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하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소설 『설국』과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가장 유명한, 혹은 최고의 첫 문장을 꼽으면 빠지지 않는 소설들입니다.


 이번에 다시 읽은 『동물농장』의 첫 문장은 "그날 밤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닭장 문을 단속하긴 했지만 너무 술에 취해 작은 출입구 닫는 일은 잊어버렸다." 『설국』이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첫 문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멋진(?) 마지막 문장이라면 있습니다. 만약, 최고의 첫 문장처럼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도 어떤 목록을 꼽는다면, 『동물농장』은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또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왔다갔다 분주했다. 그러나 누가 돼지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했다.(p.123)"



 책과 관련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말을 무척 믿는 편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했다고 해서 반드시 읽진 않지만, 기억해두려 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빨간책방'을 진행하기 몇 년 전에 TV의 책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패널로 참여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는 매주 고전을 한 권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번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책을 소개하는 사람은 『동물농장』 민음사판을 옮긴 도정일 교수였죠. 옮긴이가 소개하기도 하거니와 프로그램의 성격상 좋았던 점이나 자기 생각을 간략히 말하는 정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는 『동물농장』이 앞으로 계속 고전으로 남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간단히 옮기면, '『동물농장』이 처음 출간된 1945년에는 그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지금은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이 책은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한 부분의 특성 때문에 고전으로 끝까지 남아있기가 굉장히 어렵지 않겠나 추측한다' 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태도가 무척 인상 깊었고, 그 같은 이유가 하나둘 쌓여 책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선택을 믿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동물농장』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당시 상황을 풍자한 색은 바래겠지만, 대신 권력과 헛된 희망이나 기대에 대한 풍자가 점점 짙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예컨대 흰색과 검은색의 스펙트럼에서 조금 이동한 것이지 완전히 다른 색이 되었다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풍자한 것인지 전혀 모른 채 읽었기 때문입니다.



 『동물농장』을 처음 읽었던 이유는 이번에 다시 읽은 이유와 같습니다. 얇은 두께. 꽤 오래전에 약속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있어, 도서관에 가서 그 안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워 무작정 세계문학전집 앞으로 갔죠. 그리고 고른 책이 『동물농장』(민음사, 1998)입니다. 고른 이유는 두 가지. 앞서 말한 얇은 두께와 권장도서목록에서 자주 본 것 같은 기억 때문입니다.


 평소라면 읽기 전에 어떤 책인지 찾아보기도 하고, 앞·뒤표지에 적힌 글도 읽어보고, 저자 소개 등도 빠트리지 않고 읽지만, 그때는 무작정 본문부터 읽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동물농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읽은 것이죠. 물론 소설을 다 읽은 뒤에 해설이라든가 저자 소개 등도 모두 읽었지만, 이와 상관없이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에 섬뜩했고, 특히 마지막 문장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인간은 대부분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유혹에 약하고, 무언가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소설 속의 나폴레옹처럼 커다란 권력이 손에 쥐어졌을 때 어느 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자신은 나폴레옹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삶이 고되고 힘들어 지쳤을 때, 혹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누가 눈앞의 희망을 의심할 수 있을까요? 의심보다는 소설 속의 복서처럼 눈앞의 희망을 믿고, 헛된 기대를 품고 묵묵히 따르는 게 쉽지 않을까요? 예컨대 매번 선거 때가 그랬던 것 같고, 몇 년 전 멘토 바람(?)이 불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독재자 나폴레옹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재자에게 지배당하는 복서가 될 수도 있고,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스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견제하고 부당함에 저항하고, 헛된 희망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힐 것으로 믿습니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역사는 쉽게 반복되니까요.



 옛날에 품었던 꿈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한 것은 없었다. 영국의 푸른 들판이 인간의 발에 밟히지 않을, 즉 메이저가 예언했던 ‘동물 공화국’은 여전히 추앙 받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모른다. 지금 살아 있는 동물들의 생애 동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향은 지금도 다가오고 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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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오늘도 잘 참아냈습니다.

