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Miracle 1
강지영 외 지음, 김봉석 엮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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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의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에 이어 시작에서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라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 재미있네요.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SF, 하드보일드, 공포, 추리, 스릴러 등 작품 하나하나가 특색이 있더군요. 기본 바탕은 역시나 제목처럼 스릴러입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긴장감이 아주 제대로 살아있네요. 암튼 시작의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기대하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재미 하나는 보장합니다.

일상적인 공포와 비일상적인 공포를 다룬 작품이 두루 실려 있습니다. 물론 일상과 비일상의 공포를 함께 다룬 작품도 있고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더군요. 인간을 먹는 놈들, 반란을 꿈꾸는 왼손, 인간 사냥꾼, 액귀, 일확천금이 걸린 생존 게임 등 비현실적이면서도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들이죠. 무조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들. 그리고 한국적인 공포를 스릴러라는 장르에 녹여냈다는 점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권총, 마약은 서양에서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잖아요. 무엇보다 친숙해서 좋더군요. 마지막으로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조금 센 스릴러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실력>,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 등은 꽤 잔인합니다. 특히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는 인간 사냥꾼들의 살육 파티를 그린 소설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최민호의 <인간실격>은 장르의 잡종(^^)입니다. SF, 공포,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스릴러 등 온갖 장르가 뒤섞여 있네요. 인간을 먹어치우는 '놈'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한 인간의 폭주하는 분노를 드러낸 작품입니다. 개인인적으로 이런 SF 설정의 공포소설을 무척 좋아합니다. 영화는 더욱더 좋아하고요. 영화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이었습니다. 인간보다 더욱 인간 같은 놈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점점 상실해가는 인간(나), 쫒는 자와 쫒기는 자의 숨 막히는 긴장감, 마지막의 허무한 반전. 시작부터 느낌이 무척 좋았습니다.

강지영의 <나의 왼손>은 <한국추리스릴러 단편선>에 실린 <거짓말> 이후 두 번째로 접하는 작품인데, 역시나 이번 작품도 인간 내면의 잠재되어 있는 심리적 공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저 역시 이분의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공포가 아닌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이런 공포를 끄집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제목처럼 <나의 왼손>은 왼손의 자신의 주인에 대한 반란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척 일상적인 것이 한순간 낯선 것으로 변하는데서 오는 공포감이 무척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무척 짧은 단편이지만 그만큼 인상이 강렬하게 남는 작품입니다. 반전과 깔끔한 결말. 그리고 익숙한 것에 오는 낯선 공포감, 이런 식의 공포가 정말 무섭지 않나 생각합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소재로 한 세현의 <피해의 방정식>은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익숙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다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척 흔한 소재입니다. 그런데 의문의 연쇄 투신자살 사건, 그리고 자살 현장에서는 눈을 뜬 채 깨어나는 박준희, 의문투성이 흥신소사장과 정신과 의사. 그러니까 익숙한 설정이라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힙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정보를 하나씩 주면서 알게 되는 진실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웰메이드 장르영화를 한편 본 느낌입니다.

김상환의 <질주>는 게임 같은 소설입니다. 바로 죽음의 게임. 게임을 클리어하면 1억이라는 돈을 얻고 실패하면 죽는 잔인하면서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그런 게임입니다. 자본주의의 노예와 희생자. 돈을 얻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납치하고 죽이는 인간들. 거금의 돈을 놓고 인간들의 잔인한 게임이 시작됩니다. 엔딩은 있냐고요? 과연 이 게임에 엔딩이 있을 수 있을까요? 돈이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게임은 계속됩니다. 지금 현실이 소설 속 죽음의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끔찍하면서 씁쓸하더군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라! 큰돈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나 사람을 죽여라! 동기는 없다. 원한도 역시 없다. 돈이 최고다!!

김미리의 <주말여행>은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현실적인 공포를 다룬 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평소에 안 좋은 감정을 회복하고자 부부가 주말여행을 떠납니다. 평소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남편이 웬일로 이것저것 준비도 다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제 사람구실 좀 하는 것일까요? 외딴 산장에서 벌어지는 피 튀기는 생존기.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살육전쟁에는 더 큰 음모가 숨겨져 있습니다. 사실 부부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들의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드러나지 않고 숨어서 세상을 조종하고 이익을 챙기는 놈들.

권정은의 <액귀>는 귀신소설입니다. 귀신영화나 소설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강지영의 <나의 왼손>과 함께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적인 공포를 다룬 소설입니다. 숙취에서 깨어난 한 남자가 낯선 곳에서 무언의 존재로부터 시달림을 당합니다. 보이는 듯 하면서 보이지 는 그 무엇.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었습니다.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제 팔에도 닭살이 돋는 그런 체험을 하게 되더군요. 우리나라에 귀신소설이 무척 드문데 정말 반가운 작품이었습니다.

