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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 본 마쓰모토 세이초(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다보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죠. 미야베 미유키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사실 꽤 오래 전에 구입했음에도 사회파 미스터리(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격 미스터리를 더 좋아합니다)이고, 고전에다 책도 두꺼워서 쉽게 손이 가지는 않더군요. 물론 두 작품이 실린 거라 각 작품의 양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점과 선>은 중편 분량이고, <제로의 초점>은 장편 분량). 암튼 책을 읽은 소감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입니다. 고전으로서의 촌스러움이나 식상함도 없고, 사회파 미스터리만으로 규정짓기에는 내용이나 형식이 무척 방대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범인과 범인의 동기를 쫒는 과정이 무척 리얼하게(발로 뛰는 수사)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암튼 일본 미스터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싶네요. 무엇보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이라는 소설의 제목이 무척 간결하지만 상징하는 의미는 무척 큽니다. 원제는 잘 모르지만, 정말 제목 좋더군요.
<점과 선>은 남녀의 정사(情死)를 다룬 작품입니다. 남녀의 의문의 자살사건. 정부기관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남자와 술집 여자와의 비밀스런 정사.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으나 그 지역의 고참 형사와 직무 비리를 파헤치고 있는 경시청의 한 형사에 의해서 남녀 자살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보통 <점과 선>을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를 하는데, 본격 미스터리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네요. 특히 알리바이 트릭 깨기는 지금 읽어도 무척 새롭습니다. 일본은 철도 미스터리도 무척 유명하다고 하는데, 철도 미스터리의 매력이 무척 잘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처음에는 무척 낯이 익었습니다(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라는 작품이 바로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범인은 누구인지 알겠는데 알리바이가 너무 확실합니다. 너무 완벽한 알리바이가 오히려 독이 되기는 하지만요. 이 알리바이 트릭을 깨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범인을 확실시하게 되면서 드러나는 범행의 동기는 또 다른 반전으로 충격을 던져줍니다. 이 부분은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가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로의 초점>은 신혼여행은 남편의 실종을 다룬 작품입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에 남편이 실종됩니다. 남편의 실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2개의 자살과 2개의 타살. 역시나 범인도 범행의 동기도 도저히 짐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실종 사건에 의문을 품고 아내 데이꼬의 발로 뛰는 수사가 시작됩니다. 범행 동기도 모르는데 남편의 실종 사건을 깊게 파고들수록 관련 인물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상황. 진실에 근접할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버립니다. 사실 트릭 자체는 <점과 선>에 비해서 조금 아쉽지만 범행의 동기가 드러나는 부분은 확실히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일본의 패전 이후 관련 인물들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상당히 공감이 가도록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까지 다루고 있어 작품의 깊이는 한층 더 깊습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제로의 초점', 마지막 여운은 이상하게 슬픔이 깃든 낭만적 정서를 전해줍니다. 씁쓸한 여운이라고 할까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면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이 따를까요? 그냥 많이 죽이는 것이 아닌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파헤친 작품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게 베어져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필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