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2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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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쿡 이후 이렇게 흥미진진한 의학 스릴러는 테스 게리첸이 처음이지 않나 싶어요. 사실 의학 스릴러 소설이 유행이 지나서인지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지도 않은 현실이고요. <외과의사>의 후속 <견습의사>를 뒤늦게 읽었습니다. <외과의사>에 비해 충격적인 쇼크는 조금 덜하지만, 도덕/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더 충격적이네요. <외과의사>에서 외과의사로 불리는 앤드루 캐프라는 여성의 배를 갈라 자궁을 척출해 살해한 극악무도한 살인마였죠. 미마취 상태에서 배를 갈라 자궁을 척출한다는 것은 고통보다는 충격이 더욱 큰 무시무시한 살해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견습의사>는 그만큼 잔인하지는 않지만, 그 살해 과정이 무척 비윤리적입니다.

<견습의사>에서는 <외과의사>의 외과 의사만큼이나 독특한 살인마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지배하고 싶어 하는 바로 '지배자'가 등장합니다. 또한 시간(屍姦, 시체와의 성교)을 즐기기도 하고요(Necrophilia, 시체 성교 애호증이라 불리죠). 여자를 죽인 후 섹스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종족입니다. 또한 관객 앞에서 섹스를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와 섹스를 합니다. 살해 기술은 외과의사에 비해 떨어지지만 그 과정은 꽤나 충격적이고 무시무시하죠. 그러니까 묘사되는 잔인함은 덜하지만 상상을 통해 그려지는 모습은 꽤나 잔인합니다. 암튼 <견습의사>의 매력은 바로 이 비윤리적인 살인 쾌락에서 오는 섬뜩함, 그리고 충격이 아닐까 싶네요.  


<외과의사>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던 외과의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교도소에서 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탈출을 합니다. 외과의사와 지배자의 만남, 피를 나눈 형제. 그들의 더욱더 치밀하고 잔인한 살해 행각이 벌어집니다. 관객이 필요한 지배자와 관객이 되고픈 외과의사, 스승과 제자 사이의 친밀감. 필요충분조건이 해결되는 셈이죠. 외과의사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는 (보통은 여형사 리졸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정말 이 살인마가 얼마나 끔찍하고 영리한지 보여주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둘의 결합은 더욱더 소름이 끼칩니다.

<외과의사>의 토머스 무어 형사와 캐서리 코델 박사가 은퇴(이 시리즈에서)를 합니다. 여형사 리졸리와 FBI 요원 게이브리얼 딘, 뉴턴 경찰 빈스 코삭, 그리고 여자 법의관 미우라 아일스 박사가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법의관 마우라 박사는 <바디 더블>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사건의 주요 희생자로 등장하죠). 리졸리 형사와 딘 FBI 요원의 대립과 경쟁, 사랑도 꽤나 볼만합니다. 특히 리졸리 형사의 내면에 대한 묘사가 전편 <외과의사>에 비해 풍부하게 묘사되어 그녀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남성 조직에서 뒤쳐지기 싫은 여형사 리졸리(그리고 외과의사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었던 트라우마까지)의 고군분투 기대하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의관 마우라 박사를 무척 좋아합니다. '죽은 자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얼음여왕, 범죄 관련 사장자의 시체 검사를 통해 여러 가지 단서를 알아내는 재능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인데,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는 않네요.

오래 전부터 과학수사를 활용한 범죄소설은 인기가 많았죠. 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과학소설도 역시나 그렇고요. 테스 게리첸은 전직 의사출신입니다. 상당한 의학적 지식들이 나옵니다. 그런 의학적 지식과 과학적 기법들을 기반으로 한 형사들의 수사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일반 독자로서는 전혀 생소한 것들이니까요. 이러한 점도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 지배자의 과거를 파헤쳐 올라가면서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들(물론 지배자의 살인 동기에 대해 그럴 듯한 이유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식은 그냥 잔인한 살인마입니다), 엔딩의 이러한 결말도 그럴듯하고요. 단, 외과의사와 지배자의 마지막 발악이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울 뿐. 보통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살인마가 잡히는데, 이 소설은 조금 싱겁게 살인마들이 잡힙니다. 그래도 마지막 외과의사의 대사는 참으로 서늘합니다. 집념이라고 할까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외과의사의 집념과 열정, 아무리 살인마라고는 하지만 그 점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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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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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콤비의 데뷔작입니다. 아리스와 히무라 콤비가 등장하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나 <절규성 살인사건>과는 다르게 단편이 아닌 장편소설입니다. 제목의 <46번째 밀실>처럼 밀실트릭을 소재로 한 본격 미스터리로(물론 밀실트릭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금 설명이 헷갈릴 수도 있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일본의 딕슨 카로 불리는 밀실트릭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와 (동시간대에 발생한) 정체 모를 인물의 타살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물론 두 살인사건 모두 밀실입니다.