전건우의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는 거침없이 폭주하는 공포 스릴러입니다. 무통증 사내와 인간사냥꾼들의 한판 대결. 속고 속이는 인간들. 피가 바다를 이루는 아비규환 저택. 서로 죽고 죽이는 인간들. 인간성이란 존재 자체를 상실해버린 인간들의 짐승 같은 혈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같은 소설입니다(물론 국내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고어영화^^). 순수한 공포의 쾌락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이상민의 <세상에 쉬운 돈벌이가 없다>는 경호원 출신의 해결사와 악질 스토커의 한판 대결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작품집에는 대결 구도가 상당히 많네요. 광주민주화운동의 가해자와 피해자, 귀신과 인간, 남편과 아내, 돈을 갖고 있는 자와 돈을 뺏는 자, 놈들과 인간 등등. 예전에 온라인게임에서 결혼이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죠. 정확하게 무슨 게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지인이 결혼했다고 좋아하더군요. 무슨 결혼? 게임 결혼. 밥도 섹스도 폭력도 이제는 결혼까지 할 수 있는 게임. 그런 게임이 우리사회에 악질 스토커를 양산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히키모코리 게임 중독자. 작은 관심에 무척 기뻐하고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무척 많잖아요. 굉장히 몰입하면서 읽은 소설입니다. 스토커와 해결사, 경비원, 위층 사내까지 개입된 어마어마한 스토커 사건의 실체는 무척 우습습니다. 가상공간에 대한 맹목적인 맹신 때문이겠죠. 웃기더군요. 씁쓸하지만 웃겨요. 이야기 배치, 아기자기한 미스터리, 유쾌한 풍자와 신랄한 조소, 스토커와의 대결에서 오는 긴장감 등 쉽고 재미있게 읽힐만한 요소들이 잘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나쁜 놈, 부러진 코를 때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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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08-07-0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하반기에 선보일 스릴러단편선 2편은 더욱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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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의 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와 유가와의 조수(?) 같은 경시청 형사 구사나기가 다시 만났습니다. 인스턴트커피를 좋아하고, 조금 장난 끼가 넘치며, 어린 아이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물리학자 유가와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매일 그에게 의지하는(?) 나름대로 귀여운 구사나기 형사도 마음에 들고요(이 아저씨 많이 순진하신 듯).

<탐정 갈릴레오>는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입니다. 제목부터가 무척 직접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타오르다'는 말 그대로 몸이 타서 죽은 사건, '옮겨 붙다'는 물속에 깡통이 조금 떨어진 시체의 얼굴에 옮겨 붙은 사건, '썩다'는 시체의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썩은 사건 등등. 암튼 제목 자체가 사건일 발생한 당시의 중요한 힌트입니다. 그렇다면 스포일러? 고등학교 때 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스포일러를 아무리 까발려도 모릅니다. 이야기의 중간을 넘어 결말에 가서도 아리송합니다. 마지막에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사건을 멋지게 해결합니다. 물리학을 활용해서요. 헬륨 네온 모릅니다. 콘덴서의 전기 축적 역시나 모릅니다. 빛이 직진하지 않고 굽는다는 사실 역시나 모릅니다. 물론 친절하게 유가와가 설명을 해 주지만 이런 트릭은 직접 눈으로 실험을 통해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은 이해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글로 백번 설명을 해도 눈으로 한번 보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싶네요.

국내에 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살펴보니 단편소설이 거의 없더군요. 블랙 유머소설인 <흑소소설>, <괴소소설>, <독소소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편소설이더군요. 블랙 유머소설은 모르겠지만(소설 시리즈는 재미있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소설은 호흡이 조금 끊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물론 트릭(트릭이라기보다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체가 물리학에 기반을 둔 소설이라 길게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시작하는 순간 허무하게 끝나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건의 실체가 파헤쳐져도 "멍" 합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변신>도 이공계의 바탕을 둔 소설인데, 이번 소설집과는 확실히 다르더군요.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변신>은 장편의 호흡에다가 드라마(멜로)까지 다루고 있어서 이성과 감성을 모두 자극하는데 반해 <탐정 갈릴레오>는 이성만(물리학 원리를 이용한 트릭) 충족시키고 있어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이공계 출신임에도 소설 속 물리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이미지가 연상이 되지를 않아요. <탐정 갈릴레오>는 TV드라마로 방영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 소설은 글보다는 영상으로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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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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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중에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세간에 손가락질 당할 만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런 못된 것은 내버려둬라. 잘라 내버려라. 누군가를 잘라내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낙원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고, 확실히 그것을 손에 넣을 때가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반드시 자신의 낙원을 찾아낸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잠시일지라도. 뭔가를 지불한 대가로, 낙원을 가져올 수 있다."

