 있는데, 여기선 그 기분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단편 '어셔가의 몰락' 의 시작부터 저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저자의 작품들은 읽기 시작하는 순간 예상보다 강한 괴이함이 덮치면서 반쪽짜리 즐거움도 얻지 못하는 심정으로 독자의 기분을 압도한다.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 은 비교적 유쾌한 작품이다. 괴팍한 노인네에게서 결혼승낙을 받아내기 위한 재치와 노인네의 당황스런 반응이 웃음짓게한다.


'붉은 죽음의 가면' 은 가면무도회의 방들을 하나하나 설명해나가면서 벌써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


'구덩이와 추' 에서 주인공은 깨어나보니 감옥안이다. 빛한줄기 없는 캄캄한 방이다. <<깨어나서 한 손을 뻗어보니 옆에 빵 한 덩이와 물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라는 문장을 보며 '올드보이' 영화 가 생각났다. 영문도 모른채 갇혔는데 자다 깨보면 항상 놓여 있는 빵과 물주전자. 물론 내용은 영화와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섬뜩하게 조여오는 무언가가 동일하게 느껴진다.


'검은 고양이' 는 내가 가장 많이 들어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제목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영화적 설정으로 많이 차용했다고 한다. 검은 고양이 이름은 플루토 이다. 사실 플루토는 저승신의 이름이다. 고양이 이름에서 어느정도 암시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섬찟한 작품이다.


<<그렇다! 신경질적이었다. 나는 몹시. 몹시도 끔찍이 신경질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왜 나를 미쳤다고 할까? 그 병은 내 감각을 파괴하거나 무디게 한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했다. 무엇보다도 청각이 예민해졌다. 천국과 지상의 온갖 소리가 다 들렸다. 지옥의 많은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미쳤단 말인가? 들어보라! 그리고 내가 얼마나 건강한지-그리고 얼마나 차분히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

 

'일러바치는 심장' 의 첫 문장은 마치 저자의 독백처럼 들렸다. 작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를 평생 괴롭혔던 불안과 신경증이 이런 문장을 쓰게 한 것이 아닐까. 오늘날로 치면 싸이코패스격인 화자의 신경증은 정유정 소설에서 나왔던 악인들의 모습도 생각나게 한다.


'도둑맞은 편지' 에선 그 유명한 뒤팽 탐정이 나온다. <<의심할 의도로 간 사람의 의심을 강하게 확증시켜>> 주는 오류를 명쾌하게 풀어내는 뒤팽의 추리는 훗날 셜록 홈즈 를 탄생시켰고 괴도 루팡에 영향을 주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탐정이다.


'긴 상자'는 유쾌한 화자를 설정했지만 사실 되게 슬픈 내용이다. 슬픈 사랑도 괴이함으로 표현하는 저자의 표현방법은 참 일관적인것 같다.


<<전반적으로 내 눈에 들어온 모든 게 어딘가 상당히 괴기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워낙 별별 사고방식을 지닌, 별별 관습을 따르는, 별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다.>>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 을 발표당시 읽었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호탕하게 웃고 넘겼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의 정신병원은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일 수 밖에 없다. 정신병원과 정신병자들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정상과 비정상의, 정신이 온전한 사람과 미친 사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몬틸라도 술통' 은 어찌 보면 '검은 고양이' 보다도 더 잔인한 내용일 수 있다. 폭력과 살의를 드러내는 사람과 드러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은 둘다 무섭지만 되돌아 보면 후자가 더 무섭기 마련이다.


'절름발이 개구리' 는 나름 통쾌한 복수극이다. 궁정안의 광대 난쟁이인 절름발이개구리는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광대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무시하던 왕과 신하들을 제대로 속여넘긴다. 잔인하게 복수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은 정말 하나같이 괴이하고 음산하고 광기어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지금도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여기서 시작됐구나 싶은 장면들이 꽤 있다. 대단한 작가이긴 하다. 어렸을 때 탐정추리물에서 그쳤기에 망정이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안 읽은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 읽었으면 잠꽤나 설쳤을 것이다. ㅎㅎ 이번에 읽을 때도 대낮에 읽긴 했다;;; 스릴러 보단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들은 매력적이면서도 여전히 섬뜩하다. 추리소설의 고전이라 할 만 하다.


고전도 새로운 번역은 또 다르기 마련이다. 매일 쓰는 언어이지만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언어이다. 고전을 고전어로 읽었을 때와 현대어로 읽었을 때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 나는 기왕이면 새로 나온 번역본을 좋아하는 편이다. 외국작품이라 어차피 원어로 읽지 못할 바에는 지금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번역본이 낫다. 이 책의 번역자가 올초에 읽은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의 번역자라서 더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 작품을 읽을 때도 아주 수월한 흐름으로 읽었었다. 에드거 앨런 포 의 작품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작지만 강한 이 책으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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