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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유명한 작품이고 많이 알려져 있던 글이지만 직접 접하기는 처음이라 많은 기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말을 해주고 있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 자신과 다른 생활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은 덤덤하면서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이 세상에 흑인의 무지를 이용하는 저급한 백인보다 볼썽사나운 건 없다. 절대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돼, 그 모든 것이 쌓이면 언제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테니까. 그런 일이 너희들 세대에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Page 408~409
미국은 남북 전쟁 후에 흑인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1935년 시점에서 흑인은 정상적인 사회구성의 일원으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한 시점이다. 제도적으로 틀을 만들어 놓았지만 대부분의 자본과 토지를 가지고 있던 백인들 속에서 이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방법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교육의 기회도 많지 않고, 때로는 이 책에서처럼 암묵적인 차별을 받아야 하는 그런 사회였다. 1935년의 미국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현재의 우리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애티커스 핀치가 바라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남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모두가 화가 나있고, 힘들어 하고, 때로는 자신의 권력으로 사람을 힘들 게 하는 사회가 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한국의 상황은 흑인 들이 다니는 교회와 백인들이 다니는 교회가 다르듯이 ,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사이에 높다란 담장이 쳐져 있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말 보다는 또 다른 사람들의 말에 더 많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니 핀치의 말처럼 아이들이 배심원 이었다면 아마도 판결은 무죄가 났을 것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 다는 것, 그리고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고 한 번은 읽어 보고 싶었다. 내용을 대충알고 있었고, 개정번역판이 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이 많아서인지 여기저기에서 듣는 말들이 많았다. 성경이 그렇게 많이 팔리고,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려도 사람의 마음속에 암묵적 범죄와, 때로는 삐뚤어진 가치관이 존재하는 한 이와 같은 소설은 더 많이 팔려도 약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을 확률이 더 높다. 더 편한 것을 추구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이 정상적인지 계속 질문하는 일이 게을러 진다면 아마도 나 또한 사고의 오류에 빠질 것이다.
알고 저지른 범죄보다 더 무서운 건 자신의 가치관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저지는 범죄다. 끝까지 자신의 잘 못을 알지 못한 유얼의 마지막이 상기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