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지
김안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고 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당.황.스.럽.다!

523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편의 소설로, 표지와 제목에서 풍기는 사극이나 무협지적 분위기와​ 

[나의 죽음은 과학의, 그의 필연이요, 나의 소생은 과학의, 그의 본연이요, 나의 삶은 과학의, 시의, 그의 시대의 사랑이로세] 같은 표지문구에서 사극적 SF 판타지 인가 싶은 분위기를 동시에 풍기는 책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림없는 만화책이랄까?!

켁, 헥헥, 에에?, 헤에, 크으, 흐어, 휘리릭, 으악, 흐아아아아앙, 크헉 같은 만화풍적 의성어 의태어가 넘치고 느낌표는 기본이 세개이상씩 붙는다.


​문장의 표현에 있어서도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헤깔리는 구성의 문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예를들어,

"당신이 그러고도 태상의, 시대의 과학자라고 떳떳할 수 있냐는 것이냐! 그 삶에 위배되는 인과응보는 삶을 살아갈 자격도 가치도 없는 것일세!!!​ "

"시가 소녀와 혼연일체인지의 경우의 수를 성공하게끔 내 염원을 들어줘..."

같은 문장들은 나만 읽기 이상한건가? 무슨소리인지 이 문장에 이 표현이 정말 괜찮은건가?​


'은은 녹스는 성분이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외침에 은 성분이 들어간 부분은 녹슬어 버린다'

같은 부분에선 고개를 갸우뚱 했다. 내가 알기로 은은 녹슬지 않는다. 녹스는 것은 철이지. 은은 변색될뿐 닦아내면 멀쩡해진다. 녹이 아니다. 그런데 은이 녹슨다고 수시로 표현된다.

읽는내내 등장인물들은 소년과 소녀로 읽혀지는데, 소년은 과학자이고 소녀는 시인이며 가게 주인이다. 뭐 소설이니까 어린나이에 그럴 수 있다 쳤는데... 소설내내 여주인공 매화는 소녀라고 지칭된다. 소녀는 소녀가 소녀의 ... 그래 뭐 소설이니까 그럴 수 있지 했는데... 그런데 책 마지막장 즈음에 가서

'그렇게 그들이 스물넷이 된 밤하늘의 다이아몬드 날' 이라는 표현에서 스물넷이라고? 싶더니 바로 그 옆장에선

'그렇게 8년 후의 1월. 보름달이 밝은 다이아몬드 대육각형의 겨울밤, 매화의 등불시에 이끌려 걸어온 한 청년...' 을 보니 서른둘에 남녀주인공이 만난 거였다. 그리고 적어도 1년쯤 지났으니 33살인데 계속 소녀 라고 여주인공을 불렀던 거다. 서른세살의 소녀라고?


22세기라고 시대를 설정해 놓고, AI를 연구한다는 천하부족인 과학자는 나룻배로 손수 노저어 바다를 건너고 자석을 끌어당기는 로봇팔이 있다면서 광산에서 손수 보석을 캐내야 한다. 22세기가 아주 먼 시대라고 생각한건가? 지금은 21세기다 22세기는 100년도 남지 않았다. 그 사이이에 현실이 이렇게 바뀔 수 없다. 차라리 시대 설정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대설정을 22세기로 함으로써 SF적 표현에도 부족하고 판타지로도 볼 수 없는 애매한 시간배경이 되어버렸다.


미래시대라고 하면서 한쪽은 조선시대처럼 생활하고 한쪽은 현대시대처럼 생활할 뿐 미래시대의 모습은 없었따. 벡터군, 루트군, 이라고 과학자를 부른다고 해서 AI를 연구하고 로봇팔이 나온다고 해서 SF가 되지는 않는다. 천월왕자, 만월왕자 라고 부른다고 해서 염원을 이루어주는 연못이 나온다고 해서 판타지라고 할 수도 없다. 여러모로 짜임새가 부족고 어느 장르의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아니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작품이었다. 차라리 그림이나 삽화를 넣어서 만화책으로 나왔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은데, 소설로 읽고보니 여러 부분들에서의 혼란이 이질감을 준다.


