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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 살려고 받는 치료가 맞나요
김은혜 지음 / 글ego prime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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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방병원을 4차 병원으로 소개한다. 4차 병원이란 단어는 없지만 동네 의원부터 대학병원 같은 3차 병원까지 다 돌고 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사를 찾는다고 하였다. <999명이 필요 없다 말해도, 1명의 환자가 살려달라는 걸 들어주는 의사> 이런 의사가 되고자 평생을 노력하다 세상 떠난 부친의 영향으로 암 환자를 보는 한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한방 병원에서도 암 환자를 치료 하는구나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편집하며 울다가 출간이 늦어진 도서라고 띠지에 써 있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표지와 제목을 보고 울컥 하였다. 40대 초반 암전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암 환우들과 병동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아마도 가끔 병원 신세를 질때가 많은 나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시도 가능한 항암 치료 없음. 본인에게 설명함. 기대 여명 6개월 이하

 

암 환자들은 겉으로는 병을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수많은 약과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다 보면, 사실은 매 순간 끙끙 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암을 진단받은 순간부터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감당해온 사람들이 버티고 버티다 내뱉은 깊은 절망이었을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공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환자와 살려달라는 보호자의 모습. 신경안정제를 놓고 진통제를 늘리면서 환자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며칠을 반복하다가 환자가 말했다. “선생님, 이제 그만, 제발,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는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힘들어서 그러시는 거죠? 더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 찾아볼게요 했지만 환자의 대답은 같았다. 3주가 지나고 선생님 덕분에 편하게 있다며 처음으로 청명한 눈동자가 거기에 있어 보호자분이 지금 모습 보면 좋아하실 텐데라고 했는데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포기해 달라는 말도, 편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다 진심이었을까?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자식들의 손에 이끌려 입원한 할아버지는 치료에 관심이 없었다.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하여 물으니 오토바이를 탄다고 한다. 2주 뒤에 퇴원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받고 치료를 했다. 효과가 없다는 판단되었고 퇴원을 한 할아버지는 하늘로 승천할 때도 오토바이 타고 갈 거라고 했다.

 

죽음 앞에서 더 안타까운 일은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이 아프거나 사고로 죽는 것이다. 14살에 암을 진단받은 아이가 권유받은 치료는 장루 수술이었다. 어른들도 힘든 부작용이 잦은 약이어서 기록을 읽은 후 아이의 목소리는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흔든다. 커리우먼으로 경력이 빛나기 시작할 무렵 암에 걸린 젊은 여성은 치료를 안 받는 대신 여행도 많이 다니면 여한이 없다고 했다. 3개월마다 검사만 받았는데 퇴원을 하고 3개월 뒤의 예약도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70대 환자의 의무기록지에는 보호자 없음. 더 이상 시도 가능한 항암 치료 선택지 없음. 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 때 보자기 하나 달랑 갖고 와서 이제 좀 자리 잡았는데 일만 억수로 했드만 폐암이 걸리삐고. 암은 모르겠고 남은 건 새끼뿐이라고 말했다. 그 새끼는 그 집이었다. 몇 년째 암이 커지지 않아 검사만 받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내고 있다니 정말 다행 중 다행이고 제일 인상 깊은 사연이다.

 

말기암 선고를 받은 젊은 여성이 입원을 했는데 보호자는 예쁘게 죽게 해주라고 부탁을 한다.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걸 좋아하던 아이여서 입원하는 동안 아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라고 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보호자의 모습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저자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지는 슬픈 날이었다. 회사 경영을 해오던 50대 환자는 저자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줄 수 있는 건 내 작품들뿐이라고 한 벌 줘도 될까요 했는데 환자 회사에서 제작한 에코퍼 코트가 택배로 왔고 환자는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글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한 사람들의 마음을 적은 기록이다. 글 속의 환자들과 함께한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되묻곤 한다. 죽음이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원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려면 어떤 생을 살고 있어야 할지,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바쁜 일상에 슬픔과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읽어보기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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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이와 차이 -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얀 그루에 지음, 손화수 옮김, 김원영 추천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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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애를 가진 언어학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타인과 다른 신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을 하였고, 논픽션 부문 최초 북유럽이사회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며,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에서 찬사는 계속되고 있다. 본문에 앞서 김원영 변호사의 강력 추천글이 있다.

