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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도 아닌 날 - 인생에서 술이 필요한 순간
최고운 지음 / 라의눈 / 2015년 3월
평점 :
가끔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은 몸이 망가져 삼가고 있지만 한 때 두주불사의 정신으로 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하며 주맥(酒脈)을 맺었다. 그 많은 술자리에서 같은 이야기와 추억을 담은 기억은 없다. 같은 사람과 같은 장소에서 만나 한 잔을 걸치더라도 항상 다른 이야기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술은 한 부분에 사람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사람과 곡차는 끊을 수 없는 관계이고 그렇게 이야기와 추억을 만들어 낸다.
책은 이야기와 안주와 그리고 어울리는 술을 담고 있다. 싱글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와 그리고 자유롭고 싶은 욕구 속에 담겨 있는 추억을 그리고 사람들 담고 있다. 어디선가 마주해 본 것 같은 술과 안주 속에 스스로 추억을 더듬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도 담겨져 있고 나이가 들어 50이 되었음에도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돌싱이 사연이 많을까? 쉰 살에 아가씨가 사연이 많을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세상이 보는 눈에 대한 고민이 담긴 말이기도 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살짝 쿵 고민이기도 하다. 풋풋한 젊은 시절의 남자 이야기도 있고, 연애만 주로 하다 보니 쌓여진 아니 스쳐간? 남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술은 안주와 더불어 자리가 남겨준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
지금의 술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죽을 때까지 연애만 하고 싶다는 여자의 취중 진담은 세상이 담아내고 있는 고민과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민 드리고 여자이기에 해야 하는 고민들로 안주를 삼는다. 그 추억과 이야기에 따라 안주와 술이 바뀌지만 어떤 안주와 술이든 숙취를 해소하기 힘들 듯 맺음을 가져가기는 힘든 것 같다. 그 자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흘러간 지금에는 그 이야기가 추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에게 추억이 될 만한 그런 안주와 술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열심히 먹고 마시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에겐 술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 값 싸고 푸짐한 안주를 내어주던 한 술집이 기억난다. 한 참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찾은 그 자리에는 나와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얼핏 보아도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이 마주 앉아 옛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시끄럽고 어지러웠던 시절 술집에서 최류 가스 냄새를 향기 삼아 마시던 그 집, 시위가 심해지고 도로가 막히면 아예 문을 잠가 걸고 막걸리 한 주전자씩 테이블마다 돌리던 그 사장님의 얼굴이 선하다. 가끔 나는 그 곳을 찾아가 삼치와 오징어 데친 것을 시켜 놓고 그 때 친구들과 막걸리 한 사발 한다. 예전처럼 세상을 고민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일은 없지만 서로의 삶을 안주 삼아 한 때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적당한 음주만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과도한 음주와 안주는 쓰린 속과 후회만을 남길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연애만 하고 싶다는 여자의 이야기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을 지켰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