고원의 별장에 초대된 추리소설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주인공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 추리소설 관련 관계자들의 파티라서 그런지 분위기는 시종일관 밝습니다. 유쾌한 이야기들(사건 및 추리와 관련하여)이 많다고 할까요? 평온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던 그들에게 이상한 장난사건이 생긴 후 연속적인 밀실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46번째 밀실>은 1992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발자국, 걸쇠문, 벽난로 등 고전 추리소설에나 등장할만한 트릭들이 등장합니다. 너무 오래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 확실히 트릭은 식상합니다. 따라서 엄청난 트릭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 작품은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의 장난질과 살인사건의 동기(이 부분도 식상할 수 있지만, 그래도 트릭 자체에 비해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의 우연성에 초점을 두고 읽으면 나름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늦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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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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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 본 마쓰모토 세이초(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다보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죠. 미야베 미유키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사실 꽤 오래 전에 구입했음에도 사회파 미스터리(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격 미스터리를 더 좋아합니다)이고, 고전에다 책도 두꺼워서 쉽게 손이 가지는 않더군요. 물론 두 작품이 실린 거라 각 작품의 양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점과 선>은 중편 분량이고, <제로의 초점>은 장편 분량). 암튼 책을 읽은 소감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입니다. 고전으로서의 촌스러움이나 식상함도 없고, 사회파 미스터리만으로 규정짓기에는 내용이나 형식이 무척 방대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범인과 범인의 동기를 쫒는 과정이 무척 리얼하게(발로 뛰는 수사)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암튼 일본 미스터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싶네요. 무엇보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이라는 소설의 제목이 무척 간결하지만 상징하는 의미는 무척 큽니다. 원제는 잘 모르지만, 정말 제목 좋더군요.

<점과 선>은 남녀의 정사(情死)를 다룬 작품입니다. 남녀의 의문의 자살사건. 정부기관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남자와 술집 여자와의 비밀스런 정사.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으나 그 지역의 고참 형사와 직무 비리를 파헤치고 있는 경시청의 한 형사에 의해서 남녀 자살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보통 <점과 선>을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를 하는데, 본격 미스터리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네요. 특히 알리바이 트릭 깨기는 지금 읽어도 무척 새롭습니다. 일본은 철도 미스터리도 무척 유명하다고 하는데, 철도 미스터리의 매력이 무척 잘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처음에는 무척 낯이 익었습니다(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라는 작품이 바로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범인은 누구인지 알겠는데 알리바이가 너무 확실합니다. 너무 완벽한 알리바이가 오히려 독이 되기는 하지만요. 이 알리바이 트릭을 깨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범인을 확실시하게 되면서 드러나는 범행의 동기는 또 다른 반전으로 충격을 던져줍니다. 이 부분은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가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로의 초점>은 신혼여행은 남편의 실종을 다룬 작품입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에 남편이 실종됩니다. 남편의 실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2개의 자살과 2개의 타살. 역시나 범인도 범행의 동기도 도저히 짐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실종 사건에 의문을 품고 아내 데이꼬의 발로 뛰는 수사가 시작됩니다. 범행 동기도 모르는데 남편의 실종 사건을 깊게 파고들수록 관련 인물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상황. 진실에 근접할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버립니다. 사실 트릭 자체는 <점과 선>에 비해서 조금 아쉽지만 범행의 동기가 드러나는 부분은 확실히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일본의 패전 이후 관련 인물들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상당히 공감이 가도록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까지 다루고 있어 작품의 깊이는 한층 더 깊습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제로의 초점', 마지막 여운은 이상하게 슬픔이 깃든 낭만적 정서를 전해줍니다. 씁쓸한 여운이라고 할까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면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이 따를까요? 그냥 많이 죽이는 것이 아닌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파헤친 작품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게 베어져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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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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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에게는 지금까지 지내 온 세월이 있어. 인생의 스승으로 모실 만한 분과의 만남, 일상생활에서 나눈 대화, 뺨을 스치는 바람과 햇살, 향기로운 봄날과 찬란한 여름날, 흘러가는 시간들까지.

