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스터 하필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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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 누구지? 이름 한번 고약하다. '하필이면'은 내가 자주 가는 바위 위에서 자살을 시도한 노숙자 아저씨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하필이면이라는 이름은 없으니 그냥 하필로 부르자. 그리고 그 당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미스터를 붙여주자. 그래 이제부터 세상으로부터 지워진(사라진 것이 아닌) 노숙자 아저씨는 내 속에서 미스터 하필이 된다.

실어증에 걸린 나(지수)는 학교로 자주 찾아오는 빚쟁이 아줌마들을 피해 학교 뒷동산에 있는 바위에 자주 올라간다. 엄마와 아빠, 동생, 형들과는 모두 따로따로 지낸다. 나는 대선동 당숙네의 버려진 주택에 더부살이를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바위를 못 간 사이 웬 냄새 나는 아저씨가 바위 위에서 죽어 있다. 암튼 그 날 이후로 나는 미스터 하필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된다. 미스터 하필이 누구냐고요?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 아 맞다, 노숙자 아저씨는 죽었지.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나. 나의 분신인가? 시큼한 냄새가 나면 이 하필 아저씨가 찾아온다. 나는 혹시 정신분열증 아니 이중인격자인가? 하필 아저씨를 통해 나(지수)는 어려운 고비를 잘 헤쳐 나갑니다.

<굿바이 미스터 하필>은 나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의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나와 자주 대화를 하는 노숙자 아저씨는 세상으로부터 지워진 존재입니다. 또한 관계 맺기에도 서툰 사람이죠(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세상에서 사라지거든요. 노숙자 아저씨가 죽어도 누구 하나 찾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노숙자 아저씨가 이 세상에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냄새 나는 게다가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라 이거 뭔가 이상하네요. 성공하고 멋있는 그런 어른이 아닌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가 지수와 동행하는 안내자라니. 성공한 어른 중에는 분명 멋진 어른도 있죠. 그러나 나(지수)를 과연 그런 어른이 상처를 보듬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또한 아이들에게는 그런 멋지게 성공한 어른들만 필요할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성장소설은 무척 올바른 성장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의 등장은 (좋은 어른들이 동반자로 나오는) 성장소설을 주로 읽은 제게는 무척 충격적이었고, 그만큼 저의 닫힌 사고방식도 열리게 해준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이런 사소한 것에도 이미 편견과 선입견을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더군요.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라고 해서 무조건 삶을 낭비하듯이 살았을 거라는 편견,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실어증에 걸린 나(지수)가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가족은 빚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집니다. 셋째 형은 대학에서 대모를 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픕니다. 그리고 당숙 어른들 사이에서는 돈 문제를 가지고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과외를 하고, 차별을 합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어수선합니다. 빚쟁이로 몰려 힘들게 살아가는 나의 친척 희수네는 엄청난 부자입니다. 친척이 부자라 선생님도 잘해줍니다. 돈이 많고, 빽이 있으면 어른 세계에는 존중을 받고 사랑을 받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는 다르고, 어른들의 언어와 아이들의 언어는 다릅니다.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지수는 이런 이상한 세계에 적응을 못하고 실어증에 걸립니다. 그래도 지수는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백장미를 좋아했던 지수는 엄마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수는 흑장미를 좋아합니다.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시절, 그리움과 따뜻함을 전해 주면서도 내용이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굿바이 미스터 하필>은 주로 나(지수)와 미스터 하필(자살한 노숙자 아저씨)의 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희곡을 연상시킵니다. 각 장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친구, 첫사랑, 여행, 가족, 친척 등의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려한 추억을 전해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개인적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는 무척 공감이 가더군요. 친구들과의 위험한 놀이, 학교 풍경 등은 시대는 다르더라도 흐르는 공기의 분위기는 묘하게 비슷하더군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가벼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학생들을 가리키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읽으면 무척 좋겠더군요. 물론 선생님이나 학생이 아니더라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스터 하필은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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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귀 1 - 죽음의 마을
오노 후유미 지음, 임희선 옮김 / 들녘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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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흡혈귀들이(소토바 마을 주민들은 이들을 '시귀'라고 부릅니다) 전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외부로부터 (조금은) 고립된 소토바 마을에 자신들의 이상적인 마을을 건설하고자 방문합니다. 초대 받지 못하면 방문할 수 없는 시귀들은 속임수를 써서 마을에 안정적으로 안착합니다. 이제부터 시귀들의 살아남기 위한 살육이 시작됩니다.

