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개인 노무현‘이 불가능한 언설임을 안다
그에 대한 모든 기억과 판단은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이 분명한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 이 움직일 수 없는 자명한 역사가 나를 좌절케 한다. 어느 세월에나 ‘그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식이 가능할까

일천한 독서 경험이지만 노무현의 유서는 상당한 명문에 속한다. 담백하다. 완전하게 지쳐서 미련이 남지 않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증상의 전형성(˝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호소(˝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없다.˝), 구체적 이유(˝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성숙한 자세(˝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느냐.˝), 타인에 대한 배려(˝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소박한 요구(˝화장˝, ˝작은 비석˝). 그가 겪었을 고통을 감안하면 놀라운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운명은 구조의 힘에 대한 나의 대응이다
그것이 균형을 이루는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극단으로 기울어질 때 개인은 생사의 기로에 선다. 자살. 타살 여부는 부차적이다
즉 모든 자살은 사회적(타살)이다. 대개 구조가 개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팔자를 타령한다. ‘운명을 극복‘한 경우는 복잡한 세상의 우연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승패‘와 무관하게 악의 그물에 걸려 몸이 헌신될 수 있는데 이른바 ‘역사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운명이다˝는 구조, 즉 당시 정권에 대한 노무현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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