<야상곡> 중에서




사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무시하고 위의 표현만 본다면 상당히 유치한 문장일 수도 있는데, 전체적인 문맥에서 읽어 내려가면 상당히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온다 리쿠의 소설은요. 제가 온다 리쿠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노스탤지어 감성이 아닐까 싶네요. 읽고 나면 아련해지는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는 등 가슴이 아련해지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온다 리쿠의 《나비》는 <관광여행>, <다리>, <틈>, <달팽이 주의보>, <주사위 놀이>, <야상곡> 등의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SF 등 다양한 장르의 15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단편집입니다. 따라서 가슴이 아련해지는 그런 감성을 전달하는 소설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상당히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들도 있거든요(<당첨자>나 <틈>). 그리고 기존의 온다 리쿠의 작품들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들도 무척 많고요. '역시나 온다 리쿠 소설이구나!'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소품격의 단편들이 실려 있습니다. <주사위 놀이>는 장편 《엔드게임》이 살짝 연상되고, <야상곡>이나 <달팽이 주의보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연작이 떠오르며, <엔드 마크까지 함께>는 뮤지컬 소설로서 《초콜릿 코스모스》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의 연극적인 작품을 블랙유머로 비튼 것이 아주 재미있고요. <틈>이나 <당첨자>는 서늘한 공포를 전해주는 작품으로 온다 리쿠의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좋아할만한 작품이고요. <뱀과 무지개>는 마지막 문장의 반전이 깔끔하고(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이 떠오르더군요), <주사위 놀이>는 평범한 주사위 놀이를 무시무시한 게임으로 전환시켜 은근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뱀과 무지개>, <틈>, <당첨자>, <주사위 놀이>, <야상곡>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단편소설은 쓰기가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듣죠. 게다가 판타지, SF, 호러 장르의 단편소설은 더더욱 어렵고요(그런 면에서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정말 걸작 단편 SF소설이라 생각합니다. 꼭 읽어보세요). 우선 만족스럽습니다.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들이라 우선 (이야기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흥미가 생기더군요.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이런 궁금증이라고 할까요. 그런 기대에 부응할 만큼 이야기는 확실히 신비스럽습니다. <관광여행>에서는 거대한 돌 손이 땅 속에서 솟아오르고, <주사위 놀이>에서는 독특한 주사위 놀이가 펼쳐지며, <계속 달려라, 한 줄기 연기가 될 때까지>에서는 상자 모양의 기차 세계가 묘사가 됩니다. <뱀과 무지개>의 대화체 형식과 뒤통수를 치는 반전, 극한의 공포를 묘사한 <틈> 등 도대체 어떤 이야기의 어떤 분위기일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물론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있습니다(개개인의 취향에 따라서는 말이죠.). 그래도 이 정도의 독특한 세계를 경험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온다 리쿠의 《나비》는 꽤 괜찮은 선택이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각 작품에 실린 배명훈, 이다혜, 김용언 씨의 짧은 코멘트는 나름 신선했습니다(이다혜 씨는 예전 영화잡지에서 글들을 참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역시나 그 재치는 여전하네요). 그리고 책을 참 예쁘게 만들었네요. 여성분들이 참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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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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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라는 건가. 그래서 신비주의 사건 담당 구사나가 형사가 불려 나온 게로군."

조수석에서 유가와 미나부가 놀리듯 말했다. (p.255)

"자네에게 과학적인 진리라는 말을 들으면, 21세기에 희망을 걸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참 신기하기도 하지." (p.256)

"마침 잘 왔어. 막 준비가 갖추어졌어. 실험 전에 인스턴트커피라도 한잔 할까?"(p.283)

데이도 대학 물리학부 조교수 유가와와 형사 구사나기 콤비가 다시 만났습니다. 사실 유가와와 구사나기 콤비 시리즈는 초자연적인(또는 불가능한, 기이한) 사건의 과학적인 추리를 다룬 소설인데,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위의 대화처럼 유머스러운 부분만 기억에 남네요. 급한 성격에 기이한 사건을 좋아하는 구사나기 형사와 그런 구사나기 놀리기를 좋아하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의 입담은 정말 유쾌합니다. 특히 구사나기가 유가와의 인스턴트커피에 대해 씹는 장면과 유가와의 구사나기의 비과학적인 추리를 씹는 부분은 모든 단편에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지루하거나 그렇지가 않고 볼 때마다 웃깁니다. 암튼 유가와와 구사나기 콤비는 확실히 이 시리즈에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예지몽》은 <꿈에서 본 소녀>, <영을 보다>, <떠드는 영혼>, <그녀의 알리바이>, <예지몽>의 다섯 편의 단편인 실린 소설집입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신비주의와 과학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들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다섯 편이 모두 비슷합니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구사나기가 유가와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합니다. 시니컬한 유가와는 그냥 초자연적인 사건(우연)이다. 보고서에 그렇게 적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유가와는 사건에 뛰어 들고, 가설과 실험을 통해 초자연적이고 불가능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깔끔하게 해결합니다. 꿈에서 본 소녀를 17년 뒤에 만나고, 유령을 보게 되며, 심지어는 폴터가이스트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경찰이 아닌 무당이 해결 할 만한 사건들이죠.

히가시노 게이고는 허황된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아니죠. 조금 가볍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항상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살인사건도 껍데기를 벗기면 결국은 인간들의 사악한 욕심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건이 해결되어도 씁쓸함은 사라지지가 않죠. 이런 초자연적인 사건의 과학적인 해결, 그리고 찾아오는 인간에 대한 회의, 이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쉽게 읽히죠. 어렵지가 않습니다. 대화가 많고 묘사 역시 직접적입니다. 돌려서 설명하지를 않죠.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죠. 마지막으로 트릭의 참신함도 빼놓을 수 없는 이번 작품의 매력이죠. 사실 과학적인 트릭이라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스포일러 부분이라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내용은 공부를 조금 해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암튼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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