흡혈귀는 서양에서는 무척 친근한 존재요. 죽은 시체가 살아서 다시 움직인다는 내용은 좀비소설(이나 영화)에서 무척 많이 다루어지기도 하고요. 햇빛을 싫어하고, 피를 빨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말뚝을 받으면 죽는 등 동양(일본) 흡혈귀더군요. 그러나 이 소설은 흡혈귀와 인간의 단순한 대결을 다룬 이야기는 아닙니다. 외부인의 출입이 드문 자급자족 형태의 마을, 동네 주민들의 강한 결속력 등 인간 내면의 존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조건이 우선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외부의 개입 없이 시귀와 인간이란 존재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피를 빨아 먹고 살아가는 시귀는 없어져야 할 존재인가? 피를 먹지 않으면 죽는 시귀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죽이고 피를 빨아 마십니다. 인간도 먹고 살기 위해 짐승들을 죽여서 먹습니다. 그러나 식욕이라는 본능 이외에도 인간들은 인간들을 잔인하게 죽이죠(물론 명분 없는 전쟁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네들은 명분이 있다고 할지 몰라도요). 시귀들을 심판한 권한이 과연 인간들에게 있을까요? 소설 <시귀>의 '세이신'이라는 인간은 그런 의문에 회의감을 갖습니다. 인간이 시귀를 처단하는 것 역시 살인과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은 '세이신'이라는 도련님(승려)이 자주 언급하는 절망과 질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이신이 쓰고 있는 소설 속에는 동생을 죽인 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생을 죽임으로써 살인자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낙원에서 쫒겨 납니다. 형은 왜 동생을 죽였을까요? 동생을 질투해서?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설 속 살인자 형의 이야기는 소설 밖 세이신의 이야기이도 합니다. 형은(또는 세이신)은 절망을 해서 동생을 죽이고 자살 시도를 합니다. 신이 정한 질서에 편입되어 거짓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절망을 합니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자기 자신. 주위 사람들의 기대.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거짓 위선으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 암튼 시귀와 인간들의 대결도 흥미로웠지만 저는 이 세이신의 철학이 마음에 들더군요. 절망과 질서에 대한 세이신의 생각에는 저 역시 무척 공감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 <시귀>는 공포소설이기는 하지만 슬프면서 절망적인 소설이기도 합니다. 인간들의 강한 결속력과 유대감은 시귀가 인간들의 피를 빨아 먹는 행위에 비해 몇 배나 더 소름 돋고 끔찍합니다. 시귀를 두려워서 죽이고, 다음에는 즐거워서 죽이고, 다음에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인간들을 죽여 버립니다. 죄의식은 없습니다.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은 이들을 더욱더 잔인한 살인귀로 변모시킵니다. 시귀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란 존재. 그리고 피를 빨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귀, 시귀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인간들은 그들을 다른 존재로 규정짓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며, 없애야 할 존재로 인식하죠. 시귀들은 숨을 곳은 없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규칙과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를 가만두지 않거든요. 물론 이유도 있고 명분도 있죠. 그러나 과연 그 명분은 누구를 위한 명분일까 생각이 드네요. 자신들(공동체)만을 위한 명분을 명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식의 인간 사냥도 역사적으로 많았잖아요. 이 소설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시귀가 아닌 바로 인간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마지막 인간들의 시귀 사냥은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소토바 마을이 처한 상황들이 무척 공감이 가더군요. 그러나 무섭다기보다는 씁쓸함이 더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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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는 끝났다
이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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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미디는 끝났다.

