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밤에 우리 집은
수잔 마리 스완슨 글, 베스 크롬스 그림,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8월
평점 :
깜깜한 밤중에 멀리 보이는 어떤 집 안의 불빛이 참 정겨워 보일 때가 있어요. 그냥 지나치면서도 자꾸 들여다 보고 싶어지고,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죠. 노란 불빛의 따스함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져 낯설기도 하고, 쓸쓸해지고 무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지요. 정이 새록새록 새어나오는 듯한 집 안은 어떤 모습일까, 누가 누구와 함께 살고 있을까, 지금 가족들은 모두 둘러앉아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한없이 궁금해집니다. 그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황금보다 더 귀한 열쇠가 있어야 하겠죠.
아이가 있는 집의 저녁 풍경은 비슷비슷 할 거예요.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 집 안을 뛰어다니며 놀다 지친 아이들이 졸음이 몰려올 즈음, 그림책을 몇 권 들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찡찡 대지요. 바쁜 엄마는 할 일을 제쳐두고 아이와 함께 누워서 아이가 들고 온 그림책을 하나씩 펼쳐들고 함께 책나라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바로 그런 모습이 떠오르는 그림책이에요. 잠들기 전 아이에게 읽어주면 아이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책, 그림,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는 그림책, 아이와 읽어보면서 밤의 세계 속으로 성큼 발 들여놓을 수 있는 책입니다.
검은 색과 하얀 색, 그리고 빛을 상징하는 노란 색만으로도 풍요로운 저녁 풍경을 담을 수 있네요.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맞이하는 어두 컴컴한 밤은 결코 무섭고 두려운 밤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림책 속 새가 튀어나와 훨훨 날아 먼 하늘의 공간으로 안내해 주어요. 아이들은 꿈을 꾸는 걸 좋아해요. 무서운 꿈 말고,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엉뚱한 꿈이요. 새가 하늘로 날아가 달님과 햇님을 만나고 한 바퀴 돌고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와 아이 옆에 존재하는 꿈, 상상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마치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단어놀이, 말놀이를 하면서 아이는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 것 같아요. 듣기 좋은 말들이 노래처럼 음악처럼 펼쳐집니다.
별빛 총총한
밤하늘의 어둠을...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달님.
달님의 얼굴을 비추는 햇님.
햇님은 달님을 비추고,
달님은 어둠을 밝히고,
밤하늘의 어둠을 노래하는,
노래하는 새
- <본문 중에서> -
인형들이 가득한 방 안에서 그림책을 읽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집 안 가득 비추고 있는 따뜻한 불빛, 빛이 가득한 집. 어둡고 음침해 보이는 그림책이지만 곳곳에 묻어나오는 따스함이 미소짓게 하네요. 어두운 듯, 환한 판화가 집 안 가득한 행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요. 한 권을 조용한 목소리로 읽어주고 나면, 어느새 아이의 쌕쌕 거리는 숨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열광하는 베스트셀러 그림책 중에는 내용이 너무 단순하고 별볼일 없어서 어른이 읽어보면, 이거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하는 책들이 종종 있어요. 흥미진진한 서사도 없고, 그저 단어가 반복될 뿐이고, 너무 쉬운 단어때문에 아이가 지루하지 않을지, 혹은 배울 게 없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기곤 하는데, 아이들은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책들이요. 분명 그런 책들이 집에 몇 권씩 있을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왜 저 책을 좋아할까, 왜 자꾸 갖고 와서 읽어 달라고 할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아이의 뇌구조와 어른의 그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말들 속에서 편안함을 찾아낼 줄 아는 여유를 갖고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내용도 없고, 그림도 단순한 그 책들을 좋아했던 거구요. 이 그림책도 그래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편안함이 느껴지고, 흥얼흥얼 노래가 떠오르는 그림책, 아이에게 엄마의 품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책이죠. 2009년 캇데콧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네요. 여러번 읽을 수록 느낌이 달라지는 그림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