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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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을 능가하는 감동과 반전이라는 띠지 문구에 100% 동감하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용의자 X의 헌신>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용의자 X의 헌신>이란 작품이 나오키상을 수상한 것은 조금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 암튼 이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악의>는 인간들의 '악의(惡意)'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뜩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는 누가 됐건 상관없는 것이다."

그냥 아무 이유 없습니다. 남에게 불쾌감을 줄 기회가 생기면 눈을 번뜩이고 달려드는 거죠. 상대가 누가 됐건 상관없이 이유 없는 비난과 (언어) 폭력, 궁지에 몰리는 인간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 인간의 악의는 이유가 없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에서도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잖아요. 누구 하나 걸리면 떼거리로 몰려들어서 비방하고 비난하고, 욕을 하고 쾌감과 희열을 느끼잖아요. 얼굴도 모르는 이런 무차별적인 악의, 그러한 악의를 이용한 범죄는 연쇄살인마가 저지르는 살인보다 더 끔찍하지 않을까 싶어요.

베스트셀러 소설가(히다카)의 죽음, 그리고 그의 친한 친구인 전직 교사(노노구치)가 용의자로 검거됩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노노구치와 히다카의 전 부인(하츠미)의 불륜관계. 불륜관계를 히다카에게 들켜서 살인관계를? 또 다시 밝혀지는 히다카의 비밀. 그리고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중삼중의 비밀과 함정들, 그리고 밝혀지는 의외의 충격. 무엇보다 살인의 동기를 파헤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살인의 동기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 내면에 숨은 악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든요.

"왜 그를 그렇게 괴롭혔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대요.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재우쳐 물어봤는데, 딱히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그 말만 자꾸 하더군요."

살인의 동기, 악의(惡意), 그리고 (역시나 아슬아슬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과정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초반에는 불륜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중반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뀝니다. 그러면서 좀 더 인간 내면에 숨은 악의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트릭 자체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한 인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리고 결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도록 깔아 놓은 수많은 복선들. 개인적으로는 <용의자 X의 헌신>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무척 만족스러운 작품을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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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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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악동들의 가슴 훈훈하고 따뜻한 학창시절 이야기. 누구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쯤은 하나 정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연애편지, 첫사랑, 시험, 수학여행, 친구들과의 여행, 지각, 수업 땡땡이, 그리고 소설 속 머저리 클럽처럼 친한 친구들 간의 친목 모임. 학창시절은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그만큼 십 몇 년이 흘러 버린 지금 돌아보기에는 왠지 모를 망설임도 있는 것 같고요.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인 만큼 세상에 찌든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지금의 제 모습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추억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추억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속에 봉해 놓은 아려한 추억과 기억들. <머저리 클럽>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고, 추억을 그냥 봉해버리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이 아니었냐고 마치 제게 묻는 것 같네요.

떨어지는 낙엽에도 가슴 아파하는 개똥 철학자 동순, 신자의 아들로 나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그래도 뭐 할 것은 다하는) 동수, 어른스러운 전학생 영민, 그리고 허튼 소리 잘하는(그러나 나름 로맨스 가이) 아이스하키 선수 동혁, 심형래의 영구가 자꾸 생각나는 (역시나 로맨스 가이) 영구, 그리고 (아쉽게도 이 소설에서는 존재감이 가장 없는) 철수. 아, 그리고 승혜, 소림, 혜련 등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어디에나 있는 그런 친구들. 그들의 학창시절은 너무나 평범합니다. 시험을 봐야 하고, 입시를 치러야 하며, 이성을 보면 두근거리고 설레이며, 반항도 하고 싶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런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거친 시절, 돌아갈 수 없는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을 만나니 무척 그립네요. 정말로 그리워집니다.