 

 모처럼 서평을 작성하려 마음먹었다가, 문자 하나에 마음을 바꿉니다.

‘[알라딘 신간알리미] 문 (나쓰메 소세키)’

 며칠 전에 ‘나쓰메 소세키 전집 3차분’ 관련 소식을 출판사 블로그에서 봤던 터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지난 페이퍼에서 예상했던 대로 『문(門)』, 『춘분 지나고까지(彼岸過迄)』, 『행인(行人)』.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되었고, 가격도 예상대로네요. 이제 남은 작품은 『마음』, 『한눈팔기』, 『명암』. 처음 계획보다 조금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년에 맞춰 기획한 만큼 내년에 맞춰 완간되겠죠.

 아마도,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에서 이번에 출간된 3차분이 가장 적은 관심을 받을 것 같습니다. 3차분이라는 순서로도 그렇고, 작품 목록을 보아도 그럴 것 같습니다. 1차분은 처음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이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 같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고, 2차분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잘 알려진, 그리고 상당히 인기 있는 『그 후』가 있습니다. 『산시로』도 있고요. 4차분은 만년작(晩年作)으로 꼽히는 『마음』과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 그리고 미완으로 종결된 유작 『명암』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죠.

 반면에 3차분은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문』)과 ‘후기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춘분 지나고까지』)과 두 번째 작품(『행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널리 알려진 소세키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도 어렵고요.
 무척 매력적인 작품들임에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아 짧게 적습니다.



 『문(門, 1910)』

 이 작품은 부도덕한 사랑을 선택한 데 대한 죄의식을 안고 세상의 눈을 피해 조용히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작 『그 후(それから, 1909)』의 속편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큰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과 내면의 묘사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마음(こゝろ, 1914)』과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저만 알고 싶은 그런 작품이죠.


 특히, 소설의 첫 장면은 너무나 좋아서 그 장면만 반복해서 읽기도 했습니다. 조금 많이(?) 길지만, 아래에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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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부터 소스케는 볕이 잘 드는 툇마루로 방석을 내와 마음 편히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으나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내던지고 벌렁 드러누웠다. 맑게 갠 가을날이라고 할 만큼 쾌청한 날씨인 데다 조용한 동네라 길 가는 사람들의 게다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팔베개를 하고 처마 위를 올려다보니 깨끗한 하늘이 온통 말갛고 파랗다. 자신이 누워 있는 비좁은 툇마루에 비하니 하늘이 무척이나 광활하다. 모처럼의 일요일, 이렇게 느긋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썩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미간을 모으고 반짝이는 해를 잠깐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이 부셔 장지문 쪽으로 몸을 뒤쳤다. 장지문 안에서는 아내가 바느질을 하고 있다.
 "이봐, 날씨가 좋은데"하고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내는,
 "네에"라고 할 뿐이다. 소스케도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아내가,
 "잠깐 산보라도 다녀오시지 그래요?"하고 말한다. 하지만 소스케는 그저"응"하고 건성으로 대꾸할 뿐이다.
 이삼 분 지나 아내는 장지문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툇마루에 드러누워 있는 남편을 내다봤다. 남편은 무슨 생각인지 두 무릎을 새우처럼 구부린 거북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리고 깍지 낀 두 손 안에 까만 머리를 집어넣어 얼굴을 팔꿈치에 가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여보, 그런 데서 자면 감기 걸려요" 하고 아내가 주의를 준다. 아내의 말은 도쿄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요즘 여학생들 말투다.
 소스케는 두 팔꿈치 사이에서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자진 않으니까 괜찮아"하고 조그만 소리로 대답한다.
 다시 조용해졌다. 바깥을 지나는 고무바퀴 인력거의 벨 소리가 두세 번 울리고 멀리서 때를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스케는 방적사 옷감으로 새로 지은 옷 등짝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따스한 햇볕을 속옷 아래로 탐하듯이 즐기며 멍하니 바깥 소리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장지문 너머의 아내에게,
 "오요네, 근래(近來)의 근 자 어떻게 쓰더라?"하고 묻는다. 아내는 별로 어이없어하는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젊은 여자 특유의 요란한 웃음소리도 내지 않으며,
 "오우미(近江)의 근 자 아니에요?"하고 대답한다.
 "그 오우미의 근 자를 모르겠거든."
 아내는 꼭 닫은 장지문을 반쯤 열어 문지방 너머로 긴 자를 내밀고는 그 끝으로 툇마루에 근(近) 자를 써보이며,
 "이거잖아요"하고만 말하고 자 끝을 글자가 멈춘 곳에 그대로 놔둔채 한동안 맑게 갠 하늘을 유심히 바라본다. 소스케는 아내의 얼굴도 보지 않고,
 "역시 그렇군"하고 말했는데,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별로 웃지도 않는다. 아내도 근 자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정말 날씨 좋네요"하며 반쯤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장지문을 열어둔 채 다시 바느질을 시작한다. … (p.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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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문(門)』의 해설은 로쟈님이 쓰셨습니다.




