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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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년의 사립탐정 사와자키가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의 유괴 사건 의뢰를 맡습니다. 아니 의뢰를 맡기보다는 범인들에게 이용을 당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전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에서 사와자키를 처음 알게 된 후 '이 아저씨는 알면 알수록 참 궁금해지는 것아.'라고 생각하던 차에 만나게 된 작품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알코올 중독 방랑자 아타나베나 신주쿠 경찰서의 경부 니시고리도 무척 반가웠고요. 사와자키와 아타나베, 사와자키와 니시고리의 관계는 무척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애정과 증오, 그 이상의 뭔가 친밀한 관계가 작품의 우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맛도 있는 것 같고요. 암튼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우울한, 그러나 결코 쉽게 좌절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아저씨들에 모습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와자키 사립탐정의 모습만 봐도, '이 아저씨는 도대체 삶의 낙이 뭘까?'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사무실과 집, 술집 그리고 말썽이 잦은 자가용 블루버드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그럼에도 결코 형사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싸가지가 없을 정도로 놀리기도 하고, 대들기도 합니다. 살아가기 위한 자학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니컬합니다.

"인간이 하는 짓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모두 잘못이지만 적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는 노력은 해야겠죠."(p.458)

  소녀 유괴 사건의 돈을 나르는 역할을 맡게 된 사와자키 탐정은 자신의 실수(?)로 유괴금을 전달도 하지 못한 채, 심지어 소녀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죄책감은 아닌 씁쓸함. 사와자키는 유괴되어 죽은 소녀의 외삼촌(가이 마사요시, 음악대학 교수)으로부터 사건 의뢰를 맡습니다. 바로 가이의 아들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 것. 사실 플롯은 무척 단순합니다. 뭐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작품에 흐르는 분위기를 느끼면서 즐기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죠. 소녀 유괴의 범인을 찾는 것, 단순 명쾌합니다. 범인은 무척 지능적입니다. 형사도 사와자키 탐정도 사건의 중심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겉에서 맴돕니다. 경찰이나 사와자키나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다가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는 사건, 이번 작품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매력뿐만 아니라 유괴 사건의 범인을 잡아야하는 추리적인 재미도 상당한 편입니다. 드러나는 진실도 결코 마음 편하지는 않고요. 전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가 가독성에서 조금 떨어졌던 반면, 이번 작품은 가독성도 무척 좋더군요. 쉽게 잘 읽힙니다. 그리고 설정 자체도 미스터리 스릴러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를 유발시킬만한 설정이고요. 범인을 잡아야 하는 탐정이 사건을 수사할수록 점점 범인으로 몰립니다. 대부분의 조건들이 사와자키 범인설을 뒷받침하거든요(고전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출간 년도를 감안하면 이런 설정 나쁘지 않죠). 그리고 캐릭터의 행동들에 대한 소소한 설정(개인적으로 와타나베가 보내는 종이비행기가 무척 좋습니다)도 진한 여운을 남겨, 캐릭터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와자키의 다음 활약도 역시나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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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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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상한 사람들의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곱 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단편 모음집으로 충격적인 반전보다는 일생생활 속에서의 소소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습니다. 낯선 여자가 내 침대에서 자고 있거나 모르는 사람이 친구라고 하며 편지를 보내지 않나 암튼 굉장히 일상적이면서도 황당합니다. 따라서 진실을 알고 나면 그 비밀이라는 것이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닌 무척 사소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별 얘기 아닐 수도 있는 사건들을 이렇게 비일상적인 것으로 바꾸어 미스터리하게 만들어 버리는 재주는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특기이자 장기가 아닐까 싶네요. 관찰력과 상상력이 정말 좋은 작가 같아요. 이번 단편집은 사회적인 문제나 인간관계를 파헤치면서도 적절하게 비밀이나 반전도 숨어 있어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반전의 충격이나 사회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그런 작품들이 아닌 가볍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닐까 싶어요. 본격 추리물과 사회파 추리물의 중간 지점, 드라마가 강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가벼운 미스터리 소품집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듯싶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1994년에 발표)으로 지금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원형인 작품들이 많아서 비교하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자고 있던 여자>는 얼굴도 못생기고 친구도 없는 남자가 회사 남자동료들에게 5천 엔에 방을 빌려줍니다.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죠. 화요일은 A, 수요일은 B, 목요일은 C하는 식으로 말이죠(물론 그런 날은 불쌍하게도 자동차에서 잠을 잡니다. 돈을 벌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애인 하나 없어 자동차에서 자는 것을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암튼 그렇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연히 옷을 갈아 입으로(계약 기간은 아침 6시까지입니다) 아침에 집으로 왔는데, 웬 모르는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A, B, C는 물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여자가 침대에서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서 사타구니 부분에 정액도 묻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술이 취해서 누구랑 잤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열쇠도 없이 어떻게 들어 온 것일까요? 그 다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재미있고 황당하고 충격적인 그런 이야기를 말이죠. 당연히 비밀과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판정 콜을 다시 한 번!> 역시 재기 넘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구성면에 있어서는 <달콤해야 하는데>와 묶어서 설명할 수 있겠네요. 사실 트릭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 두 작품은 설명하기가 조금 그러네요. 과거의 어두운 기억,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켰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강한 증오, 그런 증오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과 허무감. 개인적으로 마지막의 여운이 인상 깊었던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현재의 미스터리 장편소설에 가장 영향을 미친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죽으면 일도 못해>는 일본의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는 문화를 블랙코미디 식으로 비튼 작품입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웃깁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물론 좋죠. 그런데 그런 자신의 성실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웃지 못 할 해프닝 뒤에 씁쓸함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사실 독자 스스로 추리하기에는 조금 어렵습니다. 상황의 아이러니를 블랙유머와 미스터리로 풀어낸 점이 독특하고 좋았습니다.

