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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이와 차이 -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얀 그루에 지음, 손화수 옮김, 김원영 추천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평점 :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언어학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타인과 다른 신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을 하였고, 논픽션 부문 최초 북유럽이사회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며,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에서 찬사는 계속되고 있다. 본문에 앞서 김원영 변호사의 강력 추천글이 있다.
저자 얀 그루에는 세 살 때 척수근육위축증이라는 난치성 유전 질환을 진단받았다. 얀은 스무 살이 넘으면 걷지 못하고 서른 살이 넘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 휠체어를 타거나 주변 사물에 기대어 걸었고, 공부를 계속했고, 여행을 다녔고, 서른 살이 넘어서 교수라는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어린 시절은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한 친밀하고 유대감 있는 시간이었다.
얀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네가 아직도 살아 있었니?’라는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는 대신, 잠깐의 침묵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열네 살 때 선생님은 리미널 페이즈(Liminal Phase)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의 지점으로, 통과의례 중 가장 상처받기 쉽고 취약한 부분”을 말한다.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 때, 무성영화부터 시작해 영화의 역사를 차근차근 훑었다. 영화 속 천사가 사람이 되어 사랑에 빠졌다. 그는 영원의 시간에서 벗어나 찰나의 시간 속으로 발을 들였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크로노스’로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로 지금 현재의 순간을 의미한다.
제목을 <한 인간으로 거듭나기까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마크 오브라이언의 책 제목이어서 포기 해야만했다. 저자와 오브라이언은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마크는 일찍 숨을 거두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들추어 글을 썼다. 기억 속에는 행복하고 근심 걱정 없는 모습과 동시에 주변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험했던 적대적 충동감, 불쾌감, 반감 등도 포함되어 있다. 부모님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 언제나 ‘얀’일 뿐이란다.”
얀은 소질은 없지만 일기를 꾸준히 쓴 덕분에 수년 전 기억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책장은 부모님이 물려준 수많은 서류로 가득차 있다. 저자도 부모님 습관을 답습하듯 임신과 태교에 관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서류 중에는 진단서와 소견서, 관련 의학 저널 등이 대다수였다. 저자는 홀로 있을때조차 최소 한 명의 어른이 있었다. 물리치료사, 학교의 인턴 교사, 또는 정형외과 의사 들이다. 그들의 의도는 내게 선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권위와 통제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타인의 시선은 훈육과 통제를 의미한다고 한다.
저자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고 세상에 더 확실한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또 하나는 내게 주어진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관이나 수용 시설에서 살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서늘한 방 안에서 속옷 차림으로 서 있어야 했고 팔 다리 근육을 만져 보기도 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 아래에 있었다. 선천성 근육 질환을 앓는다는 사실은 어디에 주차할 때면 휠체어가 마치 목줄을 매어 놓은 반려견처럼 여겨졌다.
아내를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찍힌 낙인, 수많은 질문들, 여행을 하기 위해 예약했던 휠체어가 준비가 안되었던 일들, 기차를 사전에 예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노력하고, 과거의 노력을 기억하기 위해 또 노력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낙인을 뜻하는 스티그마, 즉 신뢰할 수 없는 가시적 표식에 관한 글을 썼다. 스티그마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피부를 불에 지져 표식을 남기는 것을 뜻했다.
휠체어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는 것을 강요 당하는 것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던 날 비 때문에 우울증을 빨리 발견했다. 네덜란드 심리치료사를 찾았지만 상담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왜 우울한지 설명할 수 없었고, 그는 왜 네덜란드에 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노르웨이의 집으로 돌아온 후, 모국어로 상담을 할 수 있는 심리치료사를 찾았고 왜 우울한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어떻게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삶과 자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다루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글은 철학적이고 매력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