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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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제목부터 끌렸고, 마음에 드는 시들도 여러편 수록된 시집이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책은 안읽어봤었는데, 시집을 한번 읽은 이후로 다른 책들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저자의 글은 특징이 강한 편이다.

시적으로 말하면 영혼에 대한 글 이라고 할 수 있고, 평범하게 말하면 깨달음에 대한 글 이라고 할 수 있는, 특히나 인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고 인도여행에서 얻은 상념들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몸은 한국인일지 몰라도 영혼은 인도인 이라고나 할까.

이 책또한 저자가 인도를 여행하며 만난 인도인들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에세이 이다.


<<사기꾼과 성자와 걸인, 동료 여행자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그들이 나는 좋았다.

때로 삶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명상이고 수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었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들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여행은 언제나 좋았다.

내 생의 증거는 언제나 여행에 있었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저자에게 세상은 인도였고, 인도를 여행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고, 길거리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었고, 그들과 함께일때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스승과  사기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도인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낯설었다.

저자는 식당에 가서 주문한 메뉴와 상관없는 음식이 나와도 식당주인이 하는 말에서 명언을 발견하고, 여관에 가서 방이 너무 더럽다고 불평할때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라는 여관주인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고, 길가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걸인들에게 매번 돈과 물건을 털리면서도 스승을 만난듯 표현한다. 사실 걸인과 '사두' 라고 하는 종교인의 경계도 모호하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고 항상 명상을 하며 길바닥 생활을 하는 그들은 여행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것을 달라하고 말을 걸어 자신이 엄청난 깨달음의 소유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니 그는 단순한 소똥 철학자나 궤변론자가 아니었다. 시종일관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 일로부터 배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통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인도여행에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기차나 버스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숙소가 더러워도 당연하고, 음식이 제멋대로여도 당연한, 모든 것이 다 당연하니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인지라, 불평해봤자 소용없다면 혼자 애면글면 자기자신을 닦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저 받이들이면 다 편해지고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기는 것을. 하루벌어 하루살아도 행복한 사람들 속에서 여행자가 가지고 있던 욕심은 저절로 버리게 되는 곳이 인도인가 보다.


<<여행자가 가장 힘들 때는 길이 없을 때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을 때다.

"신이 창조한 날은 단지 오늘뿐이란 말이오.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오. 안 그렇소?">>


인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개똥철학자 같고 궤변론자 같지만, 사실은 스승임을 깨닫는 순간 저자에게처럼 인도는 세상이 된다.


<<가난과 인간 고통의 대명사 콜카타. 그곳은 지구의 불랙홀이라 불린다. 전체 인구 천백만 명 중에서 5백만 명이 빈민가에 살고 있고, 또 다른 2백5십만 명은 길거리에서 잠을 잔다. 이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보다 훨씬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시인이라 여기고, 시와 글을  싣는 잡지가 3천종이나 발단되는 기상천외한 도시 콜카타!>>


세계에서 영화가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곳이 인도라고 하더니, 잡지도 엄청나게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 인도인가 보다.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 예술인 같다고 하며 말을 걸고, 어떤 예술을 하냐고 물어 시인이라고 답하니 자기도 시인이라며 얼싸안고 반가워하다가, 가난해서 시집을 못냈다고 시집을 낼 수 있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거리의 시인들 저자의 친구들 저자의 스승들 은 인도에 차고 넘친다.


<<처음 인도 여행을 꿈꿀 당시 나는 인도라는 나라를 영적인 나라, 깨달음의 나라라고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 환상은 첫 여행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언뜻 보기에 인도는 더럽고 혼란스럽고 믿을 수 없고, 때로는 전혀 대책이 서지 않는 나라였다. '노 프라블럼'의 나라가 아니라, 단지 '노 프라블럼' 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는 문제투성이의 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나 또다시 여행을 하면서 그 지저분한 먼지 밑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질서 속에서 이 거대한 삶을 움직이는 불가사의한 질서를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숱한 문제들 속에 진정한 '노 프라블럼'이 깃들어 있음을 알았다. 반복되는 탈수증과 설사병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인도는 내게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세상을, 사람들을, 태양과 열기에 들뜬 날씨를, 신발에 쌓이는 먼지와 거리에 널린 신성한 소똥들을, 때로는 견디기 힘든 더위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적막한 기차역에서 잠들어야 하는 어두운 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신에게만 의지해 살아가는 방랑 수도승들은 차츰 나의 스승이 되었다.

인도 여행만을 고집함으로써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생에선 내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굳이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까지 다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또 어떤 길들은 다음 생을 위해 남겨 둬야 할 길들이었다.>>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IT계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핵폭탄도 보유한 나라이다.

인도는 인구의 절반이상이 빈민층이고 수만의 신을 모시는 다신교국가이며 언어만도 수십가지 이상의 방언이 존재하는 곳이다.

집이 있고, 직업이 있고, 첨단을 달리고, 최신학문을 배우며, 권력을 잡은 소수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걸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도 신의 뜻이라 받아들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쉽게 보이는 곳이 인도다.


인도에 매년 여행을 간다는 저자가 경험한 곳은 쉽게 보이는 늘 보이는 자주 보이는 인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고 더러워도 신의 뜻을 구하고 명상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게 하는 인도를 저자는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법적으로 폐지된 카스트제도가 관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어린 신부를 사고팔고, 여자의 선택은 존중되지 않으며, 관습을 어긴 여자는 마을에서 공개처헝하고, 카스트제도 아래의 천민은 맨손으로 똥을 긁어내는 일 같은 것만 해야하는, 직업에 귀천이 분명하고 사람에 귀천이 분명한 곳이다. 그것도 다 신의 뜻인 곳이다.

저자는 인도에서 명상하고 깨달음을 얻는 여행자로서 인도와 인도인을 사랑한다.

그가 느끼는 인도가 주는 영감들은 시적이고 영적이고 행복하고 충만하다.

시인으로서 여행자로서 느끼는 인도에 대한 저자의 글들은 편안하고 시적이고 소소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렇게만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다른 책들에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여성의 악습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여행자로서 읽을 수가 없었다.

저자가 거리의 스승들 외에, 제도에 구속당하고 악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떤 글을 쓸 지 궁금해진다.

이러튼 저러튼 인도라는 나라는 한번도 안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밖에 안간 사람은 없는 그런 나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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