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1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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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 프로필에 적힌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라는 호칭으로 살짝 관심을 갖다가 『점과 선』, 『제로의 초점』을 읽고 완전 반한 작가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마쓰모토 세이초를 뛰어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사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만 읽었다면 이 작가의 진면목을 제대로 몰랐을 텐데,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에 수록된 몇 작품을 읽고서는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만 이 거장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무리이죠. 『일본의 검은 안개』중에서 이번 상권에 실린 「추방과 레드퍼지」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권에 실린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을 추천하고 싶네요. 상권에 수록된 논픽션 「쇼와사 발굴 = 226 사건」과 「추방과 레드퍼지」는 일본의 역사를 조금 깊게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우리나라 현대사와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나름 흥미로웠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와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빨갱이 사냥이 떠오르더군요. 등장인물들이 많고 사건들의 나열이 계속되다보니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조금 헷갈리더군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시작을 알 수 있는 작품과 그림이나 노래와 관련된 작품들, 논픽션 등 다양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제2장 <My Favorite>에 수록된 「일 년 반만 기다려」,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제3장 <노래가 들린다, 그림이 보인다>에 수록된 「수사권외의 조건」, 「진위의 숲」이 가장 좋았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모두 괜찮았지만, 사회파 미스터리소설로서의 재미는 앞의 언급한 작품들이 좋더군요. ‘걸작 단편’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 ‘○○○’에 의해서 뒤집히는 반전이 무척 좋더군요. 단순히 깜짝 놀래키는 반전이 아닌 반전 자체가 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웠습니다. 인간 이면에 감춰진 ‘악’을 들여다 본 느낌이라고 할까요?(제가 이런 이유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역시나 원조는 원조입니다. 정말 소름 돋더군요) 무엇보다 진실의 허구성(또는 드러나지 않는 실체)에 대한 끝없는 문제 제기에서는 왜 이 작가가 대단하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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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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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저 황량한 세계에 홀로 던져지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넓고 깊게 번지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p.59)

  역겨운 땅을 벗어나지 않고 되돌아오는 것은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참으로 서글픕니다. 지금의 현실이 고달프고 비루해도 매일을 견디면서 사는 이유는 정말 두려움, 더 근저에는 바로 외로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매일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스스로를 향해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면서도 버티는 것 같아요. 그 모든 것이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는 익숙하니까요.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바로 그런 역겨운 땅에 버려져서 고독하고 외롭게 삶을 견뎌야만 하는, 설계자들에 의해서 설계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인간들의 지랄 같은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암살자인 래생(來生)이나 이발사, 그림자인 정안, 시체를 태우는 일을 하는 털보, 죽음을 설계하는 설계자들이나 결국은 빈 의자(실체가 잡히지 않는 권력의 핵심)에 의해서 조종되는 삶을, 이미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꼭두각시 인형이나 희생물이 아닐까 싶어요. 총을 직접 쏴서 죽인 자보다 총을 쏘게 만든 설계자(그 설계자의 최고 우두머리는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가 더 나쁘지만 세상은 그런 설계자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결국 그들은 부와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며 살아가죠. 세상의 이치는 그러합니다. 발버둥을 쳐봤자 결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기 싫다면 자살도 한 방법이겠죠. 그런데 그런 자살도 결국 설계자들에 의한 희생이라면? 결국 벗어나지 못합니다. 음모론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권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읽고 나면 뭔가 찝찝함이 남습니다. 사태의 본질을 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총을 쏜 자가 아닌 그 총을 쏘게 지시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죠.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유머가 넘칩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갑니다. 세상은 나쁜 놈이 잘 사는데, 나쁜 놈이 잘 사는 세상이 되면 안 되잖아요?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그래서 읽어야 합니다. 진짜 나쁜 놈을 알아보기 위해 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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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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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습하다, 기괴하다, 기분 나쁘다, 복잡하다, 놀랍다, 재미있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근래 읽은 본격 미스터리 중에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와 함께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 열광하는 제게는 정말 딱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말 하면 욕먹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재미면에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후반에 반전 폭풍 러쉬에는 정말 정신을 놓아버렸네요. 음습하고 기괴하며 매우 기분 나쁜 살인사건(또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 특히나 4중 밀실 살인사건은 더 그렇습니다)이 명탐정 도조 겐야에 의해서 논리적으로 해결되는 장면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짜릿합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나 에도가와 란포의 기괴한 분위기가 흐르는 미스터리소설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교고쿠 나츠히코의 요괴가 등장하는 미스터리소설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암튼 미쓰다 신조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미스터리소설의 모든 요소들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머리 없이 몸통만 있는 정체불명의 귀신, 히가미 일족에 흐르는 불운한 기운과 뭔가 비밀을 숨긴 듯한 분위기, 한 번에 반전으로 절대 끝나지 않는 요즘 추리소설의 흐름까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히가미 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괴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의 등장까지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서 현란하게 펼쳐 보입니다(사실 읽으면서 뭔가 어긋남을 느끼게 됩니다. 뭔가가 이상하지만 그게 도대체 뭔지는 모릅니다. 마지막에 명탐정 도조 겐야가 등장하여 두 사건에서의 수수께끼 37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 놓습니다. 무려 37개나 됩니다. 수수께끼가 한 개씩 풀릴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히메노모리 묘겐의 《미궁 이야기 책》을 명탐정이자 방랑 환상소설가인 도조 겐야가 정리하고 재구성한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소설(잡지의 연재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가는 히메노모리 묘겐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그녀의 남편(하지메, 주재소 순사)과 히가미 가의 어린 하인 요키타카이고, 둘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전개됩니다. 무척 재미있는 서술 방법이죠. 주재소 순사가 조금은 전문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 반면, 요키타카는 어린 소년이라서 비전문적이며 가끔은 황당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그가 머리 없는 귀신 쿠비나시을 보거든요). 그리고 이 둘의 이야기를 이미 죽은 주재소 순사의 아내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히메노모리 묘겐이 그리고 있고요. 구성이 복잡한 만큼 독자들을 속일 여지는 그만큼 많습니다. 따라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합니다. 잡지에 연재되는 소설인데, 막간을 이용하여 소설 속 작가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잘린 머리보다 더 불길한 히가미 일족.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수상합니다. 소설의 형식도 수상하고, 작가나 서술자도 수상하고, 심지어 도조 겐야라는 명탐정도 수상합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의심스럽습니다.

