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황순종 지음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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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년 전 우리나라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셨는데 말이야, 이건 설화나 신화에 가까워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 혹 실제 존재했다 하더라도 일본을 건국한 시조의 동생이니 일본을 잘 섬겨야 돼, 그리고 실제는 한반도에 조그만 나라였고 중국의 한 나라가 이 땅을 지배하면서 한사군이라는 총독부 같은 것을 만들었거든 그때 철기 문화가 보급되고 그 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중국을 형님 나라로 모시면서 보호받고 살았고, 선천적으로 우리 민족은 스스로 발전가능성이 없어서 누구의 지배를 받으면서 억지로 강요하면서 살아야만 문화가 발달 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억압당하고 지배당해야만 우리 민족이 발전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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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요약하면 식민사관의 요지는 이런 것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라고 하는 고조선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삼국시대 아니 이들이 말하는 삼한 시대에는 임라 일본부가 있어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조선 말기에는 일본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이 사실이며 역사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그 지배를 당해야만 발전해온 역사를 지닌 민족이다. 누구의 이야기 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 한 사군의 위치를 왜 그렇게 죽어라 외웠어야 하며, 시험 문제에는 빠지지 않고 나왔고 이들의 강역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퍼져 있으며 한 사군은 우리에게 철기문화를 전파해준 시기라고 배웠다. 중국에 사대하는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북한 역사학자는 한 사군이 요동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와 같은 논문을 발표했다고 해서 북한 사상에 동조하는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우리는 한사군을 한반도 내에 묶어 두었다. 그리고 뭐 남의 나라 지배를 받은 것이 자랑스럽다고 시험문제에는 꼬박꼬박 나오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낙랑 임번 진둔 현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죽어라 외웠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왜 우리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단군보다 한사군을 더 중요시 하면서 배워야 했을까? 그리고 철기 문화를 보급해 줬다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말이지.. 그 배후에 식민사학이 있다고 한다. 국가는 독립을 했지만 역사는 독립하지 못하고 아직도 일본이 심어 놓은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역사 대대로 굴종적이며 억압당하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했다고 한다. 역사가 정치논리에 의하여 조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서를 조직적으로 조작 폐기하면서 자신들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기 위한 역사조작을 시작하였고 그 결과 한사군 때부터 우리 민족은 지배를 당해 왔기 때문에 지배당하는 것을 좋아하고 지배당하면서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민족이었음을 강조한다.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이렇게 주장을 한다. 일제 강점기다 보니 당연히 이들에게 동조하는 세력들이 나온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일본인을 대신하여 일본인 스승의 역사관을 한국에 심기 시작한다. 재미있게도 이 사람이 해방 후에 우리나라 역사학회를 움켜쥐고 교육부 장관까지 지내게 된다. 누구도 이 사람의 논문을 반박하지 못하여 이병도의 눈 밖에 나면 교수고 뭐고 자리도 없어지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의 역사학계는 이병도의 논문을 근간으로 그와 같은 생각 즉 일본의 역사학자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같은 시각을 가지게 된다. 결국 식민사학이 우리 역사의 주류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 천만의 말씀이라는 거다. 우리나라 대학문화에 있어서 지도교수 눈 밖에 나면 학위 받기가 쉬운가? 지도교수의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을 쓸 수 있는 간 큰 제자가 있었을까? 뭐 이렇게 우리나라 주류 사학이 점령당하기 시작한다. 결국 모두 차지하게 된다.

동북공정에 맞서서 우리 역사를 정립하고 만든 동북아역사제단은 이들이 장악하면서 외국에 우리나라를 처음 소개하는 최초의 역사가 한 사군이며, 그것도 강역 비정이 한 반도 내부이고 삼국시대는 없어지고 삼한시대가 있어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틀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고, 한반도 북부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는 동북공정의 맥락을 수용하고 있으며, 경기도 역사교사들이 발표한 한사군의 영토비정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문제가 있다고 윽박지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4500년 전에 뭔 일이 있었든, 한 사군이 한반도에 있든 요동에 있든, 일본이 임라를 지배 했든 안했든 뭔 상관이 있겠냐 말이다. 그냥 살기 바쁜 세상에 대충 살다 가면 그만인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가끔 기분 나쁠 때가 있다. 너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우리 집 머슴이었는데 니가 지금 조금 잘 나간다고 깝죽거리지 말고 머슴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평생 종처럼 살아 까불지 말고 하는 말과 뭐가 다르지? 그런데 정말 알아보니까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산속에서 학문에 정진하시고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수양하신 멋진 분인데 누군가 조작에 의해서 머슴으로 둔갑해 있는 거야? 이거 완전히 열 받는 일 아닌가? 그런데 더 웃긴 건 우리 삼촌인 거지 우리 삼촌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머슴입니다. 할 때 마다 누구에게 돈을 받아 그래서 먹고 살아 그래서 우리 삼촌은 더 큰 소리로 우리 집안은 머슴 네 집안입니다 하고 살아, 그랬더니 이젠 당숙도 그러고 다니고 일가친척이 나만 이상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해 답답할 지경인 거지. 지금의 역사 상황하고 뭐가 다르지.