이진수는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을 다시 한 번 음미하기 시작했다.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라는 독특한 작품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은 씨의 신작 <코미디는 끝났다>(그런데 소설은 2005년 초에 계약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미술관의 쥐>보다 먼저 계약되었다는 얘기인데).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에서의 스피노자는 철학자가 아니라 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개를 죽인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입니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는 그런 추리소설의 형식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개 주인의 범인 잡는 추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환상타운의 거주하는 다섯 명의 용의자들의 성적 담론을 둘러싼 거짓과 위선 등에 대해 까발리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 분들에게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하고 나름대로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로서의 장르적인 재미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고요. 그래서 <코미디도 끝났다>도 뭔가 사회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추리소설이 아닌 그런 추리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은 추리소설다운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물론 현대 사회(현대인)에 대한 문제점도 보여주고 있고요.

범인이 잡히면서 소설이 시작됩니다(범인 잡는 추리소설은 아닌가?). 그리고 형사의 취조가 시작됩니다. 죄명은 살인. 범인의 닉네임은 면도칼 연쇄살인범(레이저 킬러). 최고의 개그맨 이진수를 면도칼로 잔인하게 살해를 합니다. 물론 이진수가 첫 번째 희생자는 아닙니다. 이진수가 살해되기까지의 과정(D-10 day)이 묘사됩니다. 시작은 익명(발신자를 추적할 수 없는)의 문자 "너는 열흘 후에 죽는다, 반드시. D"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런 문자를 그냥 흘려보내죠. 할일 없는 미친X이 보냈다고 보통은 생각은 하죠. 개그맨 이진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점점 자신의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냉정하게 버린 여자 친구와 선배 개그맨, 그리고 유명 영화배우, 현재 연애하고 있는 마담 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살인사건의 현장을 보는 듯한 환영에 시달리게 됩니다. 왜 그는 그런 환영을 보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이 죽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신이 의심하는 인간들은 정말 D(아니면 레이저킬러)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미친 것일까요? 암튼 사건은 계속 의문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인기 개그맨 이진수뿐만 아니라 성공이라는 태양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죠. 가장 일반적인 것이 친한 친구를 잃는 거죠. 저 사람은 성공하니까 변했다는 소리 많이 하잖아요. 또한 평소에는 없던 초조감. 자신의 성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친한 지인까지도 믿지 못하는 의심(보통 성공한 연예인들이 이런 고통으로 인해 자살을 하기도 하죠. 물론 이러한 이유만으로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소설은 그런 성공한 개그맨 이진수의 심리를 다룬 추리소설입니다. D-day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변해가는 개그맨 이진수의 심리 변화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던 그가 지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환영을 보기 시작하며, 점점 초췌해지며, 나중에는 거의 침몰의 수준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공을 거머쥐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 성공을 놓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라는 것. 장난스러운 문자메시지 하나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이진수라는 개그맨은 정말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성공 강박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비극을 다룬 소설로 읽어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심리를 주로 다룬 추리소설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을 다시 한 번 음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죠. 사실 아직도 범인이 조금 헷갈립니다(조금 이해가 안가서 작가노트를 살짝 읽었는데 저의 의문에 대한 답은 없네요. 오히려 의문점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바로 서술트릭이라는 말. 이 소설에 서술트릭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서술트릭으로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암튼 잘 모르겠네요). 범인은 A일수도 있고, B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지막 문장에 범인이 밝혀집니다. 그런데 그 범인이 실제 범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조금 설명 안 되어지는 부분이 있더군요.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또한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이진수의 핸드폰으로 온 D로부터의 메시지. 결정적 증거인데. 암튼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A가 범인이야? B가 범인이야? 그렇다면 그 범인은 언제부터 범행 계획을 세웠을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이진수가 보는 환영은 무엇일까? 핸드폰으로 온 메시지는? 결정적인 궁금증은 생략. 암튼 <코미디는 끝났다> 쉽게 읽힙니다. 카운트다운 형식의 소설은 확실히 잘 읽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친근합니다. 인기 개그맨이 등장하니까요(연예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도 나오고요). 무엇보다 성공한 인기 개그맨의 심리 변화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모호성. 마지막으로 은근히 잔인하다는 것. 스토리의 구조는 조금 단조로울 수도 있으나 웃음을 주는 개그맨을 주인공으로 한 잔인한 추리소설이라는 참신함과 신선함 면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추리소설의 소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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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미 2011-10-2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오늘 이책 끝까지 봣는데
마지막에 범인이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랑 너무 달랐고
왜 얘가 범인인지에 대한 설명도없어서 당황했어요;;
나중에 작가의말을 보니 그이유는 아무래도
작가가 전하고싶었던게 '범인이 누구다.'
이게 아니라 현대인을 말하고싶었기때문인것 같아요.
정말 잘읽었답니다 ㅎㅎ
 