  마지막의 반전은 정말 작가가 독자를 제대로 가지고 놉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후반 반전 폭풍 러쉬는 정말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오랜만에 정말 제 취향에 맞는 재미있는 작품을 읽었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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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의 여름 - 제6회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독자상 수상작! 미도리의 책장 3
히구치 유스케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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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니테일 머리가 잘 어울리고, 야쿠자의 딸이라서 조금 과격하지만 눈물도 많고(20-30분을 내내 웁니다), 질투심이 많은 열일곱의 아사코. 엄마는 출가를 해서 꼬질꼬질한 형사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스러움과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을 가진(그래서 타인에게는 냉소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동갑내기 슌이치. 그들의 알콩달콩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런 그들이 같은 반 친구의 의문스러운 자살사건을 탐정이 되어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청춘 미스터리답게 싱그럽고 건강한 기운이 넘치며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많습니다. 정말 같은 반 친구는 자살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살한 동기는 무엇일까? 슌이치와 아사코가 사건을 수사하며 점점 진실에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또 다른 일말의 진실. 드러나는 일말의 진실은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청춘은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하기도 한 것 같아요.

  소설의 분위기는 무척 밝습니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10대들의 알콩달콩 연애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닭살 돋는 대사와 장면들이 많습니다. 슌이치가 미모의 영어선생님과 대화를 하자 기분이 나빠서 심술을 부리는 아사코나 사랑 고백이 쑥스러운지 딱 한번만 말하겠다고 하고, “나, 너 좋아해”라고 고백하는 슌이치나 뭐 귀엽습니다(여성의 ‘그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도 유쾌합니다. 그거에 대한 슌이치의 생각과 대응은 몹시 웃깁니다). 연애는 원래 유치찬란하잖아요. 슌이치와 아사코의 밝은 연애담과는 달리 살인사건은 꽤 심각하게 흘러갑니다. 임신 4개월인 친구 노리코의 자살, 그리고 그녀와 친해 보이는 다른 친구의 죽음.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왜 그녀들은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요? 어둡습니다. 밝음과 어둠, 싱그러움과 음침함, 따뜻함과 사악함이 공존하고 있어서 즐겁습니다. 물론 어둠보다는 밝음이 더 많아서 이야기 자체가 무겁지는 않습니다. 가볍게 읽기에 좋습니다. 단, 사건의 진상 자체는 조금 식상합니다. 역시나라고 할까요? 여고생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서는 조금은 흔한 사건. 따라서 미스터리적인 요소에는 낮은 점수를, 10대 청소년의 연애담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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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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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리노 나쓰오의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하고 싶네요. 얼음꽃이라는 제목 정말 마음에 드네요.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나약하면서도 사악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나약함과 사악함은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해요.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은 약점(치부)을 감추기 위해서 인간은 사악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암튼 그런 인간의 사악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숨이 막힙니다. 그리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조금 슬픕니다. 그런 인간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해 보이는 불륜에 의한 살인사건. 그러나 이 불륜에 의한 살인사건의 진상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초반에 범행 장면과 범인을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이 범행이 묘합니다.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려는 범죄자와 그 범죄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려는 형사의 심리 싸움이 치열합니다. 경찰에게 범인으로 의심을 받으면서도 범죄의 사실을 경찰의 심문으로부터 파헤치려는 범죄자와 추측으로는 범인이 확실하지만 증거가 부족하여 용의자로부터 어떤 사실을 알아내려 유도 심문을 하지만 오히려 말려 들어가는 집요한 형사의 물고 물어지는 기 싸움이 아주 팽팽합니다. 형사와 범죄자의 교차 서술방식도 긴장감을 고조시키고요. 범인은 과연 형사를 속일 수 있을까? 형사는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치밀한 두뇌 싸움, 둘 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집념의 승리라고 할까요?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60세에 쓴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성이 무척 튼튼하더군요. 어디까지 보여주고,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등 독자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계속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더군요. 함정과 뒤통수, 또 함정과 뒤통수. 정말 인간들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새삼 놀랐습니다. 내용, 추리적인 요소, 구성, 마지막의 씁쓸한 여운까지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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