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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없는 땅 1 ㅣ 미도리의 책장 9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산고양이의 여름』, 『신화의 끝에서』에 이은 남미 3부작의 한 편이자, 198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제42회 일본미스터리추리작가협회상, 제7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의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후나도 요이치의 『전설 없는 땅』은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 지대의 버려진 땅(자원은 고갈, 경제력은 바닥, 범죄와 창녀, 마약을 제외하고는 생활 수단이 없는 곳)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스펙터클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나 저항운동을 보는 듯한 그런 치열함과 삶에 대한 열정이 작품 곳곳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본인이 바라보는 제3세계의 치열한 삶의 기록이라 외국인(국내 독자)이 바라보기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혁명, 게릴라, 착취, 억압, 배신, 죽음, 굶주림, 제국주의의 침탈, 자본의 논리, 국가 권력에 기생하는 특권 계층과 그에 맞서는 민중 등 암튼 굉장히 국내 근현대사와 비슷한 부분이 많더군요.
작가는 무척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다큐멘터리, 르포르타주를 집필했던 경험입니다. 또한 제3세계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소수민족들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소설로서 기록을 합니다. 따라서 후나도 요이치의 작품은 무척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며, 깊이가 느껴집니다. 모험소설은 '문학작품상의 한 장르로서 모험을 다룬 소설'로 설명이 되는데, 이런 모험소설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작품이 바로 『전설 없는 땅』이 아닐까 싶어요. 범죄자 일당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사실성과 생동감이 넘칩니다(특히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단바' 이 자식은 정말 살아있는 캐릭터 같습니다). 그리고 주제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제3세계, 혼혈, 게릴라, 혁명, 마약, 범죄, 살인, 매춘, 제국주의, 권력 등 상상속의 이야기가 아닌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라 읽고 나서도 한 동안 멍한 상태로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더군요.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절대 영웅이 아닙니다. 모험소설임에도 말이죠. (민중들 입장에서는) 가해자이자 (국가 권력 입장에서는) 피해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험소설이라고 해서 주인공들의 멋진 활약이나 결말을 기대하시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소설의 주제는 마지막 장 '다시 시작의 서 - 전설이 없는 것처럼'에 가장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네요. 사실 저는 이 부분에서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양쪽 뺨에 세 줄의 상혼이 있는 인디오 젊은이가 이상한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뒤에 200명이 넘는 여자와 아이, 노인들이 따라오고 있다. 아지랑이와 모래 먼지 속을 흔들흔들, 흔들흔들. 오후의 강한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묵묵히. (p.367)
국내에 후나도 요이치의 소설은 『무지개 골짜기의 5월』과 『전설 없는 땅』 이렇게 두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느낌은 무척 비슷합니다. 사실 국내작가도 아닌 일본작가가 그린 제3세계의 소수 민족의 (작은) 혁명(거창하게 말하자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결국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더군요. 다만 억눌리고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약자들의 이야기일 뿐.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악조건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올곧게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등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암튼 인간들의 뒤틀린 욕망과 살고자 하는 본능, 그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치열한 삶에 대한 아름다움을 그린 멋진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사족으로 이야기는 크게 공간적으로 올빼미의 저택과 거대호 주변에서 전개되는데, 올빼미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20여 년 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묘사나 내용이 꽤 적나라하더군요. 기리노 나쓰오 소설의 여성 주인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불편하면서도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충격적이면서 슬픈 암튼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