 

저자 얀 그루에는 세 살 때 척수근육위축증이라는 난치성 유전 질환을 진단받았다. 얀은 스무 살이 넘으면 걷지 못하고 서른 살이 넘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 휠체어를 타거나 주변 사물에 기대어 걸었고, 공부를 계속했고, 여행을 다녔고, 서른 살이 넘어서 교수라는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어린 시절은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한 친밀하고 유대감 있는 시간이었다.

 

얀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네가 아직도 살아 있었니?’라는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는 대신, 잠깐의 침묵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열네 살 때 선생님은 리미널 페이즈(Liminal Phase)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의 지점으로, 통과의례 중 가장 상처받기 쉽고 취약한 부분을 말한다.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 때, 무성영화부터 시작해 영화의 역사를 차근차근 훑었다. 영화 속 천사가 사람이 되어 사랑에 빠졌다. 그는 영원의 시간에서 벗어나 찰나의 시간 속으로 발을 들였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크로노스로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로 지금 현재의 순간을 의미한다.





제목을 <한 인간으로 거듭나기까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마크 오브라이언의 책 제목이어서 포기 해야만했다. 저자와 오브라이언은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마크는 일찍 숨을 거두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들추어 글을 썼다. 기억 속에는 행복하고 근심 걱정 없는 모습과 동시에 주변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험했던 적대적 충동감, 불쾌감, 반감 등도 포함되어 있다. 부모님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 언제나 일 뿐이란다.”

 

얀은 소질은 없지만 일기를 꾸준히 쓴 덕분에 수년 전 기억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책장은 부모님이 물려준 수많은 서류로 가득차 있다. 저자도 부모님 습관을 답습하듯 임신과 태교에 관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서류 중에는 진단서와 소견서, 관련 의학 저널 등이 대다수였다. 저자는 홀로 있을때조차 최소 한 명의 어른이 있었다. 물리치료사, 학교의 인턴 교사, 또는 정형외과 의사 들이다. 그들의 의도는 내게 선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권위와 통제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타인의 시선은 훈육과 통제를 의미한다고 한다.

 

저자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고 세상에 더 확실한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또 하나는 내게 주어진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관이나 수용 시설에서 살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서늘한 방 안에서 속옷 차림으로 서 있어야 했고 팔 다리 근육을 만져 보기도 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 아래에 있었다. 선천성 근육 질환을 앓는다는 사실은 어디에 주차할 때면 휠체어가 마치 목줄을 매어 놓은 반려견처럼 여겨졌다.





아내를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찍힌 낙인, 수많은 질문들, 여행을 하기 위해 예약했던 휠체어가 준비가 안되었던 일들, 기차를 사전에 예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노력하고, 과거의 노력을 기억하기 위해 또 노력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낙인을 뜻하는 스티그마, 즉 신뢰할 수 없는 가시적 표식에 관한 글을 썼다. 스티그마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피부를 불에 지져 표식을 남기는 것을 뜻했다.

 

휠체어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는 것을 강요 당하는 것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던 날 비 때문에 우울증을 빨리 발견했다. 네덜란드 심리치료사를 찾았지만 상담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왜 우울한지 설명할 수 없었고, 그는 왜 네덜란드에 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노르웨이의 집으로 돌아온 후, 모국어로 상담을 할 수 있는 심리치료사를 찾았고 왜 우울한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어떻게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삶과 자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다루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글은 철학적이고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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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 생성 편 - 마법, 제국, 운명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티머시 힉슨 지음, 정아영 옮김 / 다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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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 영화, 게임에 바로 써먹는 아마존 베스트셀러의 창작 팁을 전하는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의 생성편이다. 저자는 어떻게 써야 한다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와 그러지 못하는 이야기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으며, 어구를 쓰더라도 비교적 가벼운 느낌으로 썼다. 현실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으로써 글을 쓰기도 했다고 서문에 밝혔다.