읽을수록 당황스러워서 표지의 저자소개를 새삼 다시 찾아 보았다. 2008년에 백일장에서 수상한 대회를 찾아보니 당시 고등학생 대상이었던것 같은데, 그러면 지금은 30대 초반이라는 얘기다. 20대에 등단한 최은영, 김애란, 김혜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생각했을 때 또다시 당황스러워진다. 애초에 이 작품을 웹툰 내지는 웹소설 내지는 하이틴소설로 생각했다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분야가 다른 소설인 거니까. 다 읽고 나니 더더욱 여고생이 쓴 웹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2008년 즈음에 여고생이었던 저자가 쓴 작품이라고 했다면 스토리능력이 뛰어나다고 박수쳐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소개를 '인공지능의 시를 실현화하는 시인, 서정적 과학을 지향하는 소설가, 시대와 내면을 대표하는 소설가' 로 적어놓았다. 인공지능의 시를 실현화하려고 소설속 인공지능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구체적이지 않은체 시에 의해 조정되고, 서정적 과학을 지향하느라 은은 녹이 슬고 바다에서는 모터보트도 없이 노를 저어야 하며, 시대와 내면을 대표하느라 작품속 주인공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소년소녀인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나는 저자를 작품을 폄하하고 싶은게 아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렇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판타지을 좋아하고 SF도 즐겨 읽는다. 이 소설에 대해 알았던 사전 지식이라곤 현실세계를 다룬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었기에 판타지 혹은 SF 로서의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판타지라면 구체적인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지의제왕 이나 해리포터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 작가중 전민희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면 판타지로서의 세계관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SF 라면 개연성 있는 과학이 은유되어야 한다. 필립 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같은 작품집을 읽어보면 블레이드 러너 영화까지 보지 않더라도 책 속 작품들만으로도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SF 적 매력이 넘친다. 외국작가 까지 가지 않더라도 성인 작품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 청소년 문학 작품중 김윤영 작가의 '달 위를 걷는 느낌' 이나 배미주 작가의 '싱커' 만 보더라도 SF 의 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판타지와 SF 경계를 짓지 않더라도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 나 '버드스트라이크' 같은 작품은 현실을 다루고 있지 않으면서 굳이 판타지니 SF니 구분짓지 않더라도 비현실을 어떻게 현실감을 주는 지 구성의 탄탄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어느 쪽이라고도...;;; 당황스럽다.


병맛 이라거나 B급코드 라는 표현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그 특징들을 감안했을 때, 이 작품은 주류 라기 보다는 병맛 이나 B급 코드적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작품들은 보통 매니아 층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 쪽 분야 매니아가 아니어서 그런지 무척 생소했다. 애초에 그러한 비주류 감성을 담은 작품인걸 알고 읽었다면 덜 당혹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 표지에라도 넌즈시 알려줬더라면...


나는 순정만화도 정말 좋아한다. 구르미그린달빛 같은 웹소설도 좋아한다. 순정만화풍 그림이 곁들어져 있으면 더욱 좋다. 이 작품을 그렇게 인지하고 읽었더라면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일반 소설로 알고 읽었다가 당혹스럽게 책장을 덮어서 아직도 기분이 얼떨떨하다. 가독성도 있고 재미도 있었는데 뭔지 모르게 아쉽다...


[이번엔 너의 본연이 절실해. 내게는 없는 본연...

바라는 걸 이루는 게 염원이 아니에요. 우린 이미 살아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염원이에요. 타고난 본연으로 우린 이미 염원을 이뤄 낸 삶을 살고 있는 거에요.

내 본연이  염원의 존재라고 봐요... 내 본연 자체가 가장 진실된 본연인 걸요.

본연은 타고난 염원이 담겨 있어서 본연대로 행동하는 것이 염원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지.

그 아이의 삶 자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염원 그 자체였으니까요. 난 오히려 매화에게 그러한 본연에 충실한, 본연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염원을 이루는 삶이라고 깨달았어요. 매화는 정말 사랑보다 청렴해요. 유한과 무한의 여뭔을 모두 갖춘 아이에요....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염원은 무한함을 원하죠... 삶과 염원은 무한과 유한함이 공존합니다. 염원을 이뤄가는 과정은 무한이지만 그 염원을 다 이뤘을 때는 유한함이거든요. 무한으로는 염원의 성과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무한한 성과의 유한함을 하지 못한 채 무한의 영원한 성과의 박수를 치지 못하는 거에요. 무한이 있으면 유한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무한의 염원이 생길 수 있어요.

바라는 마음을 선별하는 것 자체가 염원이 아니죠. 염원은 이미 본연에 있어요.]


이 작품 속에서 본연, 염원 은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이었던 것 같다.

이미 타고 난 본연을 잊고 염원하기 보다, 이미 타고 난 본연을 깨닫고 염원을 추구하는 것에 중요성을 부과한 저자의 의도가 퇴색되지 않도록 이 작품의 이미지가 좀 더 제대로 표현되었다면 좋았을 걸 싶다.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사극적 판타지 나 무협지적 SF 가 아닌 순정만화적 웹소설을 책으로 본다고 여기고 읽는 다면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4-13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