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한 세대‘?

90년대생이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속에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국가시스템, 즉 정서적 안정의 최소한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가치를 고려할 만한 정서적 여유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스템의 예측 불가능성을 늘리는 모든 행위는 그들의 불안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고도의 심리적 압박이 만들어낸 90년대생 전체에 걸린 피해의식이 더해지면, 2010년대 후반을 수놓았던 여러 공정 논란의 성격은 더욱 명확해진다

- 혁명을 꿈꾸던 청년에서 노멘클라트라로

386 본인들부터가 대학 문을 나오자마자 국민 대다수에게 풍요를 보장해주는, 충분히 성숙하고 번영하는 한국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 대학 교육을 받은 35%가량의 60년대생 엘리트 그룹은, 혁명을 꿈꾸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후 한국 사회의 각종 영역의 핵심 중추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들이 80년대 정권에 반대하는 막강한 힘을 구성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이 고등교육의 수혜를 입은 한 사회 최초의 대규모 인간 집단 이었다는 데 있었다. 혁명론을 버리고 고도성장의 절정에 있던 한국 사회 각지에 참여한 순간부터, 그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동질적 경험을 공유하는 특정 세대의 특정 계층으로서 넘볼 수 없는 지배력을 구축한 세력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특권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욕망 중 하나였던 계층 세습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자본, 문화자본을 이용하여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과 촉망받는 커리어를 물려주려고 노력했고, 자녀들은 그런 특혜를 거부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자: 386의 이중사고와 이중생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가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나는 586들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이 청년시절에 그토록 우려하던 불균등발전이 지금에야 이 땅에 도래했으며, 당신들이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아니냐고, 만약 당신이 ‘사회주의자‘로서 젊은 날의 뜨거운 심장에 충실하다면, 이 이중경제체제하에서 진짜 약자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당신이 ‘자유주의자‘로서 이 사회에서 책임 의식을 지닌 어른이라면, 공동체를 위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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