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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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 일본 기담이 서서히 국내에 소개되는 것 같네요.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을 제외하고는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는 환상, 기담, 공포라는 세 단어로 요약이 가능할 듯싶네요. 정말 기이하고 소름끼치며 환상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이들을 콤비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지만 서른이 넘도록 특정한 직업이 없는 사루와타리(실질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와 괴기소설가 백작(실제 이름은 모릅니다)이 겪는 여덟 가지의 기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반곡 터널>을 시작으로 <아시야가의 몰락>, <송장벌레>, <물소 떼>까지 정말 이야기들은 모두 환상적이고 기이합니다. 그러면서도 공포의 여운도 남고요. 미스터리, 충격, 반전 이런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밋밋할 수도 있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펼쳐집니다. 사실 무섭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로워서 크게 무섭지 않아도 재미있게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이 작가 필력이 좋더군요(번역본을 읽어보고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요). 문장 묘사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사루와타리와 백작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도 너무 우중충할 수 있는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요(연작 소설집 형태입니다). 단, 매 이야기마다 개인 프로필을 설명하는 것은 다소 지루하더군요. 이야기는 잘 기억에 남지 않아도 사루와타리와 백작의 개인 프로필은 선명하게 뇌리에 박히더군요. 이들의 공통적인 취미는 식도락입니다. 특히 두부 요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음식 이야기도 참 많이 나오더군요.

소년탐정 김전일이 가는 곳에 살인사건이 있다면, 사루와타리가 가는 곳에는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암튼 이 남자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피카르디의 장미》에서 또 다시 활약을 한다고 하네요.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환상, 공포, 기담의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기담을 다룬 이야기라 그런지 일본적인 색채와 정서가 조금 강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고양이 등 여자>, <카르키노스>, <송장벌레> 등이 재미있었습니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묘사 뒤에 숨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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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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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늙었고, 중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얼굴. 모두가 등을 돌리는 순간에 잊어버릴 것 같은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 그 남자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다리 위에 누워 있다. (p.515)


온다 리쿠의 문학 세계를 집대성한 책

"내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책." - 온다 리쿠

2005년에 <밤의 피크닉>이 국내에 출간된 이후 국내에 엄청나게 소개되고 있는 온다 리쿠가 스스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밝힌 작품, 바로 <어제의 세계>. 저 역시 온다 리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즐기면서 읽은 책입니다. 사실 국내에 소개가 된 온다 리쿠의 작품 중에서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많죠. 이 작품은 온다 리쿠의 소설 중에서 재미있는 책들만 모와서 좀 더 거대한 세계를 구축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소소한 풍경과 배경, 그리고 소품들 이면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세계는 기존의 온다 리쿠 세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의미가 풍부합니다. 보통 이러한 것을 반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SF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당신은 M마을에서 세 개의 탑을 발견하다

도쿄에서 회사 잘 다니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 이치가와 고로가 실종됩니다. 그리고 전혀 연고도 없는 M마을에서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조사합니다. 이 마을은 이상하게도 탑과 수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리 위에서 살해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사건에 의문을 품고 이 마을에 찾아옵니다. 소설은 재미있게도 '당신'이라는 주어로 독자를 소설 속으로 초대합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여기서 당신이란 누구일까?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말하는 것일까? 다음 장으로 넘어갑니다. 이제는 이치가와 고로의 회사 동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치가와 고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고요. 공간과 시점을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 사실 이런 소설이 이미 있었죠.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복잡함은 덜하고, 미스터리는 좀 더 강화된 느낌입니다. 이 M마을에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정교해진 구성과 다양한 복선으로 이루어진 미스터리 세계

이치가와 고로는 한 번 눈으로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초능력을 가진 사내입니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소설 아니야?, 또는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들처럼 열린 구조의 결말 아닐까? 미리 의심부터 하면서 피하려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기억력이 정말 좋다는 사람이 있다더군요. 그리고 그 초능력 부분의 비현실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암시와 복선 뒤에 드러나는 사건의 결말은 무척 충격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열린 결말의 구조도 아닙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됩니다. 소설 속에 숨어 있던 소소한 장치들이 그 기능을 드러낼 때 오는 쾌감도 확실히 있고요. SF와 판타지, 그리고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탄탄한 구성의 결말이 허무하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어제의 세계, 진실과 거짓, 안과 밖

