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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저 황량한 세계에 홀로 던져지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넓고 깊게 번지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p.59)
역겨운 땅을 벗어나지 않고 되돌아오는 것은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참으로 서글픕니다. 지금의 현실이 고달프고 비루해도 매일을 견디면서 사는 이유는 정말 두려움, 더 근저에는 바로 외로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매일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스스로를 향해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면서도 버티는 것 같아요. 그 모든 것이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는 익숙하니까요.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바로 그런 역겨운 땅에 버려져서 고독하고 외롭게 삶을 견뎌야만 하는, 설계자들에 의해서 설계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인간들의 지랄 같은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암살자인 래생(來生)이나 이발사, 그림자인 정안, 시체를 태우는 일을 하는 털보, 죽음을 설계하는 설계자들이나 결국은 빈 의자(실체가 잡히지 않는 권력의 핵심)에 의해서 조종되는 삶을, 이미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꼭두각시 인형이나 희생물이 아닐까 싶어요. 총을 직접 쏴서 죽인 자보다 총을 쏘게 만든 설계자(그 설계자의 최고 우두머리는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가 더 나쁘지만 세상은 그런 설계자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결국 그들은 부와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며 살아가죠. 세상의 이치는 그러합니다. 발버둥을 쳐봤자 결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기 싫다면 자살도 한 방법이겠죠. 그런데 그런 자살도 결국 설계자들에 의한 희생이라면? 결국 벗어나지 못합니다. 음모론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권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읽고 나면 뭔가 찝찝함이 남습니다. 사태의 본질을 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총을 쏜 자가 아닌 그 총을 쏘게 지시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죠.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유머가 넘칩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갑니다. 세상은 나쁜 놈이 잘 사는데, 나쁜 놈이 잘 사는 세상이 되면 안 되잖아요?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그래서 읽어야 합니다. 진짜 나쁜 놈을 알아보기 위해 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