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
백금남 지음 / 무한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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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땐 표지의 홍보문구에 혹해서 읽게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띠지에

'천만 관객 영화 관상, 명당 의 작가 백금남이 그려낸 거대한 한 폭의 구도화' 라는 문구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사극물을 좋아하는 관계로 관상, 명당, 궁합​ 영화 3편을 모두 다 봤는데, 그 중 두 작품의 원작자가 쓴 다른 소설이라니 궁금했다.


책을 읽는데 분명 소설책인데 새책인데 2019년 초판1쇄라고 되어있는데, 이 낯선 느낌은 뭘까 싶어 읽던 도중 검색을 좀 해봤다.

이 책은 최근작품은 아니었다. 1989년 출간된 책인데, 출판사가 바뀌어 새로 나온듯 했다. 아무래도 흥행영화의 원작자 소설이다보니...

그래서인지 사용하는 용어가 익숙치 않았고, 종교소설인줄 모르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불교소설이었다. 그제야 대화내용이 아그랬구나 싶었다.


소설의 큰줄기는 백정집안 5대의 이야기로 소를 도살하는 직업을 가진 백정의 입장에서 살생이 아닌 보냄과 예의에 대한 생각들이 불교적 관념들로 표현되면서 결과적으로 개인의 구도적 삶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낯선 용어들은 백정과 심마니들이 사용하는 은어들이었다. 예를들어, 백정은 흰고무래 도살시 사용하는 도끼와 칼은 촛대와 신팽이 라고 부르고, 곰은 넙대 호랑이는 코짤맹이 로 부르는데 따로 설명이 없어서(소설에 용어설명이 있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검색해보고서야 뜻을 알수 있었다.

대화들은 백정이 이렇게 철학적인 직업이었나 싶을정도로 소를 잡는 행위 하나하나에 소를 놓치고 다시 찾는 시간 하나하나에 엄청난 관념들로 풀어내고 있어서 왠만한 스님들도 이렇게까진 생각 못하시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시대부터 해방과 6.25를 거쳐 분단직후까지인데 시대와 그 시대를 나타내는 대표적 사건들은 사실 소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진 않았다. 일본인의 탄압은 백정을 무시하는 마을사람들의 눈총과 다를거 없이 폭력적이었고, 남북의 사상적 갈등은 가족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다를 거 없이 불통이었으며, 버려지고버려져도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은 개인의 내적자아를 향한 구도본능과 다를바 없었다.


처음 접하는 불교적 사고방식이 생소했지만 어렵거나 거북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이렇게까지?! 정도랄까

작품은 곧 작가의 분신 같은 것이기에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작가의 아버지께서 제주4.3항쟁때 태고종 스님이셨는데(태고종은 불교의 한 종파로 결혼이 가능한 불교교파 라고 한다. 성경을 믿는 종교계열에도 비혼의 신부님과 가족이 함께 하는 목사님이 계시듯이 불교도 그렇게 종류가 다양하게 있나보다) 학살당하셨을 당시 작가는 2살이었다고 한다. 그후 어렵게 장성하여 1989년 첫 작품을 낸것이 '십우도' 였고 이후 불교소설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셨다. 집안이 불교집안이었고 아버지가 스님이셨다하니 자라면서도 불교를 가까이 하며 지내셨을 것 같고, 역사적 사건에 휘말린 개인적 가족사를 보며 관념적 불교사상도 자연스레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다.


책소개에 첫작품 십우도 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다고 해서 이런 종교적 소설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 도 같은해인 1989년 상영한 영화였고 당시 히트작이었던걸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었겠다 싶다. 아제아제바라아제 의 원작 소설은 한승원 작가였는데, 한강의 아버지 이기도 한 이분도 역사소설이나 불교적 작품을 꽤 쓰신것 같다. 종교소설가라고 따로 있다기 보다는 역사소설을 주로 다루는 작가분들이 전통사상에 대해 아무래도 자세히 알게되고 그래서 종교적 소설도 쓰시게 되고 하는 것 같다.


백금남 작가의 개인사를 찾아보고나니 갑자기 안소영 작가가 생각났다.

영화 동주 의 원작 소설인 '시인 동주' 의 작가인 안소영 작가는 책만보는 바보 이덕무 나 다산 정약용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글을 주로 썼는데, 아버지인 안재구 교수가 남로당사건관련 사상범으로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집안이 어려었을 걸로 예상되고, 백금남 작가도 안소영 작가도 굴곡진 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아버지를 둔 자식으로써 글을 쓰는데도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고 그나마 역사적 인물과 사건, 종교적 글은 쓸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하튼, 개인적인 총평은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 의 백정버전 이라고나 할까.

낯설면서도 새로웠고, 신기하면서 난해했지만,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거기 라는 건 느껴지는 10폭 병풍 가득채운 탱화를 보는듯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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