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러브 - 나를 사랑하는 시간
도미니크 브라우닝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일단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좋은 책이다. 문장도 내용도 겉모양새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런 좋은 책이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당했다는 것이 분하다. 나는 이 회사 사람도 아니고 이 책을 만든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만,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은 마치 '훌륭한 자질과 마음씨를 가지고 있지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결코 그 장점을 여러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맨 뒷자리의 누군가'처럼 알려지지 않는 것일까.


오프라인 서점에서 이 책의 재질과 감촉, 재미(이 책은 표지 이미지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다)에 매료되어 책이 흰색 바탕이라 살짝 지저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권뿐이 없었기에 얼른 집어들었다(그곳은 매우 작은 책방이었으니까). 그날은 공교롭게도 회사를 땡땡이치고 홀로 외출하러 나온 날이었다. 저자는 나처럼 오랜 근로에 지쳐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끌렸다. 그러나 그녀는 타의로 회사를 나온 상황. 일에 미쳐 있던 한 여성이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 때의 그 서툰 '시간 보내기'라니...일단 여러 가지 유머러스한 장치들이 때론 폭소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듯이 그 멍청하고 조용한 시간에도 우울함과 회환이 찾아올 때 그녀는 자신의 나이와 연륜,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 역시도 그녀와 하나가 된 듯 마음껏 찌질함을 맛보았다.


명상을 하지는 않지만 마치 명상 같은 책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사실 꽤 힘들지만, 꽤 가까이 있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퇴직이라는 말에서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말한다는 점이 좋았다. 억지로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몸이 무거울 때는 초콜릿 쿠키나 집어먹으면서 며칠이고 베개와 일치가 되어 침대에서 떠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단, 언제나 자신을 사랑하기를, 삶이라는 유한함에 한껏 취해 기분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권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서 좀 발랄한 제목과 표지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다. 첫번째 시도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다소 수다스러운 미드를 즐겨보는 섹스앤더시티 세대들도 유쾌하게 볼 만한 책인데 왜 아무도 이 책을 모를까;;; 그게 너무 슬프다.


하지만 난 실제로도 늘 내성적인 사람과 사귀어왔다.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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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 - 미친 빚잔치의 끝은 어디인가?
발터 비트만 지음, 류동수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보통 전공자가 아닌 이상 경제학 수업을 들을 일은 흔하지 않다. 간혹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낮은 지식 수준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눈이 좀 떠지는 것 같다. 내 월급을 이렇게 관리해야겠다, 우리 세금은 이렇게 사용되는구나 등등 말이다.


<국가부도>는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읽고 계시다 하여 읽게 된 책이다. 개인적으로 그분이 아름다운가게와 희망제작소 소속이실 때 뵙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언젠가 저분은 큰일을 하실 분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감동을 받은 사람이 다행스럽게도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지 시장이 되셔서 매우 기뻤다. 아무튼 그분에 손에 들린 이 한 권의 책은, 나와 멀게만 느껴지는 경제 분야라는 벽에도 불구하고 호감이 갔다.


그리스니 이탈리아니 국가부도니 디폴트니 떠들어대는 뉴스는 많아도 나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 책을 보고 이제 조금 깨닫는 중이다. 사실 100%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 자금의 흐름이 역사적으로 잘 정리돼 있어서 마치 '개론' 수업을 듣는 것처럼 무난하게 읽혔고 덕분에 '복지국가'라는 것에 대한 찬반 여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미덕은 사실 즉, 국가부도라는 현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를 통해 국가의 경제와 그 외 세금을 통해 돌아가는 나라 살림 전부를 보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금 매커니즘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모두가 제법 알지만, 국가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이익을 올리거나 망하기도 하는지는 솔직히 알 길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나 같이 경제에 눈이 어두운 청춘들에게 일독을 권해본다!


일단 들고 다니기도 폼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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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 -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테레닌 아키코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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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진 딸이었다. 냉정했고 말수도 적었다. 엄마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말을 걸면 어쩐지 귀찮아서 최대한 짧게 대답하고는 제 할 일로 돌아갔다. 바로 내 이야기다.   

그러다 최근에 어머니의 수술로 난 전혀 다른 모녀 관계를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우연처럼 이 책을 만났다. <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은 제목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용도는 '사랑하기'에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척수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 테레닌 아키코가 아직 어린 딸 유리치카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을 엮었다. 

감정적인 푸념투성이의 울적한 투병기가 아니다. 똑 부러지게 살아온 여성이 엄마가 되어 자신의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치관, 생활 태도, 습관, 건강 등에 대한 것을 정리해서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아이를 올바로 길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저자가 남긴 것은 아이를 향한 사랑과 훈육의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읽고 나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저 그렇게 매일 듣는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남은 생명을 다해 필사적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작은 화분 하나, 생명 하나 마음을 다해 길러본 사람은 안다. 그 존재와의 이별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지. 하물며 내 살과 피를 나눈 가족과의 이별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에 남겨질 딸을 걱정한 한 인간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유명인도 아니지만, 평범한 엄마이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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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 대중문화 속 법률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1
김지룡.정준옥.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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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제목을 읽고 멈칫했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글쎄.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유죄라고 생각이 되지만, 데스노트가 어떤 괴상한 힘으로 사람을 죽게 한 것이지, 단순히 펜을 들어 종이 위에 누군가의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 살인죄가 된다면...세상의 온갖 불가사의한 죽음들도 누군가에게 꼭 책임을 물릴 것 같다는 부당한 마음이 들어서 무죄라고 대답하고 싶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뒤졌는데, 유죄와 무죄가 가려지는 범위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동기가 있었는지도 중요하고, 데스노트의 쓰임새를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중요하다고 한다. 또 법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행위는 아무리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에 이득이 된다 해도 함부로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즉, 키라의 범죄자 없애기 프로젝트는 명백한 위법행위다.  

책은 <데스노트> 외에도 <헐크>, <슈퍼맨>, <베트맨> 같은 콘텐츠들을 예로 들어 형법, 민법, 헌법을 설명한다.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을 가장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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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 루이즈
쥐스틴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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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어느 영화감독에게 진행자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입니까?" 

"네. 누가 보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버리고 싶은 존재입니다." 

평소 나쁜 딸인 나는 어쩐지 이 말에 대공감을 해버리고 말았다. 가족이란 가볍게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유기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극한의 대답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삶에서 반드시 있다고 본다.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는 많은 콘텐츠들이 재탕에 재탕을 거듭할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에 증오하고, 또 사랑하는 그녀들. 

주인공 루이즈는 엄마가 한창 암 투병 중일 때 자신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다. 하지만 기뻐할 수만도 없는 것이 특별히 계획된 임신이 아니었고, 자신은 엄마 알리스에게 엄마다운 보살핌을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루이즈는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태교에 소홀히한다. 이윽고 아기가 태어나자 루이즈는 아기에게서 먼저 떠난 엄마의 흔적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엄마는 결코 자신을 떠난 게 아님을, 언제나 자신과 이어져 있음을 깨닫고 딸 앙젤에게 집중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하고 신파적인 스토리지만, 작가는 프랑스 사람임을 잊지 말라. 못말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녀의 발언은 솔직하고, 감정 표현 묘사도 얄밉도록 사실적이다. 이쯤 되면 가족이 아니라 라이벌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짜증 섞인 문장 속에서도 작가의 입담은 곳곳에서 빛나 폭소를 터뜨린 적이 여러 번이다.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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