 

<해리 포터>, <스타워즈>, <아바타: 아앙의 전설>, <반지의 제왕>, <얼음과 불의 노래> 등 여러 장르의 명작들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장이 끝나는 곳에 바쁜 작가를 위한 n줄 요약 코너가 있어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읽을 수 있다. 다른출판사 포스트에 생성편과 구동편의 요약노트가PDF로 올려져 있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프롤로그는 독자가 작품을 처음 만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 부분이 왜 필요한지 더욱 빈틈없이 따져봐야 하는데 없느니만 못하다면 쓰지 말라고 한다. 첫 장은 작가에게 일종의 시험과 같다. 미칠 만큼 쓰기 어렵지만 안 쓸 수는 없는데다, 독자가 들춰보고 계속해서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을 소개하고, 재미있는이야기라고 독자를 설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첫 장은 설명을 제공하기보다 나중에 나올 설명을 위해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맥락을 쌓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상징을 이용하는 복선의 한층 효과적인 형태 중 하나로는 모티프가 있는데, 이때 상징은 대체로 이야기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등장한다. 반복 덕분에 상징이 눈에 띄고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는 노인을 자기희생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는 구절이 반복해서 나온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리라 암시하는 복선이라고 할 수 있다. 복선은 독자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의 흐릿한 형체를 보여줄 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의 긴장이 어디에서부터 생겨나는지 귀띔하라는 의미다. 복선은 독자에게 이야기를 안내해준다.

 

마법 체계에서는 판타지 이야기를 쓸 때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한 가지는 하드 마법 체계와 소프트 마법 체계 중 무엇을 도입할 것인가다. 마법 체계의 미학도 중요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갈등, 문제, 인물들의 상호 작용이 전개되는 데 무엇보다도 큰 작용을 하는 것은 마법 체계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 그리고 한계, 약점, 대가다. 인물들이 거의 조절이 불가능한 수동적 마법 능력을 갖고 있으면 서사의 긴장을 더욱 쉽게 끌어갈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자신의 지능, 독창성, 그 밖의 각종 기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창조한 허구적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에 따라, 각자의 판테온 내에서도 더욱 중요하게 숭배받는 신이었을 것이다. 흔히 신생 종교라고 하면 도전받고 변화할 일이 적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세 개의 장은 트래비스 리 푹스의 도움을 받아 썼다. 그는 휴스턴 라이스 대학교에서 인류학, 이슬람교학, 르네상스 이전 역사학학사 및 중세 역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동 대학에서 청동기 문명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휴스턴 자연 과학 박물관 중동 유물 및 이집트학 큐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역사 속 가장 웅장한 이야기들에 대한 스포일러를 하자면, 모든 제국의 끝은 몰락이라는 것이다. 혁명으로 무너지는 제국을 창조할 때는, 혁명에는 대개 오랜 기간에 걸친 경제 불안정, 문화적 분열, 정치 환경 변화가 선행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멸망의 길을 걷는 작중 제국을 그릴 때, 작가는 중앙 당국이 꼭 지니고 있어야 하는 힘, 그런데 잃고 있는 힘, 그 결과 영토 전반에 대한 통제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판타지가 아니어도 서사를 다루는 글에는 세계관을 펼치는 데 글쓰기의 기술이 필요한 시대라고 한다. 이 책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때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요약노트를 많이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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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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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살래]는 얼마 전 읽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너 누구니]에 이어 세 번째 책이다. 저자는 지난 2월에 고인이 되셨고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소설가, 시인이자 수필 다방면으로 탁월하신 분이셨다. 한국인 이야기는 유작으로 계속 출간 되는지 책 뒷면에 제목이 나와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을 한국의 미래 비전을 통찰하는 선생님만의 꼬부랑 열두 고개 이야기이자 알파고가 어디서 왔고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호주머니에서 안드로이드가 울었다. 진동했다. 의식이 없는 물건이라도 꿈틀거리면 살아 있는 것 같다. 표현이 멋져서 몇 번이고 읽어 보았다. ‘알파고 포비아라는 말이 AI라는 말과 함께 오르내리고 있단다. 알파고가 바둑의 마왕 이세돌을 이겼기 때문이다. 인류가 완패한 날, 세상이 뒤집힌 판국인데 뭔가 한마디 코멘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기자는 은퇴한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영면에 들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해왔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우리 기억의 일부가 되어 알아서 전화를 걸어주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기 집 전화번호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실제로 영국 노부부가 애플 상대로 소송을 일으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스마트폰 수리를 맡겼다가 그 안에 넣어둔 자료들이 몽땅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삶이 빈 플라스틱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스마트폰에 뺏긴 뇌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인간은 도구를 낳고 도구는 인간을 낳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별다른 게 아니다. 스마트폰의 어느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 화상 인식도 하고 문자 인식, 음성 인식까지도 해온 그게 바로 인공지능이다.