온다 리쿠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분위기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그리고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작가가 바로 온다 리쿠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SF 판타지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현지인과 외부인의 관계 역전, 이런 내용과 구조도 몹시 흥미롭고요.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 거짓이라면? 내가 사는 현실 세계가 거짓 세계라면? 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곳으로의 떠나는 여행, 온다 리쿠 소설의 빠질 수 없는 매력이죠. M마을은 충분히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분명히, 휴가를 내서 이치가와 고로의 실종 및 살인사건의 비밀을 밝히려고 M마을로 향할 것입니다. 그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요. 마지막으로 온다 리쿠를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고 부르죠. 그리움과 애틋함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미스터리한 색채가 짙어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온다 리쿠의 걸작이자 대표작이라 생각합니다. 온다 리쿠 입문자나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작품으로 시작하시면 좋을 듯싶네요.

오늘이라는 새로운 하루, 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지금 막 시작되어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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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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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부터 내리기 시작해서 내내 이렇게 퍼붓다시피 하는데, 정말이지 겨울비란 놈, 굵으나 가느나 사람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네요. 세상 모든 것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잔설의 날> 중에서)

개인적으로 저런 문구를 무척 좋아합니다.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근원적으로 씁쓸한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새빨간 사랑》, 《도시전설 세피아》의 슈카와 미나토가 좀 더 우울한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악의 본능을 냉정하게 응시하는 것 같고요. 이번 작품은 기존 작품에 비해 확실히 더 우울하고 악의가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죽음을 즐길 뿐입니다. 달콤한 크림을 핥아 먹듯이.'(<잔설의 날>) 사실 노골적으로 악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묘사가 많네요. 인간 영혼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가상의 벌레 '수은충'이 전하는 매력적인 일곱 편의 단편을 만나보세요.

<고엽의 날>에서는 살인자의 황폐한 내면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단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타인에게 고통(돌이킬 수 없는)을 준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를 보여 준 작품입니다. 죽은 사람이 용서해 줄 때까지 고엽(마른 잎)처럼 살라는 작가의 말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냥 죽은 듯이 살라는 이야기죠. 수은충은 그런 인간들의 몸을 찾아 기생하며 그렇게 살라고 계속 속삭입니다. 죽은 자에게 어떻게 자신의 죄를 용서할까요? 죽으면 해결이 될까요? <겨울비의 날>은 조금 (이제는) 식상한 소재의 이야기입니다. 오누이의 금지된 사랑, 그리고 불행을 다룬 이야기거든요. 오누이에게 태어난 기형적인 아기, 타인에게는 밝은 웃음으로 대하지만 내면은 씁쓸한 연인,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도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잔설의 날>은 개인적으로 이번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악의와 슬픔까지 이용해 먹으려는 사악함,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죄를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이 텅 빈 사람들의 내면을 엿보는 것 같아 심히 불편하고, 두렵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누나의 자살로 인해 한 가정이 점점 파괴되어 가는 가정, 그리고 그 가정(어머니)의 슬픔을 이용하여 스스럼없이 죄를 저지르는 누나의 친구. 겨울 내내 쌓인 눈이 녹으면서 드러나는 갈색 얼룩들, 그런 뭔가 불쾌한 느낌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대울타리의 날>은 어린 손자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상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않죠. 역시나 죽음은 평범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미쳤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이 선택한 행동, 이미 사라졌지만 그래도 계속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일탈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사랑과 죽음은 참으로도 멀고도 가까운 것 같아요.

<박빙의 날>이란 작품은 <잔설의 날>과 함께 역시나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여성의 황폐한 내면세계나 악의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하거든요(《백야행》이나 《그로테스크》 같은 작품 정말 좋아하거든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느낌이 비슷해서 이 두 단편을 무척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여고생 두 명이 한 학생에게 왕따와 폭력을 행한 후 어떻게 절망적인 삶으로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행복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이브 날 찾아오는 악몽 같은 하루. 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파멸시키고도 결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인간, 아니 자신의 죄조차 모르는 인간, 그런 인간에게 작가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합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저버린 인간에게 용서는 필요가 없는 거겠죠. <미열의 날>은 산에서 신야와 가즈마라는 두 초등학생의 폭력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비록 어떤 약에 의해 저지른 짓이기는 하지만, 자신들과는 다르면서 약한 생명체에 가하는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폭력의 행사는 무섭습니다. 이제는 어린 아이들도 그런 폭력중독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아요. 마지막 작품 <병묘의 날>은 "이 사랑이 죽는 날은 언제냐고. 그것은 새로운 생각이 싹트는 날. 새로운 열기가 묵은 생각을 태어버린다."라는 문구처럼 사랑에 대한 작품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의 지겨움과 끔찍함,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 스토커와 우울증, 반전으로 이어지는 결말.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겠죠? 이런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제 몸에도 이상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감촉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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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테롤 - invisible × inventor
사토 유야 지음,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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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