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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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왜 작가는 벨카(개의 이름)에게 '짖지 않는가?'라고 따지듯이 묻는 걸까요? 개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개는 군견으로 길러져 전쟁에 참가하고, 동족을 물어뜯어 죽이며, 인간의 시체(때로는 살아있는 인간을 죽여서)를 식량 삼아 먹고, 더 우수한 종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교배와 품종개량을 거칩니다. 전쟁에 미친 인간들의 욕심을 위해서 말이죠. <벨카, 짖지 않는가>는 참혹했던 20세기 인간 역사를 개의 시점으로 바라 본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한국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러시아 혁명, 미소 냉전체제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현대사가 개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개가 말을 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들을 내려다보는 신 비슷한 존재가 개들에게 말을 걸고 개들의 존재감(?)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너희는 위대한 개들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길들여지지 말고 짖어야 한다고 벨카를 위해, 기타를 위해, 아누비스를 위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끼어들어서 참견(?)을 합니다.

후루카와 히데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는 아니더군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헌정하는 리믹스 소설 시리즈 <중국행 슬로 보트 REMIX>가 이미 소개되었더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지도 때문에 소개된 작품이겠죠? 추리소설로는 제55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제23회 SF대상을 수상한 <아라비아의 밤의 종족>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네요. <벨카, 짖지 않는가>라는 작품을 읽어보니 무척 독특한 추리소설일 것 같아서 기대가 되는데 말이죠. <벨카 짖지 않는가>는 200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7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을 미스터리소설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도 같은데(물론 미스터리소설이기도 합니다만), 일본의 미스터리에 대한 수용의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군견을 주인공으로 한 20세기 인간들의 역사를 다룬 역사소설이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역사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물론 인간 중심이 아닌 군견 중심의 역사소설이라 그 느낌은 무척 독특했고요.

이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1943년 북태평양의 알류샨 열도에 버려진 군견 네 마리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의문의(대주교로 불리는) 노인이 벌이는 복수극(러시아 마피아와 체첸 조직, 그리고 일본 야쿠자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군견들의 역사(?)는 1991년에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에 자신의 신념을 바친 한 노인의 이야기는 1990-1991년에 벌어지는 이야기이고요. 그러니까 군견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노인의 복수극 이야기를 나중에 읽는 것이 스토리상으로는 이해가 쉽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냥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군견의 이야기와 노인의 복수극이 나중에 만나면서 노인의 의문의 행동이 풀리고, 군견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좀 더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거든요.