"어깨에 걸렸던 낙엽이 땅에 떨어졌다. 낙엽은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썩어 흙에 묻힌다. 우리는 아무도 어제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성장 드라마입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거장답게 고등학생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나라 말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런 표현이 정말 많아 더욱더 그 시절의 그리움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혹시 작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것 같더군요) 동순이가 생각하는 시인들의 시. 역시나 마음속을 촉촉이 적셔 줍니다. 국어 교과서에서 밑줄 긋고 암기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는 것 같아요(시는 감성이지 이성이 아님에도 왜 그렇게 학교에서는 밑줄 긋고 외우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시에는 정답이 없음에도 정답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 아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 그리고 그 시절만의 고유한 문화. 저는 사실 빵집 세대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빵집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것 같아요. 사실 도시 아이들의 성장소설은 접하기가 힘들었는데, 도시나 시골이나 그 시기의 학생들은 모두 비슷했던 것 같아요. 물론 종로3가와 혜화동이 나오니 더욱 친근한 것은 있지만요. 여학생들의 "취이소 하세요." 애교 섞인 이 말투가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냥 취소도 아닌 취이소 정말 듣기 좋더군요^^ 승혜야 기다려야^^

다시 시작되는 우리들의 시대. 지금 청소년뿐만 아니라 20대, 30대, 40대, 50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다 시작이고, 자기 자신의(함께 살아가는 친구들, 가족들)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졸업이 끝이 아닌 시작이듯, 그리고 밤이 끝이 아닌 아침을 기다리는 전조이듯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시작이고 자신들의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10대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소중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비록 현재 자신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립고 소중한 추억이 될 테니까요. 요즘 삶이 어수선하고 힘듭니다. 저는 이 소설이 그래도 "파이팅!!" 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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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더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4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4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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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마우라 & 형사 리졸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외과의사>, <견습의사>, <파견의사>에 이은 <바디더블>의 공통적인 특징은 (당연하게도) 희생자가 여자입니다. 그리고 사건 해결의 중심인물도 역시 여자이고요. 마지막으로 길거리에서 마주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사이코가 등장합니다. <외과의사>에서는 별명이 '외과의사'인 사이코가 등장하여 여자들의 자궁을 도려냅니다. 사실 가슴에 확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자궁을 도려낸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고, 그 고통의 무게 역시 짐작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번 <바디더블>에 등장하는 사이코는 <외과의사>의 '외과의사'보다 더 잔인하고 과감하며 인간 이하의 (소설 속의 묘사처럼 정말 '괴물' 같은) 행동을 보여줍니다.

<바디더블>은 혹시 모성애를 말하고자 하는 소설일까? 유능한 여형사 리졸리는 임신을 한 상태입니다. (뭐 그럼에도 열심히 사건 현장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땅 속 상자 속에 생매장 당한 여자도 임신한 상태이고요. 가끔 그런 뉴스를 볼 때가 있어요. 기적이라고 할까요? 엄청난 모성이 극한 상황에서 자식을 살려내는 그런 기사 말이죠. 이 소설에서도 그런 기적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물론 그 대단한 힘은 모성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요. 암튼 그래서 사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습니다. 모성애를 내세워서 감동을 주려는 것인가? 아닙니다. 이런 모성애를 뛰어 넘는 악한 인간이 등장합니다. 괴물이라 불리는 정말 악한 여자(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워낙 여기 저기 임신한 여자들이 많이 나와서 (죽기도 많이 죽습니다만) 모성애를 다룬 추리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소설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그만큼 사악할 수도 있죠. 모성뿐만 아니라 혈연 자체도 이제는 의심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코 안전한 곳은 이제 없다는 것이죠.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그런 믿음에 대한 배신이기도 합니다. 결코 믿지 마세요.

