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한국인의 삶
서영해 지음, 김성혜 옮김, 장석흥 / 역사공간 / 2019년 2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서영해 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유럽사회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유럽에서까지 한국의 역사왜곡에 힘썼던 일본의 극악한 활동을 전혀 몰랐다.
몰라서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서영해 선생은 1920년 부터 1947년까지 27년 동안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스위스, 벨기에 등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1902년 부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18세의 나이로 상하이로 망명했다.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당시 국제외교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로 유학을 선택한다. 그의 유학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1920년 프랑스에 도착하여 11년 학교교육과정을 6년만에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1925년 부친의 사망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프랑스 신문에 실린 한국 폄훼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기고하면서 기자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이후 임시정부와 꾸준한 정보교환 및 유럽사회에서의 독보적 독립활동의 영역을 구축하며 활발히 활동하다가 광복후 임시정부 주요인사들의 입국이 거부되는 동안 기다렸다가 1947년에야 고국에 입국한다. 그러나 당시의 혼란한 정파싸움과 친일파들의 활개치는 음모속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교육활동을 하며 지내게 되고 다시 외교활동차 외국으로 나가던 중 상하이에서 억류되어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게 된다. 그는 프랑스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라틴어 등 7,8개 국어를 구사했고, 고대철학부터 현대철학, 문학, 정치사상, 종교,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였다. 또한 그는 한국독립운동의 불모지와 같던 유럽에서 20년 넘게 독립운동을 지켜낸 주역이었다. 그는 작가로서, 기자로서, 국제정세 전문가로서,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평생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외롭고 힘든 가시밭길이었지만, 한평생 한국의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로서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다.
1929년 프랑스에서 불어로 이 책이 출간된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한국을 발견한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간행과 함께 1년만에 5쇄를 낼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저자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헌정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인들의 한국관은 일본이 왜곡한 내용으로 고정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중국의 오랜 속국이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비로소 문명을 접할 수 있었던 나라로 여기는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4,2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이 고유한 문화를 발달시켜오다가, 일본의 침략을 받아 불행히도 나라를 잃었으나 한국인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개한 독립운동을 담아내고 있었고, 프랑스인들에게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사실로 다가가 한국의 역사문화와 독립운동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어느 한국인의 삶' 이라는 소설 작품 과 뒷부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영해 라는 인물에 대한 미니평전 같은 해설이 붙어 있어서 이해하는 데 자료가 충분하여 좋다. 소설 자체는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박선초 라는 가상의 독립운동가의 일제치하 초기의 독립운동활동에 대해, 2부는 박선초가 회상하는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옛이야기까지 조금씩 언급하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돕고, 3부는 다시 현재시점의 박선초라는 인물의 3.1운동 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서술된다. 3부에는 독립선언서 전문이 실려 있어서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넘나드는 글의 구성이 돋보이고, 당시 프랑스에 우리나라의 독립선언서가 읽혀질 수 있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이라는 소설을 쓸때 참고자료로 활용했던 책이 '한일관계사료집' 이라고 한다.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임시정부에서 펴낸 책으로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만든 책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완질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단 1질 뿐인데 이마저 미국의 콜림비아대학 극동도서관에 있다고 한다. 한일관계사료집 의 중심엔 안창호 선생이 있었다. 안창호 서영해 같은 분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임시정부가 독립을 준비하면서 초반에 한 일이 역사서 편찬이었다는 것은 그보다 옛날 나라의 주인이 바뀔때마다 왕조의 역사서가 먼저 편찬되었다는 것은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데 역사부터가 시작이어서가 아닐까? 광복 후 우리나라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해서 아직도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을 보면 역사의 중요성은 더욱 실감해야 할 일이다.
세상은 누구도 알아서 먼저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은 알아서 우리나라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누구라도 먼저 알려준 내용에 대해 무심히 믿고 넘어갈 뿐이다. 그래서 일본이 활발하게 유럽사회에 퍼트린 한국의 왜곡된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만큼 남들은 절대 모르는 건데, 우리는 남들도 알아서 우리만큼 우리를 알아줄 거라 착각한다. 그 어렵던 시절에 단 한분이었을지라도 단 몇권의 책과 간헐적 신문기고글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고자 했던 서영해 선생의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광복후에도 더 힘들지 않았을까? 지금도 여전한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리는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을까? 일본과 맞대응 하는 소모전 보다는 유럽이던 미국이던 다른 사회에 우리나라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