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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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악동들의 가슴 훈훈하고 따뜻한 학창시절 이야기. 누구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쯤은 하나 정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연애편지, 첫사랑, 시험, 수학여행, 친구들과의 여행, 지각, 수업 땡땡이, 그리고 소설 속 머저리 클럽처럼 친한 친구들 간의 친목 모임. 학창시절은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그만큼 십 몇 년이 흘러 버린 지금 돌아보기에는 왠지 모를 망설임도 있는 것 같고요.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인 만큼 세상에 찌든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지금의 제 모습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추억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추억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속에 봉해 놓은 아려한 추억과 기억들. <머저리 클럽>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고, 추억을 그냥 봉해버리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이 아니었냐고 마치 제게 묻는 것 같네요.

떨어지는 낙엽에도 가슴 아파하는 개똥 철학자 동순, 신자의 아들로 나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그래도 뭐 할 것은 다하는) 동수, 어른스러운 전학생 영민, 그리고 허튼 소리 잘하는(그러나 나름 로맨스 가이) 아이스하키 선수 동혁, 심형래의 영구가 자꾸 생각나는 (역시나 로맨스 가이) 영구, 그리고 (아쉽게도 이 소설에서는 존재감이 가장 없는) 철수. 아, 그리고 승혜, 소림, 혜련 등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어디에나 있는 그런 친구들. 그들의 학창시절은 너무나 평범합니다. 시험을 봐야 하고, 입시를 치러야 하며, 이성을 보면 두근거리고 설레이며, 반항도 하고 싶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런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거친 시절, 돌아갈 수 없는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을 만나니 무척 그립네요. 정말로 그리워집니다.

"어깨에 걸렸던 낙엽이 땅에 떨어졌다. 낙엽은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썩어 흙에 묻힌다. 우리는 아무도 어제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성장 드라마입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거장답게 고등학생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나라 말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런 표현이 정말 많아 더욱더 그 시절의 그리움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혹시 작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것 같더군요) 동순이가 생각하는 시인들의 시. 역시나 마음속을 촉촉이 적셔 줍니다. 국어 교과서에서 밑줄 긋고 암기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는 것 같아요(시는 감성이지 이성이 아님에도 왜 그렇게 학교에서는 밑줄 긋고 외우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시에는 정답이 없음에도 정답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 아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 그리고 그 시절만의 고유한 문화. 저는 사실 빵집 세대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빵집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것 같아요. 사실 도시 아이들의 성장소설은 접하기가 힘들었는데, 도시나 시골이나 그 시기의 학생들은 모두 비슷했던 것 같아요. 물론 종로3가와 혜화동이 나오니 더욱 친근한 것은 있지만요. 여학생들의 "취이소 하세요." 애교 섞인 이 말투가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냥 취소도 아닌 취이소 정말 듣기 좋더군요^^ 승혜야 기다려야^^

다시 시작되는 우리들의 시대. 지금 청소년뿐만 아니라 20대, 30대, 40대, 50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다 시작이고, 자기 자신의(함께 살아가는 친구들, 가족들)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졸업이 끝이 아닌 시작이듯, 그리고 밤이 끝이 아닌 아침을 기다리는 전조이듯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시작이고 자신들의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10대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소중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비록 현재 자신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립고 소중한 추억이 될 테니까요. 요즘 삶이 어수선하고 힘듭니다. 저는 이 소설이 그래도 "파이팅!!" 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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