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30일, 씨랜드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소망 유치원생 열아홉 명을 포함해 스물세 명이 숨졌다. 까맣게 타버린 아이들은 이미 국과수로 옮겨졌다. 국과수는 한 달이 걸릴 것이라던 화재 원인 규명을 이틀 만에 모기향으로 발표했다

숨 쉬고 사는 것만으로도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했을 유족들은 고통과 분노로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끝까지 용감하게 진실을 감당했고 경험을 보존했다. 2000년 4월, 유족들은 ‘그날 밤 씨랜드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라는 부제를 단 [씨랜드 참사 백서]를 냈다
유족들은 이 책에 [우리의 다짐] 이란 글을 남긴다



과연 무얼 걸고 맹세해야 우리의 다짐이 변하지 않을까? 우선 우리 유가족들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이 편할 것이고
우리의 사랑 또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른도
어떻게 해야 바로 사는건지, 무엇이 옳은 건지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알고 있다
우리가 영원해야만 그리고 우리가 언제까지나
깨끗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린 바라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고 모든 생명이
존중받고 사랑받기를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우리 아이들을 잃은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미래를 위해서
자라나는 새싹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나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작아졌다. 깨끗하게 살아야만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이 신비로운 생각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말은 할 수만 있다면 불타는 지옥에 가서라도 아이들을 업고 나오고 싶었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경험을 들을 가치가 있는 말로 바꾸는 것은 미치도록 어려운 일인데 유족들은 바로 그 일을 했다. 현실을 그대로 보면서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방법을 상상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돌덩이 같은 현실을 깨려고 숯덩이 가슴에서 나온 말들이다. 비극과 꿈의 가슴 찢어지는 결합이다

나는 이 말들이 그들을 부축하고,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지상에 묶어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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