<등대에서> 역시 결말이 무척 돋보이는 작품인데, 인간의 나약하지만 잔인한 면을 극대화시킨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분노와 적개심, 증오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잔인한 장난을 다룬 작품입니다. 관계의 역전, 그리고 관계의 지속성의 허울을 파헤친 작품으로 역시나 재미있습니다.

<결혼 보고>는 <죽으면 일도 못해>와 상황 설정 부분에서 비슷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원인이 비슷하다고 할까요? 사건의 우연성을 내세운 작품으로 추리 과정 자체보다는 마지막에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 주는 황당함이 포인트인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코스타리카의 비는 차갑다>는 미스터리는 조금 약하고, 정석대로의 추리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밋밋했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작가 지인이 체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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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버 클럽 Medusa Collection 11
리사 가드너 지음, 이영아 옮김 / 시작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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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만부 이상 판매되며 이름을 알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가드너는 명성만큼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국내에는 『서바이버 클럽』과 『얼론』 두 작품이 소개가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서바이버 클럽』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답게 오락적인 요소가 많지만, 결코 내용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묵직합니다. 『서바이버 클럽』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쇄강간범에게 강간을 당하고 살해 위협을 받은 세 명의 여자 생존자들이 서바이버 클럽이라는 모임을 통해 연쇄강간범을 처벌하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물론 서바이버 클럽은 강간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 후유증 등을 치료하는 목적도 있지만요. 범인은 에디 코모. 그러나 법원에서 공판이 열리기로 한 날, 연쇄강간범이 저격수에 총에 맞고 죽습니다. 그리고 그 저격수는 자동차 폭발로 죽고요. 1년을 기다려 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죠. 강간범이자 살인범이 죽었음에도 그녀들의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도 않고, 마음의 안정도 얻지 못합니다. 이런 무슨 빌어먹을 상황이 있답니까?

  그런데 범인이 죽으면 이야기는 끝이 나겠죠. 서바이버 클럽의 세 명의 여자 중의 한 명이 저격수를 고용해서 살인을 사주한 것일까요? ‘캔디맨’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동료 폭행죄를 저지르고 정신적인 외상까지 입어 휴직을 하게 된 그리핀 경사가 복직하면서 재수 없게도 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리핀 경사가 겪은 과거의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연쇄강간범이 죽은 후에 또 다시 강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시체에서는 바로 얼마 전에 죽은 연쇄강간범의 정액이 발견됩니다. 죽은 범인이 유령이 되어서 정액을 뿌려놓고 간 것일까요? 사건은 계속 꼬이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궁금증과 긴장감을 서서히 상승시키며 독자들을 점점 더 미궁 속으로 이끕니다, 영리하게 말이죠.