<모방범>의 연쇄살인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상처 치유(극복)와 현대 사회의 가족문제를 초능력(사이코메트리)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느 날 도시코라는 중년 여성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히토시)이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며 조사를 부탁합니다. 시작은 조금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믿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까? 시게코는 자신이 모방범 사건으로부터 너무 도망친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복잡한 심경으로 조금은 황당한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됩니다. 물론 히토시의 그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요. 한 가족의 16년간의 가슴 아픈 비극사(불량스러운 딸을 부모가 죽인 후 마루 밑에 16년 동안 묻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거죠.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이죠), 그리고 또 다시 마주치는 모방범 사건의 흔적.

이번 작품에서는 현대 가족사회의 비극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을 처음 의뢰한 도시코의 가족사, 친딸을 죽인 후 마루 밑에 16년간 방치하고 살아 온 도이자키의 가족사, 그리고 사건의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의 가족사.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점괘를 통해 가족 위의 군림하는 도시코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무한한 권력에 순응하는 가족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딸과 그런 딸에게 휘둘리는 부모들. 딸을 죽이고 또 다른 딸에게 비밀을 숨기고 살아가는 가족.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존재하다는 이유만으로 힘들고, 괴롭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런 가족이 있죠? 만약 자신의 딸이 그런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갔다면? 가족이나 친척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하고, 부모를 무시하며, 남자 친구와 어린 나이에 깊은 관계까지 갖고, 사람을 때리고, 친한 친구가 강간당하는 것을 구경하며 좋아한다면? 딸이라고 포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좋지 못한 싹은 잘라내 버려야 할까요? 죽이면 될까요? 말을 안 듣는 자식, 통제할 수 없는 자식,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자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로 그런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어렵더군요.

히토시의 초능력(사이코메트리)이란 사람들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습니다. 사실 히토시의 초능력은 도이자키 가족의 커다란 비극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일 뿐, 믿고 안 믿고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커다란 축은 도이자키 가족의 비극사이지만, 히토시의 학교 생활을 통한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 이익과 무관심 그리고 순응으로 꼬여버린 가족사, 모방범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마에하타 시게코의 상처 치유 등 다양한 문제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가족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소설이니만큼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답답하다고 할까요? 답이 없다고 할까요? 그냥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것일까요? 가족문제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합니다. <화차>, <이유>, <모방범>) 전작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조금 덜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흡입력도 덜어졌고요. 물론 <낙원>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기대감도 그만큼 컸기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뭔가가 가슴에 확 와 닿는 그런 울림이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오랜만에 읽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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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효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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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를 않네요. 단편 하나하나가 정말 재미있네요. 스토리 자체도 좋지만 무엇보다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F현 경찰청 수사1과의 1반 반장 구치키, 2반 반장 구스미, 3반 반장 무라세. 별명이 정말 캐릭터에 딱 들어맞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냉혈한 구스미 반장이 가장 좋은데('제3의 시효'라는 작품에 등장해서 정말 캐릭터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자백 받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할까요? 보통 아무리 형사라도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범인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조금이라도 동정심을 갖게 될 텐데, 정말 포커페이스입니다. 냉정합니다. 죄를 지은 범인은 잡으면 되고, 그러면 끝이다. 사실 단체생활에서는 정말 싫은 인간인데, 이상하게 이 소설에서는 매력적이게 보이더군요.), 아쉽게도 이번 작품집에서는 비중이 그렇게 많지가 않네요. 구스미 반장을 주인공으로 장편 하나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서로 다른 n개 중에서 r개를 취하여 조를 만드는 것을 조합이라고 하죠. <제3의 시효>에는 강력계 반장들 말고도 수사1과 과장, 부장, 그리고 각 반장들 밑에 있는 부하들까지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제3의 시효>는 총 6개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각 강력계의 반장이 주인공인 소설도 있고, 과장이 1반, 2반, 3반에서 맡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으며, 1반과 3반이 협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엄청나게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까요? '흑백의 반전'에서 동료 반장에게 멋진 힌트를 주는 절대 웃지 않는 남자 구치키 반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도 장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어린 아이와 관련된 사건에는 살짝 마음을 여는 것 같거든요. 구스미 반장은 여자에 대해 무척 냉정하고요. 애교 있는 여자한테는 보통 약한 것이 남자인데, 이 구스미 반장은 오히려 더 쌀쌀맞고 냉정합니다. 그리고 절대 봐주지 않습니다. 더 악랄하게 물고 늘어진다고 할까요?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야기도 이야기이지만 정말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는 단편소설이기는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에 어울리는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반전이라는 것이 예상을 뒤집어엎는 식의 반전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반전이지만요. 그래서 반전 후의 씁쓸함이 남습니다. 물론 때로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범인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꽤 오래가는 것 같아요. 조폭이나 사기꾼, 강도, 강간범 등 미워하고 증오해야 할 그런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서 그 악의를 숨긴 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런 범죄자, 정말 뒤통수치는 반전이고 슬픈 이야기이죠. 단편 하나하나의 완결성이 뛰어납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뒤의 여운 너무 좋고요. 3박자가 아닌 4박자를 고루 갖춘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족으로 개인적으로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하면) '페르소나의 미소'라는 작품이 가장 좋더군요. 절대 웃지 않는 남자 구치키 반장과는 대조적으로 계속 웃어야 하는 남자 야시로(구치키 반장의 부하직원). 거짓된 웃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남을 위해, 아니며 자신(의 아픔이나 상처)을 위해 항상 웃음 짓고 사는 사람, 그러나 그 내면은 황폐한 황무지 같은 사람. 암튼 그런 인물에 묘하게 마음이 끌려요. 그래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마지막 결말을 알고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요. 사악함이 때로는 진실을 가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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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우 저택 사건 1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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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97년에 제18회 일본SF대상을 수상한 작품 <가모우 저택 사건>. 사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게임을 소재로 한 <이코>를 읽은 후에 왠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제외하고는 미야베 미유키와는 안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척 고민한 작품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쇼와 시대라 그렇게 와 닿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SF소설이라는 장르에 조금 호기심이 생겨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은 첫 소감은 타입 슬립과 시간여행자(time traveler)가 등장하는 SF소설임에도 SF소설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 이상한 소설이었습니다. 인간 드라마와 성장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장르는 SF소설이라도 소설의 내용은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스럽더군요.

