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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ㅣ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벨카, 짖지 않는가> 왜 작가는 벨카(개의 이름)에게 '짖지 않는가?'라고 따지듯이 묻는 걸까요? 개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개는 군견으로 길러져 전쟁에 참가하고, 동족을 물어뜯어 죽이며, 인간의 시체(때로는 살아있는 인간을 죽여서)를 식량 삼아 먹고, 더 우수한 종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교배와 품종개량을 거칩니다. 전쟁에 미친 인간들의 욕심을 위해서 말이죠. <벨카, 짖지 않는가>는 참혹했던 20세기 인간 역사를 개의 시점으로 바라 본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한국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러시아 혁명, 미소 냉전체제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현대사가 개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개가 말을 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들을 내려다보는 신 비슷한 존재가 개들에게 말을 걸고 개들의 존재감(?)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너희는 위대한 개들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길들여지지 말고 짖어야 한다고 벨카를 위해, 기타를 위해, 아누비스를 위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끼어들어서 참견(?)을 합니다.
후루카와 히데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는 아니더군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헌정하는 리믹스 소설 시리즈 <중국행 슬로 보트 REMIX>가 이미 소개되었더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지도 때문에 소개된 작품이겠죠? 추리소설로는 제55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제23회 SF대상을 수상한 <아라비아의 밤의 종족>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네요. <벨카, 짖지 않는가>라는 작품을 읽어보니 무척 독특한 추리소설일 것 같아서 기대가 되는데 말이죠. <벨카 짖지 않는가>는 200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7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을 미스터리소설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도 같은데(물론 미스터리소설이기도 합니다만), 일본의 미스터리에 대한 수용의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군견을 주인공으로 한 20세기 인간들의 역사를 다룬 역사소설이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역사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물론 인간 중심이 아닌 군견 중심의 역사소설이라 그 느낌은 무척 독특했고요.
이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1943년 북태평양의 알류샨 열도에 버려진 군견 네 마리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의문의(대주교로 불리는) 노인이 벌이는 복수극(러시아 마피아와 체첸 조직, 그리고 일본 야쿠자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군견들의 역사(?)는 1991년에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에 자신의 신념을 바친 한 노인의 이야기는 1990-1991년에 벌어지는 이야기이고요. 그러니까 군견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노인의 복수극 이야기를 나중에 읽는 것이 스토리상으로는 이해가 쉽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냥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군견의 이야기와 노인의 복수극이 나중에 만나면서 노인의 의문의 행동이 풀리고, 군견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좀 더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거든요.
인간들의 신념이 전쟁을 낳았다면 개들은 무엇을 위해서 전쟁에 참여해서 인간을 죽이고 동족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국경을 넘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무수한 인간들을 죽였을까요? 더 많은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교배와 품종개량을 거쳐 태어난 새로운 군견들. 필요하면 이용해 먹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소모품의 존재. 군견들이 바라본 인간들의 20세기 현대사는 정말 참혹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암튼 독특한 역사소설(20세기 현대사)을 원하신다면 한번 쯤 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