무관심.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두 가지다. 내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태도로 서평을 써 대는 평론가, 내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태도로 독파 리스트를 쌓아 대는 서평 사이트의 관리자들, 내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지방의 서점, 나는 책장을 펼쳐 들 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서점을 지날 때마다 심한 슬픔에 휩싸인다.(p.250)  


invisible×inventor. invisible한 작가 사토 유야, 그리고 이러한 허접한(독자들은 그렇게 평가할) 작품을 쓴 작가 inventor 사토 유야.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바닷가에 흘러들어 온 쓰레기라 불리는 'Merry-Christmas' 카드. 그러니까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와 전혀 관계가 없다. 쓰레기 역의 조연으로 잠깐 출연할 뿐.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기존의 문학성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문단과 평단, 심지어 독자들로부터도 차가운 냉대를 받고 절필은 선언한 백민석이라는 작가. <헤이, 우리 소풍간다>, <목화밭 엽기전>,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러셔>(SF소설), <내가 사랑한 캔디>, <죽은 올빼미 농장> 등 주옥같은 작품들과 함께 이 작품이 오버랩 되더군요. 백민석 씨는 너무 순하셨어요. 사토 유야처럼 객기라도 한 번 부리시지.

여중생 토고는 '충동'이 뭔지 제대로 아는 조숙한 학생이다. 화물선을 타고 외딴섬에 도착. 쿠마가이라는 남자의 집에 얹혀산다, 물론 노동자로서 일을 해야 한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중생 토고는 집주인으로부터 어떤 '남자'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좋아하십니까? 밀실 상태에서 이 남자가 사라집니다. 혼란, 혼란, 혼란.

기억상실증에 거린 미사키는,

《내 이름은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잇신 미시카 이것이 내 이름》(중략, 결코 감상평의 줄 수를 늘이려는 행패는 아님), 이렇게 메모지에 기록한다.

과연 독자는 밀실 트릭을 깰 수 있을까?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읽어 보셨습니까? 트릭이 어떻습니까? <크리스마스 테롤>의 트릭은 위의 소설보다 더 심합니다.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아마도) 욕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돈 만원이 애들 껌 값이냐? 이 따위로 글을 쓰는 당신 작가 맞아? 이거 뭐하자는 거야? 한번 해 보자는 거야. 맞습니다. 사토 유야 독자들과 맞짱을 뜨고 싶었나 봅니다. 분명 이야기 중간 중간에 작가 사토 유야가 끼어듭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냥 때려치우라고(사실 그렇고 싶었다. 그런데 돈 아깝잖아). 사실 당신들이 기대하는 그런 미스터리하고 충격적인 반전, 그런 결말은 없을 거라고, 그런 내용은 아니라고, 그래도 따라 올 준비가 되어 있으면 따라 오라고,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얘기 좀 해 볼까요? 작가란 무엇일까요?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일까요? 양서와 악서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문학상 받으면 좋은 소설? 많이 팔리면 좋은 소설? 무조건 재미만 있으면 좋은 소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사실 사토 유야 당신의 <크리스마스 테롤>도 정말 형편없어? 돈 참 쉽게 버는 듯, 물론 다른 작품의 비해 창작의 고통을 더 했을 것 같지만. 사토 유야의 작가로서의 고민을 담은 실험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반말과 존댓말의 뒤섞인 불친절한 감상평, 이런 감상평 밖에 쓸 수가 없네요. 그냥 이해하세요. 사족을 붙이자면, 이 소설은 미스터리도 공포소설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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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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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란 말일세. 문자 그대로 수천 명의 목숨 말이야. 그가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지가 관건이니까. 그는 인류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의학적 진보를 이룰 사람이네."

