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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산다는 것 - 모멸의 시대를 건너는 인간다운 삶의 원칙
게랄드 휘터 지음, 박여명 옮김, 울리 하우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5월
평점 :

표지속 저자를 한참 바라보게 되는 책이었다. 깊이있는 눈빛 온화한 미소 중후한 매력이 너무 멋있어서 ㅎㅎ
저자는 신경생물학자로서 뇌과학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전하는 독일의 대표적 지성인이라고 한다.
기술만능주의와 환경적 재앙 그리고 기업의 착취와 개인들의 탐욕 등 존엄을 잃은 세계에 지금 가장 절실한 삶의 방식은 '존엄'을 생각하고 찾아내는 것이라고, 죽음이 존엄하길 원한다면 삶부터 존엄해야 하지 않겠냐고, 존엄하게 사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인간 두뇌의 처리 능력을 넘어선 정보를 폭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지나치게 분주하며, 쓸데없는 일에 간섭을 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고, 온갖 추축과 편견, 평가와 의도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사는 동안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인간은 어느새 순식간에 특정 시스템에 속한 대상, 지배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자기 존엄성을 스스로 깨우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하지만
존엄한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없다.
며 저자는 우리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자신이 생각하는 존엄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돌아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과 행동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서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저자는 존엄이란 무엇이고 인간에게 존엄이란 무엇인지 탐구하여 그 결과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어한다.
한 사람의 존엄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 의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대할 때에도 존엄성은 상처를 입는다.
존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공동체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서로의 교류속에 배워가는 존재인데 존엄을 알지 못하는 삶은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도 존엄하게 살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존엄을 깨닫고 살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되고 존중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남을 위해 존엄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가치관을 유지하며 지금처럼 살아갈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다.
지금처럼 지구를 소모하고 산다면 지구에서 인류는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이 파괴된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을 찾아 그곳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그럴리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한, 그 행성 또한 머지않아 지구처럼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우리 안에 있는 지극히 인간다운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하면서 저자는 그 해답을 '존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존엄이라는 관념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인간 뇌의 조직과 기능 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하나의 '표상'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는 성향이라고 한다. 존엄하지 않은 행동은 단기적으로 볼 때 성공적인 전략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그 반대로 존엄하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도 한다. 개인의 행복한 삶과 모두의 공존을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켜줄 관념을 따라가야 함을 저자는 주장한다.
존엄성과 뇌에도 열역학 제2법칙이 관련된다고 한다. 열역학 제2법칙이란, 에너지가 자연의 모든 현상에 고르게 분배된다는 논리인데,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자기 조직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우리의 뇌는 스스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그 해결책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효과가 있는 방법은 뇌 기능의 원리이기도 한 '단순화'작업이다. 우리의 뇌는 수많은 단일 움직임들을 조정할 목적으로 상위의 행동 패턴을 만들어내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우리의 행동을 조정한다. 우리가 사고방식, 태도 라고 일컫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개인이 지닌 삶의 태도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해온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과 태도 역시 우리 뇌에 뿌리를 내린 상위 행동패턴에 따라 조정되고 형성되는데 이것은 유년기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치원교육에서 존엄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경험을 중요시 여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때로는 긍정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인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내적 표상을 만든다. 공존에서 오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며 어떤 모습으로 인간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에 대한 신념이 생기는데 이 관념이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될 때 우리 뇌에는 특별한 내적 표상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바로 '존엄'이라는 표상.
동물에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되어 있는 신경망이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걷고 먹이를 찾는 것이 가능하지만, 신경망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체 태어나는 인간은 인간이 되기 위해 다른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인간다움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지닌 존엄이라는 나침반을 통해, 인간다운 삶이 의미하는 바를 따라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알고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은 아주 깊은 내면에서부터 존재한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내면의 나침반, 이 나침반을 통해 아이들이 인간다운 삶이 의미하는 바를 따라 세상을 살아갈 수 잇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수단으로 취급당한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보다 노련하게 이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익힌다. 하지만 자신의 존엄함을 인식한 사람은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는 욕구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존엄성을 인식한 사람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성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이미 자신의 존엄을 인식하고 있기에 타인의 존엄을 해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타인의 존엄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엄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생각보다 존엄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하는 시대라고 요구한다. 이토록 존엄하지 않은 인류의 발전을 그들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멈출 있겠느냐며. 존엄한 행동으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뿐 아니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지고 보여주어야 한다고.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존엄함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도록 도울 기회가 아직 있을 것이라고.
자기 존엄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 명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존엄함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의 문제다. 얼마나 존엄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자신의 존엄함을 인지하고 상대방을 존엄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까?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나는 나의 존엄함을 인식한 사람일까?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 인간의 생각에 맞게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을 스스로 바꾸는 것.
이제는 발전의 방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하기 위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에 대한 관념과 인식을, 즉 내면의 나침반을 필요로 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을 바꾸는 것... 죽음의 존엄성을 생각하기 전에 삶의 존엄성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내면의 나침반을 찾아야 하는... 저자가 알려준 나침반 '존엄함'에 대해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존중하며 살아가겠다고. 자기 자신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신뢰 속에서 조금은 호기심 넘치는 삶을 살겠다고.
인공사회 첨단사회가 되어 갈수록 보다 더 인간다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책이 많은 것 같다. 기계처럼 소모되어지는 인간으로 살던 시대를 벗어나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일까? 기계처럼 소모되다가 사라질 위기이므로 인간만의 인간다움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일까? 시대의 변화는 늘 새로운 생각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