 

역사는 민족주의 사관이 칭찬을 받고 영웅 대접을 받아야 민족의 자긍심이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역사학계는 민족주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자긍심과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적 긍지를 가질 때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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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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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잡은 순간 놓지 못하고 늦은 밤까지 책장을 넘겼다.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판타지도 아닌데 이렇게 나를 화나게 만들어 놓았나? 어쩔 수 없이 다 읽고 나서도 개운치는 않다.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인가? 어른들의 이권 싸움에 뒤틀린 역사의 논란을 우리 아이들에겐 어떻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이덕일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역사에 관한 책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하고 드라마도 좋아하는 축에 들어서 역사에 관한한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덕일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국사를 배우며 느꼈던 궁금증이 조금씩 해소되는 기분이다. 우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왜곡 되었다는 부분에 대한 궁금증, 고조선의 강역이 들쭉날쭉하게 그려지는 궁금증,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의 관점 논란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가 된다. 어떻게 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일반 독자에게 내용을 받아들이는 가 아닌가의 판단기준은 논리적인가와 증거가 무엇인가이다. 즉 읽는 사람이 설득을 당하면 저자의 내용을 정설로 믿는 것이고, 저자의 증거와 논리에 의문이 생기면 가설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동안의 이덕일 교수의 글은 상당히 실증적이며 논리적이고 기록에 근거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책이 그 틀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 책은 그동안 읽었던 이덕일 교수의 책의 내용의 결정판이라고 할까? 아니면 이제 시작인 것이라고 할까? 그동안 익명으로 숨겨 놓았던 역사 왜곡의 주범들의 이름을 공개하기 시작했고 어투와 문체 역시 상당히 결의에 차 있으며,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출사표와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그의 출사표에는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며 자신들의 주장 속에 숨어 있는 기존 역사학자입네 하고 떠드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이 한국사의 전문가 이네 하고 자랑하는 사람들 이제 전쟁터로 나오라는 말이다. 벌써 몇 번을 불러냈지만 반응도 없고 나라의 예산만 받아먹으면서 국사를 왜곡 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이정도 해서도 나오지 않으면 아마도 정말 우리의 국사 교과서는 깨끗하게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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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 였다] 시작해서 [근대를 말하다] 까지 역사서 몇 권과 이 책에도 많은 부분 언급되어 있지만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까지 이덕일 교수의 저서를 몇 권 읽어 본 결과 저자의 논지는 잘 정렬된 아스팔트처럼 일관적이고 곧다. 식민사관이 망쳐놓은 우리 조상들의 강역을 회복하고, 타성에 젖어 지배만 받아왔던 민족이 아닌 주체성과 자주성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하고, 지금도 역사 왜곡에 앞장서서 식민사관으로 나라와 역사를 팔아먹는 사람들을 정리하자는 말이다.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자로 말하면 또라이입니다. -Page 261

 

한국학진흥 사업단장을 지내고, 국사교과서 대표집필자를 지낸 사람이 공개 학회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사람이 일제강점기에 대한 말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저자 역시 이 사건은 올바르지 못한 역사 교육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역사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서 지원한 동북아 역사재단이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명확히 알았고, 토론이 없고 반박이 없는 우리 역사학회의 이상한 역사 논리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은 진실은 토론과 검증 그리고 양심에서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선전포고가 잘 먹혀 들어가서 역사적 검증을 거친 바른 역사가 후손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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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곽효환 지음, 이인 그림 / 교보문고(교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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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읽어 본 해설이 있는 시집입니다. 고운 말 속에 의미가 많이 담겨 있고 그 속에는 삶의 의미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시의 배경을 저자가 설명을 해주고 시인을 이야기 해줍니다. 따뜻하게 다가오는 언어 속에는 가끔 시인의 외로움도 설명해 줍니다. 그림이 문득 눈에 들어와 많은 글자들을 잡아먹고, 그렇게 시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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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있는 아침이라는 코너가 있나 봅니다. 그 시 속에서 저자는 시인들과 인연을 생각하며 시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그리면서 시를 설명합니다. 때로는 시 보다 시인의 삶이 더 궁금한 저에게는 시인의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기에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을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저에게는 그 것이 더 궁금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생각을 쏙 빼놓은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Page 106 소가죽 북 에서)

 

매 맞는 어머니 그리고 다시 그 울림을 주는 소가죽 북, 울림은 시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나 봅니다. 저자는 소와 어머니를 동일 선상에 놓고 따뜻함을 담으려고 했다고 하는데 제 마음에는 그 따뜻함 보다는 그 것을 지켜보는 시인의 눈동자가 생각이 납니다. 나라면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북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를 생각하고 소를 생각하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입니다. 따뜻함 이었을까요? 아련함 이었을까요? 아니요 그냥 먹먹한 그리움이었을 것 같습니다.