 

"수천 명의 목숨이요……. 그러면 한 사람의 목숨은 어쩌죠?"



부제 '인류를 구원한 천재 외과의사의 두 얼굴'. 원제 <The Anatomy of Deception>. 의학, 과학, 기술, 예술 등의 분야에서 눈에 띄는 천재들은 있게 마련이죠. 사실 다른 분야는 위의 대화가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학에 있어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다수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한 개인의 목숨을 소홀이 다루어도 될까? 의학 기술의 진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의 목숨은 어찌돼도 상관없지 않을까? 로렌스 골드스톤의 <죽음의 해부>는 그런 과학과 (생명) 윤리 사이의 딜레마를 파헤친 (리얼) 의학 팩션 미스터리입니다. 해부학, 마취제, 임신중절수술, 약물중독, 과학과 종교의 대립(처음에는 해부학이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지 못했죠. 특히나 종교계의 반발이 심했던 것 같아요. 신이 주신 몸을 인간인 의사들이 마음대로 파헤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죠) 등 (의학) 미스터리 팬 분들에게 무척 호기심이 날만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수술용 고무장갑의 개발 및 사용, 지금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아스피린의 역사 등 무척 흥미로운 의학적 사실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토머스 에이킨스, <에그뉴 박사의 임상강의 The Agnew Clinic>, 1889, 펜실베니아 대학

우선 흥미로운 그림부터 감상을 하시죠. 책의 표지의 그림은 토머스 에이킨스의 <그로그 박사의 임상강의(1875)>입니다. 위의 그림은 설명되어 있듯이 <에그뉴 박사의 임상강의>이고요. 실존 인물의 실존 그림입니다. 위의 두 그림을 비교하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1875년 당시만 해도 의사들이 코트를 입고 수술을 했는데, 1889년에는 수술복을 입고 수술을 하죠. 토머스 에이킨스는 소설 속에서도 등장합니다. 누드 파문을 일으켜서 교수직에서 해임되기도 하였더군요(자신의 정면 누드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하니). 누드는 예술일까요? 외설일까요? 암튼 그 당시에는 꽤 파격적이었을 누드에 대한 이야기도 양념으로 살짝 나옵니다. 재미있습니다. 이런 (흥미 위주의)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배경은 19세기 후반, 정확하게는 1889년의 미국 의학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해부학 실습 도중 젊고 촉망받는 의사인 캐롤은 아름다운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실습의 주체자인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와 동료 의사 터크는 시체를 보자마자 놀라운 표정을 보입니다. 오슬러는 수업을 거부하기도 하고요. 그 후 동료 교사 터크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캐롤은 이제 이 죽음 뒤에 숨겨진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제게는 새로운) 의학적 지식이 쏟아져 나오느라 지루하지는 않더군요. 마취제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스스로 약물중독자가 되어버린 천재 외과의사 윌리엄 홀스테드(실존 인물)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진진하고, 혼외임신 때문에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도중에 벌어지는 더러운 뒷거래들, 비위생적이고 막무가내 식으로 진행되는 수술 장면들(제왕절개의 경우 치사율이 80%였다고 합니다. 이건 뭐 죽기 위해 하는 수술이나 마찬가지네요), 과학과 윤리의 대립, 과학과 종교의 대립, 사람의 목숨을 놓고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들의 추악한 얼굴과 진신들(각자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의술을 이용하고, 명예와 부를 이용하는 인간군상들의 얼굴들), 부유층과 뒷골목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지금 현대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실존 의사들의 등장 등등 정말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여태까지 의학을 다룬 팩션 소설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대부분의 팩션 소설들이 (왕 중심의) 역사를 다루고 있잖아요. 그리고 작가의 프로필에서 알 수 있듯이 흥미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리얼 다큐멘터리 의학 팩션'이라는 설명이 정말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단지 조금 아쉽다면 (의학 미스터리 소설적인 측면에서) 사건 해결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조금 부족하더군요. 극적인 사건도 없고, 범인의 추적 과정이 조금 평이하게 진행됩니다. 따라서 반전이나 충격을 기대하기는 힘들고요(물론 반전이 있어야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락적인 요소가 조금 아쉽더군요. 그래도 확실히 흥미로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무척 많습니다. 의학 스릴러, 의학 미스터리, 의학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으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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