  스토리 자체가 무척 매력적입니다. 당연히 죽은 범인이 살아나서 정액을 뿌리고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겠죠? 과거와 현재 사건의 연결 고리를 찾고, 그 관계를 파헤쳐 현재 벌어지는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플롯은 굉장히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건 추리는 굉장히 단순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흘러갑니다. 어렵지 않으면서 내용도 풍부하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강간당하고 살해 위협까지 받은 세 명의 여성 피해자입니다. 여성 피해자들이 주인공인 소설이죠. 재미있는 것은 서바이버 클럽, 피해자 클럽이 마지막에 가서는 각각의 독립된 여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더 이상 생존자도 아닌, 피해자도 아닌 당당하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죠. 반전과 충격 역시 빠질 수 없습니다. 추리소설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점점 더 범죄는 잔인하고 변태적이며, 악독하고 가학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아요. 도덕이나 윤리는 당연히 무시되고요. 미친, 그러나 무척 대범하고 영리한 사이코들이 날뛰는 세상이니 형사들의 무능함도 뭐 이해가 되더군요. 이 소설에서 형사들 정말 답답하거든요. 반대로 생각하면 범인이 너무 영리한 것이겠지만요. 반전의 의외성, 그러니까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물론 이런 식의 반전 많습니다) 나름 매력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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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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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염력 방화 능력(파이로키네시스)이라는 초능력과 미성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결합시킨 초능력 미스터리입니다. 사이코메트리, 사이코메트리, 사이코키네시스(염동력) 등의 초능력자들이 등장함에도 초능력 자체의 신기함과 화려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초능력자들의 불안과 고통, 외로움 등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대부분의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이 그렇듯이 그래서 읽고 나면 씁쓸한 여운이 남습니다. 초능력자가 범죄자(언론에서는 피해자라 부르는)를 살해하는 내용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사회악(미성년자,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묘사되어 있는데, 정말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잔인합니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거든요.)에 대한 처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들의 잔인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괜찮은가?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법 외적으로 이들을 처단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이런 의문점들이 초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하는 준코와 연쇄살인방화사건을 뒤쫓는 형사 치카코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해결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용은 잠들다>에서 이미 초능력자를 등장시킨 적이 있죠. 바로 물건이나 사람에게 남겨진 어떤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사이코메트리, psychometry)이 등장하죠. <용은 잠들다>에서는 어린 소년이 이러한 능력을 가졌고, <크로스 파이어>에서는 20대 중반의 여성이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는 어린 소년과 여성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용은 잠들다>의 청소년 버전의 초능력 미스터리라면, <크로스 파이어>는 성인 버전의 초능력 미스터리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용은 잠들다>에 비해 액션 장면이 많이 등장하더군요. 물론 중반 이후부터는 액션보다는 이야기에 치중을 하지만, 초반 준코의 연쇄방화사건은 굉장히 스펙터클하게 진행이 됩니다. 사실 이런 장면 묘사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새롭더군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준코, 그리고 그 당사자와 주변의 관찰자들에 대한 처단, 총기와 도주, 염력 방화 능력을 이용한 살해 등 암튼 무척 긴박하고 스펙터클하게 전개됩니다.

준코는 옥상에서 폭행당한 여성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녀를 총으로 쏘아 죽인 제3의 인물은 누구일까? 그리고 초능력자 준코와 형사 치카코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될까? 그리고 치카코에게 협력하는 듯한 인물들의 진짜 정체는? 사회악에 대항하는 초능력자 이야기라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등장할 여지가 없음에도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답게 곳곳에 이런 궁금증을 숨겨 놓습니다. 물론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끝까지 계속 읽게 만드는 요소로서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다음으로 미성년자들의 범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미야베 미유키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게 조금 냉정하더군요. 미성년자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도 없고,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해 가능한 동기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잔인한 범죄 행각도 경악할 정도이고요. 그러니까 사회악입니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쓰레기들'인 것입니다. 사회악은 사회악일 뿐,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범죄자의 범행 동기보다는 그 범죄자(사회악)를 대하는 방법의 차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초능력자 준코(와 가디언이라는 비밀단체)는 좀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그래서 폭주를 하기도 합니다. 범죄자들에 대해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거든요), 형사 치카코(와 동료 마키하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고 해도 무조건 처형을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사실 말과 행동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용서라는 말이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너무 크고요. 최단 거리로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과연 나쁘다고 말 할 수 있을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네요. 