테스 게리첸는 여성 작가입니다. '법의관 마우라 & 형사 리졸리' 시리즈를 한 권이라도 읽으신 분들은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여성과 관련이 있는 자궁, 임신, 태아 등등. 여성에게 소중하면서도 은밀하게 감추고 싶은 그런 부분을 살인자(사이코)는 희열을 느끼고 잔인하게 유린합니다. 사실 여성 입장에서는 몹시 불편한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의사 출신의 여성 작가 테스 게리첸이 그리는 내용은 무척 섬뜩합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이고, 그 묘사가 무척 사실적이기 때문이죠. 왜 이렇게 작가는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일까요? 소설적인 재미를 조금은 가미를 했지만,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 현실에서도 여성범죄는 비일비재하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잔인하다는 것. 작가는 독자들에게 계속 상기시켜주고 싶은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여성들은 멋지게 사건을 해결합니다. '살아남은 건 시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소설 속의 형사 리졸리가 이런 말을 하죠) 상처는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제목이 <바디더블>일까요?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은 '쌍둥이 자매'라는 것.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자기 집 앞에서 총에 맞고 죽었다는 사실. <외과의사>에서는 리졸리가 엄청 고생을 하더니 <바디더블>에서는 미우라가 엄청 고생을 하네요. 미우라와 리졸리는 이 이상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주치는 진실은 (특히 미우라에게는) 쌍둥이 자매의 죽음을 뛰어넘는 엄청난 충격입니다. 가족과 모성, 외면할 수도 없고 다가서기도 힘든 진실, 그리고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을까?' 시험대에 올라선 느낌. 진실과 대면할 용기가 있다면 과감하게 선택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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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긋나긋 워킹
최재완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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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녀석은 그게 무서워서 다른 친구들이 계속 위로 위로 올라갈 때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울어버렸다. 언제 타면 되는 걸까? 언제 올라타면 안전한 걸까? 지금 타야 하는 건가? 앞에 서서 보고만 있다가는 위로 올라갈 수가 없다."

급 만남이 아닌 진지한 만남, 아니 진지할 것까지도 없고 그냥 가볍게 만나는 정도도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예전 사람들의 연애 방식이 ‘만나서 살기에는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선 몇 번 보고 그냥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것. 죽네, 사네 싸워도 정인지 개뿔인지 그래도 살아가더라. 이런 선보고 결혼하는 문화가 사라진 요즘(물론 있는 집안 자식들은 혈통을 중시해서 이런 식의 결혼을 하겠지만, 일반 평민은 그냥 알아서 찾고,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는 무척 연애하고 결혼하기 힘든 요즘) 만남의 자리를 갖기는 정말 어렵다. 가끔 들어오는 소개팅. 예전 지 성깔대로 꼴리는 대로 소개팅 자리에서 처신하면 100% 깨진다. 그것도 피 끓는 20대가 아니라 30대라면. 조건도 중요시 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 성격, 재산, 뭐 조건도 무척 많다. 아니다 싶으면 그냥 돌아선다. 냉정하게. 서로 아쉬울 것이 없다.

암튼 <나긋나긋 워킹>은 34살의 남욱과 30살의 해진의 소개팅 이야기다. 사연 있는 여자는 No, 담배 피우는 여자는 No, 찌질하게 옛사랑 얘기하는 여자는 No, 첫날부터 목구멍 속으로 술 퍼다 붓는 여자 No……. 소개팅만큼 확실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소개팅을 통해서 서로 만나기까지의 무수한 if들……. 그 가능성들이 모여서 한 번을 만나는 자리, 소개팅. 잘 해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것. 그래도 요즘에는 이런 소개팅으로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워낙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보니. 이 소설 가볍다. 때로는 웃기다.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적인 우연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도 이런 우연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공감 100%는 모르겠다.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조금 다르다. 그건 뭐 내가 평균 이하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적도 없고, 할 노력조차 귀찮은 나에게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의 무한한 노력은 달나라 이야기 같기도 하다. 역시 나는 평균 이하의 인간이었어. 그러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 갑자기 서글퍼지네.