인간들의 신념이 전쟁을 낳았다면 개들은 무엇을 위해서 전쟁에 참여해서 인간을 죽이고 동족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국경을 넘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무수한 인간들을 죽였을까요? 더 많은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교배와 품종개량을 거쳐 태어난 새로운 군견들. 필요하면 이용해 먹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소모품의 존재. 군견들이 바라본 인간들의 20세기 현대사는 정말 참혹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암튼 독특한 역사소설(20세기 현대사)을 원하신다면 한번 쯤 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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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미도리의 책장 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작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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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게임>, <외딴섬 퍼즐>의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월광게임>, <외딴섬 펴즐>에서 대학생이었던 아리스가 미스터리 작가가 됩니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서의 '에가미 선배' 만큼 매력적인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가 출연하여 사건을 멋지게 해결합니다. 아리스는 그의 조수로 히무라의 영감을 자극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혼자 생각하는 것들을 주절주절 떠듭니다. 물론 사건 해결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됩니다. 그의 추리력을 일반인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거든요(그러나 히무라가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큰 영감을 줍니다).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의 처음은 아닌 것 같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히무라와 아리스가 만나게 된 계기나 둘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본격 미스터리소설입니다. 그리고 4편의 중편이 실린 소설집이고요. 마지막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사실 장편만큼의 분량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은 대체로 무시무시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묘하게도 조금 발랄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아마도 작가 아리스와 범죄학자 히무라 두 콤비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빚어내는 앙상블이 즐겁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쪽은 열심히 떠들고, 한쪽은 무덤덤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상황이 묘하게 웃기더군요. 히무라의 사건 해결을 미스터리소설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작가 아리스의 처절함(?)도 조금 웃기고요. 나름대로 열심인 작가 같은데, 새로운 트릭이나 다잉 메시지를 만다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작가 아리스 당신을 이해합니다.

'부재의 증명'은 쌍둥이 동생 살해 혐의로 용의자가 된 쌍둥이 형(형은 액션소설 작가)의 알리바이 트릭을 깨는 내용입니다. 쌍둥이 형은 살해 시간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섬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증인들도 있고요. 완벽한 알리바이. 아리스와 히무라는 이런 저런 다양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사건을 추리하지만, 완벽한 알리바이 앞에서는 진전이 없습니다. 시작은 허를 찌르는 반전이 포함된 소설입니다. 작가 아리스 낚시는 참 잘 할 것 같아요^^

'지하실의 처형' 이 작품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과격분자들이 지하실에서 자신들을 배신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과격분자들은 죽일 생각은 없고 겁만 주려고 했답니다(총에는 총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실에 잡혀온 인질(?)이 죽기 전에 와인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와인을 마시자마자 죽습니다. 총살이 아닌 독살(청산가리도 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 와인 병을 쥐고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와인 잔을 잡고 있던 사람이냐?, 아니면 총을 쥐고 있던 과격분자? 범인의 동기는? 이 소설은 '부재의 증명'과는 다르게 사소한 버릇과 살해 동기가 무척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본격 미스터리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다잉 메시지가 나오는 소설입니다. 그것도 두 개의 다잉 메시지가 말이죠. 피로 쓴 이상한 기호와 손에 쥐고 있던 천 엔짜리 지폐. 범인의 사건 시간 조작이라는 귀여운 트릭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조금 밋밋했습니다. 두 개의 다잉 메시지가 마음에 확 와 닿지가 않았거든요. 어떤 다잉 메시지라는 것을 말하기는 조금 그렇고 이해는 했으나 공감은 그다지 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다잉 메시지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고, 두 번째 다잉 메시지 역시 그랬습니다.

마지막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극단의 간판 여배우 '레이나'를 스토커 하던 사내의 죽음을 둘러싸고 범인을 추리하는 소설입니다. 전화 걸기,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기, 우편물 훔쳐보기 등 목숨에 큰 위험은 없지만 악질적인 스토커죠. 레이나의 동료(각본가와 여배우)들이 그녀의 사건을 함께 해결하기로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토커가 우편물을 훔쳐본다는 것을 알고, 레이나와 동료들은 스토커와의 재미있는 게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런 범인이 초등학교 토끼 사육장 옆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역시나 용의자로 의심 받는 인간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합니다. 역시나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는 것이 작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의 임무죠. 이 소설은 사실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깨는 것보다 살해 동기의 반전이 무척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독자의 허점을 파고드는 소소한 트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역시나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것만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의 사고에 갇힌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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