 

조선 태종 12, 코끼리가 조선에 들어왔다. 코끼리 이야기는 슬프지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 코끼리가 인도만 갔어도 짐을 끌었을 것이고, 동물원에 갔다면 구경거리가 되어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조선의 코끼리는 세종 덕분에 물과 풀이 좋은 곳에서 천수를 다하고 편히 죽었다고 한다.

 

알파고를 포함해서 딥 러닝이라고 하는 혈통을 가진 애들 아버지가 따로 있는데 제프리 힌튼, 얀 레쿤, 요슈아 벤지오를 캐나다 마피아 3인방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단층 딥 러닝을 여러 층의 딥 러닝으로 만들어 피드백을 계속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마치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자신이 학습하는 인간의 뇌처럼, 같은 문제에 성공하면 당근을 주고 실패하면 매질의 자극을 스스로 주었던 것이다.

 

오늘 디지털 컴퓨터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노이만이 없었다면 오늘의 컴퓨터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세대 컴퓨터 개척자들은 모두가 남성들이고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등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린 사람들 중에도 여성의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알파고는 어머니가 없다고 하는가보다.

 

대만 출신 알파고를 만드는 데 숨은 주역이었던 생아버지 아자 황은 알파고가 시키는 대로 바둑알을 놓았지. 이거 하나만 가지고도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변화를 준 것이 있다면 첫째도 둘째도 바둑을 통해서다. 코끼리 같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알파고가 한국의 서울에 와서 이세돌과 바둑 경기를 하지 않았더라며 알파고가 뭣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AI도 구글의 딥 마인드의 존재도 깜깜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궁금해졌는데 딱 맞는 글귀를 찾았다. 수학을 하는 사람, 컴퓨터를 하는 사람은 왜 바둑에 관심을 두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두었던 체스와 다른 놀이들이 많은데도 왜 바둑일까. 바둑이 뭐길래.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육도 큰 변화를 겪었다. 오래전부터 제안한 디지로그 교육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의 병행이다. 제도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교육의 내용까지 바뀌어야 한다. 지식 전달에 그치지말고, AI 사회에 필요한 사고의 능력,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책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어이다. 기술 용어라기보다 좀 더 넓은 IT 전반의 문명 현상을 담고 있는 키워드이다. 모두가 디지털화를 외치며 모든 세상이 01의 세상으로 변해갈 듯하다. 지금은 기가지니로 TV도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식당에서 로봇이 서빙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은 인공지능 기술을 역사와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인간과 문명, 기계와 생명을 미래와 연결하는 AI 입문서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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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무늬 상자 특서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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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의 김선영 작가의 신간 [붉은 무늬 상자]는 전원주택을 배경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학폭 미투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 피해자의 폭로에 공감하고 분노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아토피 치료를 위해 산골 이다학교로 전학을 간 벼리는 겨울 방학을 끝내고 중3 새 학기가 시작되어 기숙사에 짐을 넣으러 가던 중 엄마와 은사리 폐가에 들어가게 된다. 엄마는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 살던 집이랑 위치도 그렇고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흉가나 다름 없는 이 집으로 이사를 하자고 한다. 지붕이 내려앉은 작은방에서 오래된 붉은 무늬 상자와 마루 한 가운데 놓인 가죽 구두를 발견한다.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소문을 듣게 된 벼리는 괴롭힘 당하던 태규를 도와준 이후 떠도는 세나에 대한 얘기를 무턱대고 믿고 판단하고 멀리 한 게 미안했다. 선배와 붙어먹은 아이라고 했다. 전학 와서 제일 먼저 들은 말이어서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세나는 학교도 결석을 하며 졸업하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세나에게 그동안 아토피로 인해 왕따당했던 흑역사를 얘기해줄 참이다.