 

공감을 하면서 때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면서 시에 대한 설명을 읽었습니다. 모두 이해 할 수 있을 만큼의 감성을 가진 제 실력은 아니겠으나 내가 느끼는 대로 울림이 주는 대로 움직여 보았습니다. 시는 언제나 그렇게 제 마음 속에 그냥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단어가 아닌 느낌으로 말입니다.

 

86편의 시가 그렇게 정렬되어 있었고 저는 이 책을 일주일에 거쳐서 읽었습니다. 조금씩 출 퇴근 길에 한 편 읽고 눈감았다가 다시 눈뜨고 저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조급한 출근길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피곤한 퇴근길 어디에 기대 졸고 싶었지만 한 줄 읽고 편해지고 한 줄 읽고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시의 묘미 인 것 같습니다. 길게 많은 문장을 읽어야 하는 산문 보다 짧지만 많은 생각과 위안 그리고 평안과 따뜻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가끔 힘들고 지칠 때 다시 꺼내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바다 생각이 납니다. 더 이상의 표현이 없을 것 같은 바다 말입니다.

 

바다      -강신애-

낯선 방에서 창을 열면

바다가 한 줄

금빛 숨결 달아오른

눈부신 한 줄

(Page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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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용혜원 지음, 조풍류 그림 / 나무생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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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그 사랑은 계절도 있고 사람도 있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절대자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흘려버렸을지 모를 사물들에 대한 사랑과 스쳐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시인의 언어를 통해서 제 가슴 속으로 들어옵니다. 들어온 말들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도 있고 그렇게 슉 지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시는 기억이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시중에 생선 파는 아줌마가 기억에 남습니다. 뭉클 하기도하구요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계속 생선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오셨어도 누구하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곤 작은 일에 기뻐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것이 생선 파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시에 일상을 담는 다는 것은 저에겐 어려운 일이겠지만 정갈하고 깔끔하게 일상을 담아내는 시인의 단어는 비오는 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보고 싶어지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내 마음에 내리는 비와 그대에게 내리는 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는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상상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글에는 절대자에 대한 생각을 가끔 떠오르게 합니다. 종교에 대한 큰 거부감이 있거나, 편견을 가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은유적 표현이 있었으면 그 절대자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 아닌 사랑하는 그대에 대한 우회회적 표현 이었다면 종교를 초월한 글로 읽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분의 사랑을 전달 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는 하지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시인의 아름다운 글을 받아들이는 것에 편견이 없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랜만에 읽은 시집에는 사랑과 희망과 따스함이 있었습니다. 아니 시인이 그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일상에 감사하고 일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글에는 그냥 스쳐 지나는 일상과 사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돋아나게 합니다. 그 것이 우리가 시를 읽어 위로 받는 이유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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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2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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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동작이다. 발레 동작 중에 공중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담은 동작으로 찾아보니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제목에서 주는 비상의 모습일까? 하늘을 정원 삼아 날아가는 모습의 내용일까? 발레에 문외안인 나로서는 제목의 단어부터 찾아보아야 할 만큼 처음부터 수월치 않았다. 생소한 단어는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던 책이 가볍게 내려놓아 지지는 않았다.

 

커다란 키에 큰 발로 항상 핸디캡으로 생각하였던 나 예정은 우연히 들른 발레 무용원에서 자신의 신체조건이 발레에 딱 이라는 원장의 말을 듣고 발레를 시작한다. 다들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발레지만 나는 중학생이라는 나이에 시작한 발레가 녹녹치 않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동작은 소화하지만 춤을 출 수가 없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춤을 출 수 없음에도 발레를 배우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외진 도시의 어느 무용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 예정의 시작은 발레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 그리고 발레에 대한 기억속의 친구와 어린 시절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픈 기억들과 오버랩 되면서 그렇게 이야기의 전개가 된다. 그 속에 아픔이 담겨 있어 더 힘들게 느껴지지만..

 

세상은 누군가의 잘못을 나의 잘못처럼 치부해 버린다. 세상에 모든 기억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기억 속에 그 힘없는 아이의 저항하지 못하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싸 주지 못한다. 그리고 말 하지 못하는 기억을 만들어 낸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저자의 후기에서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고이다. 아프고 힘들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우리 사회는 그 기억에 대한 어루만짐도 없었고 하물며 가족도 그 아픔을 감싸 주지 못한다. 정말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것일까?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이런 내용이 소설이기만을 바랐건만 후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면, 만일 내가 당사자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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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기억 속에 평생을 가져가야 하는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들의 위선 속에 그리고 같은 여자 이면서도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고 꾸지람 하는 어른들의 말 속에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그리고 지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일 것이다.

 

 

그래야만 그랑 주떼의 멋진 동작으로 각자의 삶에서 비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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