덧. 스티븐 킹 원작,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참고로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플라이』, 『비디오드롬』, 『폭력의 역사』, 『이스터 프라미스』, 『크래쉬』, 『네이키드 런치』 등의 주옥같은 걸작들을 엄청나게 만든 감독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크로스토퍼 월켄의 열연이 돋보였던 작품, 『데드 존(The Dead Zone, 1983)』과 조금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인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처음에는 언론에 주목도 받고, 그 초능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해결하기도 하는 등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하는데, 점점 그 초능력으로 인해 괴로워하게 되고 고통스러워하게 됩니다. 이유는? 암튼 굉장히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영화는 사실 그다지 재미는 없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명성에는 조금 어울리지는 않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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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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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방화 능력(파이로키네시스)이라는 초능력과 미성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결합시킨 초능력 미스터리입니다. 사이코메트리, 사이코메트리, 사이코키네시스(염동력) 등의 초능력자들이 등장함에도 초능력 자체의 신기함과 화려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초능력자들의 불안과 고통, 외로움 등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대부분의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이 그렇듯이 그래서 읽고 나면 씁쓸한 여운이 남습니다. 초능력자가 범죄자(언론에서는 피해자라 부르는)를 살해하는 내용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사회악(미성년자,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묘사되어 있는데, 정말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잔인합니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거든요.)에 대한 처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들의 잔인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괜찮은가?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법 외적으로 이들을 처단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이런 의문점들이 초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하는 준코와 연쇄살인방화사건을 뒤쫓는 형사 치카코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해결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용은 잠들다>에서 이미 초능력자를 등장시킨 적이 있죠. 바로 물건이나 사람에게 남겨진 어떤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사이코메트리, psychometry)이 등장하죠. <용은 잠들다>에서는 어린 소년이 이러한 능력을 가졌고, <크로스 파이어>에서는 20대 중반의 여성이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는 어린 소년과 여성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용은 잠들다>의 청소년 버전의 초능력 미스터리라면, <크로스 파이어>는 성인 버전의 초능력 미스터리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용은 잠들다>에 비해 액션 장면이 많이 등장하더군요. 물론 중반 이후부터는 액션보다는 이야기에 치중을 하지만, 초반 준코의 연쇄방화사건은 굉장히 스펙터클하게 진행이 됩니다. 사실 이런 장면 묘사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새롭더군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준코, 그리고 그 당사자와 주변의 관찰자들에 대한 처단, 총기와 도주, 염력 방화 능력을 이용한 살해 등 암튼 무척 긴박하고 스펙터클하게 전개됩니다.

준코는 옥상에서 폭행당한 여성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녀를 총으로 쏘아 죽인 제3의 인물은 누구일까? 그리고 초능력자 준코와 형사 치카코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될까? 그리고 치카코에게 협력하는 듯한 인물들의 진짜 정체는? 사회악에 대항하는 초능력자 이야기라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등장할 여지가 없음에도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답게 곳곳에 이런 궁금증을 숨겨 놓습니다. 물론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끝까지 계속 읽게 만드는 요소로서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다음으로 미성년자들의 범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미야베 미유키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게 조금 냉정하더군요. 미성년자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도 없고,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해 가능한 동기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잔인한 범죄 행각도 경악할 정도이고요. 그러니까 사회악입니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쓰레기들'인 것입니다. 사회악은 사회악일 뿐,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범죄자의 범행 동기보다는 그 범죄자(사회악)를 대하는 방법의 차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초능력자 준코(와 가디언이라는 비밀단체)는 좀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그래서 폭주를 하기도 합니다. 범죄자들에 대해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거든요), 형사 치카코(와 동료 마키하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고 해도 무조건 처형을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사실 말과 행동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용서라는 말이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너무 크고요. 최단 거리로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과연 나쁘다고 말 할 수 있을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네요.

덧. 스티븐 킹 원작,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참고로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플라이』, 『비디오드롬』, 『폭력의 역사』, 『이스터 프라미스』, 『크래쉬』, 『네이키드 런치』 등의 주옥같은 걸작들을 엄청나게 만든 감독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크로스토퍼 월켄의 열연이 돋보였던 작품, 『데드 존(The Dead Zone, 1983)』과 조금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인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처음에는 언론에 주목도 받고, 그 초능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해결하기도 하는 등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하는데, 점점 그 초능력으로 인해 괴로워하게 되고 고통스러워하게 됩니다. 이유는? 암튼 굉장히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영화는 사실 그다지 재미는 없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명성에는 조금 어울리지는 않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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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7-0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로네리님 리뷰를 보니 새롭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