미야베 미유키는 아무래도 미소년(?)을 좋아하는 듯. 그녀의 소설에서는 이상하게 미소년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물론 멋진 미소년도 있지만 뭔가 부족한 듯한 그런 미소년이 많이 등장했던 것 같아요. <가모우 저택 사건>의 '다카시'는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호텔에서 수험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자학적입니다(아버지의 영향일까요?). 대학생들이 많이 가는 카페는 왠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피하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면 자신을 흉보는 거라 생각하고, 암튼 착하기는 착한데 스스로를 너무 비하시키고 자학하는 스타일이더군요. 그러니까 핑계도 잘 되는 것 같고. 원래 나는 이런 인간이야. 사실 누구나 이런 인간은 싫어하죠. 무책임하고 자학적이고 핑계나 되고 도망가려고만 하는 나약한 소년.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소년을 굉장히 멋진 청년으로 성장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책장을 덮으면 '다카시'라는 인물에게 무척 호감을 갖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위에서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결국은 성장소설이라는 얘기죠. 그리고 또 하나,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특징인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가 그려집니다. 주인공 소년 '다카시'와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 쇼와 시대의 '가모우 저택'의 주인인 전 육군 대장 '노리유키'와 그의 아들 '다카유키' 물론 갈등이 심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도 이 소설에는 아이와 어른(노인)이 자주 부딪힙니다. '다카시'와 의사 노인, '다카시'와 아버지, '다카시'와 시간여행자 '히라타', '다카시'와 가모우 저택의 늙은 하녀 등등 대단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꽤 유머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서로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사건에 부딪히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결코 서로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죠. 다만 방법을 몰랐을 뿐.

이래니 저래니 해도 이 소설은 SF소설입니다(일본SF대상도 수상했잖아요^^). 그리고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미스터리한 느낌도 물씬 풍깁니다. 의문스러운 사건들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한 SF성장소설의 긴장감을 높여줍니다. 시간여행자 히라타는 왜 쇼와 시대로 왔을까?, 전 육군대장 '노리유키'는 정말 자결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옆에 있어야 할 총은?,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그렇다면 범인은 가모우 저택 안에? 그러니까 시대극, SF소설, 성장소설, 인간 드라마(?)를 다루면서도 의문의 살인사건을 집어넣습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말이죠.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역사는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은 바뀔 수 있겠죠? 소설 속에 주인공 '다카시'는 역사에 대해 무지합니다. 물론 오래 전 역사는 교과서를 통해 알겠지만 현대사는 거의 모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죠. 삼국, 고려, 조선시대는 왕의 이름부터 중요 사건까지 정확하게 암기하고 있음에도 현대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죠. 한국전쟁에 대해 독재정권에 대해 학교에서는 많이 다루지를 않으니까요. 개개인의 행동과 말이 거대한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록 거대한 줄기는 바꾸지 못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여행자의 삶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복잡한 것 같기도 한데, 의문의 살인사건,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는 영리합니다. 그나저나 마지막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후키'를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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