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부러진 경첩
존 딕슨 카 지음, 이정임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1월
평점 :
존 딕슨 카의 <구부러진 경첩>은 이런 저의 괴기(괴상하고 기이함. 오컬트)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저의 취향을 상당히 만족시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의 존 딕슨 카 베스트 순위에는 3위 정도에 위치할 듯싶네요(<세 개의 관>과 <화형법정>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그 이유는 우선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조금 덜하고, (나쁘게 말하면) 난잡합니다. 물론 존 딕슨 카의 소설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도대체 (소설 속 등장인물, 특히 펠 박사)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요. (좋게 말하면) 그 만큼 하나의 이야기 속에 테스트가 풍부하다는 것이죠.
진짜냐? 가짜냐? 판리 가문의 상속자라 주장하는 주장자(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표현하더군요)가 나타납니다. 서로 자신이 판리 가문의 상속자라고 합니다. 존 판리 경(현재 상속자)과 패트릭 고어(판리 가문의 상속자라 주장하는 주장자)의 진실게임이 시작됩니다. 심판은 어린 시절 존 판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정교사.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특이한 경험으로는 진짜를 가려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교사는 지문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네요. 뭐 게임 끝이죠. 그런데 현재 판리 가문의 상속자가 기이하게 죽습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그것보다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살인사건이라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자살을 했다면 자살 도구 문제가 걸리고, 타살이라면 죽은 사람은 없고. 밀폐된 방도 아닌 정원의 연못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살인사건. 공개된 밀실인 셈이죠.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그런데 다음 날 갑자기 하녀가 충격으로 쓰러집니다(너는 갑자기 왜 쓰러지냐?). 그리고 발견되는 밀랍인형. 아직 더 남았습니다. 마술, 서커서, 타이타닉 침몰, 1년 전 살인사건, 마녀 숭배 등 딱 한 건의 살인사건에 곁가지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냥 범인은 잡으면 되는데, 범인은 없고.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펠 박사는 밀랍인형이나 구경하고. 도대체 저 아저씨의 정체는? 사건 수사는 안 하십니까?
발로 뛰는 수사, 증거 확보, 증인 신문 등이 이루어지지만 범인의 윤곽은 희미하다 못해 불투명합니다. 깜깜합니다. 이제부터 펠 박사의 심리분석이 시작됩니다. 펠 박사의 특기이자, 제가 존 딕슨 카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얌전한 듯하지만 협박도 잘하고, 속임수도 잘 씁니다. 능구렁이 탐정이라고 할까요?). 여기 저기 널려져 있는 증거나 증인을 이리저리 끼어 맞춰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힌트조차 주지 않습니다. 펠 박사 특유의 '흠', '그렇군!', '그거였어.'. 이 작품은 펠 박사가 등장하는 작품들과는 다르게 짝퉁(?) 펠 박사들도 많습니다(페이지, 버로스, 메들린 등등). 각자 나름대로 심리적인 분석을 실시하여 범인을 예측합니다. 시끄럽습니다. 시끄럽기보다는 더 헷갈립니다. 물론 그들의 추리도 그럴 듯합니다. 사실 심증만으로는 누구나 다 범인으로 만들 수 있죠. 그렇다면 펠 박사의 심증은? 심리분석은?
사실 반전의 결말은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전 전의 결말(범인의 정체)이 더 신선했습니다. 물론 조금 억지스럽기도 했어요. 그러나 현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수긍을 했죠. 그러나 이 때 뒤통수를 칩니다. 사실 반전 전까지의 결말로도 이 소설의 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트릭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요. 사실 존 딕슨 카의 소설은 반전이 중요한 소설은 아닙니다. 기괴한 사건의 논리적 해결. 그리고 무에서 유를 이끌어 내기까지의 심리분석 과정, 기이한 이야기, 음산한 분위기. 마지막으로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긴장감. 다소 아쉽다면 펠 박사의 활약 정도. 그 이유는 책을 읽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