 

남의 일에 간섭해도, 여러 사람이 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아도, 자기 할 일만 하고 공부만 해도 왕따의 조건이 된다. 잘난체해도, 있는 체해도, 못나도, 지나치게 가난해도, 튀어도, 냄새가 나도, 지저분해도, 나처럼 아파도, 어떤 때는 쳐다만 봐도 따돌림의 표적이 된다.p71

 

엄마는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께름칙하네 뭐하네 하며 기피할 일도 개의치 않고 기계를 쓰지 않고 당분간은 집의 내력을 손으로 정리해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블로그에 은사리 모습을 세세히 올리자 이웃 블로거들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방과 후 세나와 함께 붉은 무늬 상자를 열어본다. 상자의 주인은 고1 여고생 강여울이다. 또래들의 취향인 팬시와 책이 들어 있었고, 물건 보존 상태가 생각보다 좋았다.

 

일기장은 여울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블로그 글을 보고 이다학교 출신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전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들어 온 전학생 고현의 낙서에 여울이가 죽게 된 것이다. 요즘은 모든 것이 필터링 되는 시대인데 유명인에 대해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 해당하는 시간에 대한 검증도 중요하다. 이건 여울이네 집인데라고 비밀 댓글이 달렸고 이웃이 아닌 해시태그를 따라 들어왔다. shoot라는 사람과 댓글을 주고 받다 여울이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나와 벼리는 일기장을 덮고 말이 사람을 죽인 거라고 했다.

 

한 사람이 죽었고 소문에 소문이 덧씌워져 버려진 곳이 되었다는 게 화가 났다. 여울은 아빠가 그 말을 믿고 있었고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왜 그런 말이 떠도느냐고 했다. 부모님이 부끄러운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다이어리 사이에 아버지가 준 손편지는 마음이 아팠다. 못 본 척하거나 방관하는 것도 가해라고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도 소문은 따라왔고 죽어야 할 것 같았다. 죽어야 끝날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낙서는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여울의 일기장 맨 마지막 글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용기를 내어 진실이 밝혀지니 얼마나 좋은가. 사람(여울)은 죽고 없지만 누명은 벗어야 한다. 엄마는 집 본연의 모습을 살리면서 외할아버지가 지었던 옛집을 떠올리며 수리했다. 이 집만 보면 눈물짓는 이유를 말해주며 아버지에게 철없게 군 것 같아 부끄럽다고 했다. 누구든 와서 몸이든 마음이든 치료할 수 있는 집으로 만든 것은 대반전이었다.

 

[붉은 무늬 상자]는 청소년문학으로 자녀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학폭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두 딸이 잘 자라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저자는 소설을 쓰며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이다. 타인을 위해 나서고 오래된 편견에 맞설 때 그 진가는 발휘된다고 본다. 수많은 눈이 외면하고 침묵할 때 폭력은 더욱 거세지고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누군가 용기를 낸다면 그 용기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폭력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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