가벼운 연애 이야기를 읽고 싶으신 분들이나 연애 경험이 전무해서 대리 만족을 얻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살짝 추천을 하나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의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 남녀 연애 이야기가 뭐 거기서 거기지만.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냥 2시간 동안 가볍게 웃고 즐기실 분들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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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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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하죠.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두려움의 근원이라면 더욱더 믿고 싶어 하지도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스티븐 킹의 이번 신작 <듀마 키>는 그런 보이지 않는 아니 믿을 수 없는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다룬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두려움은 때로는 무척이나 매혹적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듀마 키에는 슬픔도 공포도 유머도 그리고 재치 있는 말장난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귀환은 역시나 반가움 그 자체입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속여 그걸로 밥벌이까지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고 했던가?" 이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이처럼 시니컬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다니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암튼 이런 재미있는 대사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50대의 두 아저씨(와이어먼, 에드거) 정말 골 때립니다. 표현이 조금 저속하지만 에드거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네요. 사실 에드거는 자기 자신과 와이어먼, 엘리자베스를 더 심하게 표현합니다. 셋 다 머리에 문제가 있거든요. 좀 더 노골적으로 이 소설에 대해 표현하자면 듀마 키에 거주하는 세 명의 병신들이 악녀 퍼시를 용감하게 물리치는 이야기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팔을 잃고, 정신도 이상하게 돼 버리고, 아내의 불륜과 이혼, 그리고 큰 딸의 따가운 시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 에드거는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요양 차 듀마 키 섬에 갑니다. 불길한 기운이 음습하게 젖어있는 섬에서의 생활은 그를 전혀 다른 인간으로 점차 변화시킵니다. 이상한 능력을 얻게 된 것이죠. 그림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또는 통제할 수 없는 (신의) 능력을 얻은 그는 두려우면서도 점차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매혹당합니다. 또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총으로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고 뇌에 이상이 생긴, 와이어먼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듀마 키 섬의 주인인 노파 엘리자베스를 만납니다. 암튼 머리에 문제가 있는 인생의 변두리로 내몰린 인간들의 평온한 나날을 다룰 것 같은 소설은 기이한 사건을 시작으로 이들을 점차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갑니다. 숨 막히고 답답한 그리고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정말 킹의 소설답게 훌륭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열광하는 독자가 있는 반면 지루하다고 외면하는 독자들도 많죠. 스티븐 킹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 역시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셀>을 좋아하는 분들은 특히 더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반면 <셀>에 조금이라도 실망한 독자라면 이번 <듀마 키>는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사실 공포소설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두려움은 모두 다르고 또한 보편적인 두려움을 다룬다는 것도 쉽지가 않으니까요. 귀신이나 유령이 나온다?, 잔인한 연쇄살인마가 나온다?, 변종 괴물이 나온다?, 사이코가 나온다? 등등 인간이 무서움을 느낄만한 소재와 이야기는 주변에 널렸죠. 그런데 정말 근원적인 공포 자체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 <듀마 키>는 정말 반가운 작품입니다. 분위기 하나만으로 그 공포를 표현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2권의 본격적인 악녀 퍼시와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보다는 1권의 그 잔잔한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의 묘사가 더 좋더군요.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답답한 무엇. 하나 둘 주인공들은 알지 못하는 숨어 있는 복선들. 거대한 악운을 암시하는 듯한 자잘한 일상들. 그만 멈추라고 말하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개인들이 처한 상황들. 암튼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은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공포소설을 쓰는 작가는 요즘 활동 중인 작가 중에서 스티븐 킹을 제외하고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믿지 못할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이야기. 그림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그런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끔, 아니 빠져들게끔 독자들을 유혹하는 킹의 문장들은 정말 매혹적입니다. 그리고 유머, 개인적으로 이런 유머 무척 좋아합니다. 소설 중간 중간 '그림을 그리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데 표현이 무척 고급스럽습니다. 그런데 와이어먼과 에드거가 나누는 대화는 정말 상스럽습니다. 지들 꼴리는 대로 그냥 말을 툭툭 내 뱉거든요. 암튼 공포소설이라는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제쳐두고라도 스티븐 킹의 문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듀마 키>는 개인적으로 불운한 기운에 관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뭔가 안 좋은 일어날 듯한 그런 분위기를 그린 소설이요. 그리고 듀마 키 섬에 거주하는 와이어먼, 에드거, 엘리자베스라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에드거가 관계를 맺고 인간들과 듀마 키 섬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삶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제가 살아온 삶이 이상하게 생각나더군요.

"그대가 삶을 살고 삶이 그대를 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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