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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평점 :
"예지, 라는 건가. 그래서 신비주의 사건 담당 구사나가 형사가 불려 나온 게로군."
조수석에서 유가와 미나부가 놀리듯 말했다. (p.255)
"자네에게 과학적인 진리라는 말을 들으면, 21세기에 희망을 걸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참 신기하기도 하지." (p.256)
"마침 잘 왔어. 막 준비가 갖추어졌어. 실험 전에 인스턴트커피라도 한잔 할까?"(p.283)
데이도 대학 물리학부 조교수 유가와와 형사 구사나기 콤비가 다시 만났습니다. 사실 유가와와 구사나기 콤비 시리즈는 초자연적인(또는 불가능한, 기이한) 사건의 과학적인 추리를 다룬 소설인데,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위의 대화처럼 유머스러운 부분만 기억에 남네요. 급한 성격에 기이한 사건을 좋아하는 구사나기 형사와 그런 구사나기 놀리기를 좋아하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의 입담은 정말 유쾌합니다. 특히 구사나기가 유가와의 인스턴트커피에 대해 씹는 장면과 유가와의 구사나기의 비과학적인 추리를 씹는 부분은 모든 단편에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지루하거나 그렇지가 않고 볼 때마다 웃깁니다. 암튼 유가와와 구사나기 콤비는 확실히 이 시리즈에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예지몽》은 <꿈에서 본 소녀>, <영을 보다>, <떠드는 영혼>, <그녀의 알리바이>, <예지몽>의 다섯 편의 단편인 실린 소설집입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신비주의와 과학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들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다섯 편이 모두 비슷합니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구사나기가 유가와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합니다. 시니컬한 유가와는 그냥 초자연적인 사건(우연)이다. 보고서에 그렇게 적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유가와는 사건에 뛰어 들고, 가설과 실험을 통해 초자연적이고 불가능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깔끔하게 해결합니다. 꿈에서 본 소녀를 17년 뒤에 만나고, 유령을 보게 되며, 심지어는 폴터가이스트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경찰이 아닌 무당이 해결 할 만한 사건들이죠.
히가시노 게이고는 허황된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아니죠. 조금 가볍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항상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살인사건도 껍데기를 벗기면 결국은 인간들의 사악한 욕심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건이 해결되어도 씁쓸함은 사라지지가 않죠. 이런 초자연적인 사건의 과학적인 해결, 그리고 찾아오는 인간에 대한 회의, 이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쉽게 읽히죠. 어렵지가 않습니다. 대화가 많고 묘사 역시 직접적입니다. 돌려서 설명하지를 않죠.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죠. 마지막으로 트릭의 참신함도 빼놓을 수 없는 이번 작품의 매력이죠. 사실 과학적인 트릭이라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스포일러 부분이라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내용은 공부를 조금 해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암튼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