 『춘분 지나고까지(彼岸過迄, 1912)』

 이 작품은 제목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피안 지날 때까지』(예옥, 2009), 『피안 지나기까지』(소명출판, 2012), 『춘분 지나고까지』(현암사, 2015)로 번역됐습니다. 이는 책에서 소세키가 직접 밝히듯이,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이 지날 때까지 쓸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마감 날짜(?)를 제목으로 정한 것이죠.

 이 작품을 연재하기 전 1911년에 건강 문제에 안 좋은 일들이 겹친 이유에선지, 『춘분 지나고까지』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면 『춘분 지나고까지』는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옥에서 출간된 판본에는 이 작품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현암사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 길지 않아 아래에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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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지날 때까지』는 소세키의 재출발이다. 즉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죽음을 통과한 사람의 새로운 출발인 동시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출발점으로의 회귀이다
 소세키는 사생문으로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기 시작했다. 사생문은 ‘소설’처럼 보이지만 근대소설에 반(反)하는 것이다. 즉 소세키는 당시의 ‘문단’과는 다른 곳에서 출발했는데, 그것이 ‘문단의 뒷골목을 엿본 경험’도 없는 독자들에게 예상 외의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부터 소설가로 여겨졌고 제자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여러 근대소설의 유파로 규정하고 비평하게 된다. 여기서 소세키가 ‘나는 나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원래 ‘근대소설’과는 이질적인 것을 추구해 왔음을 스스로에게 타인에게도 선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소세키가 시대상황과는 무관한 고유의 고뇌를 분석하고자 했음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원경으로 상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쓰고 있다. 심각한 사태를 결론이 없는 채로 하나의 풍경으로서 ‘사생’하는 것이 이 작품의 장치다.
 『피안 지날 때까지』라는 작품 자체가 ‘탐정적’바꿔 말하면 정신분석적이다. 게이타로의 방황 속에서 문제는 시대상황, 남녀관계, 부모자식 관계,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과 의 관계에 존재하는 부조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어긋나면서도 깊어진다.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도 않았고 출구도 없다. 하지만 소세키는 이러한 광경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여유를 가진 ‘사생문’으로서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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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行人, 1912)』

 형 이치로는 동생 지로에게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 달라 요구합니다. 만약,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면 동생 지로와 아내 나오의 관계를 평생 의심하겠다고 하죠. 그 후 동생 지로와 아내 나오는 여행을 가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별일 없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형 이치로의 의심도 풀릴 것 같았지만, 이치로의 의심은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갑니다.

 이 같은 과격한 시작 때문에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기대와는 반대로 인물 간의 갈등과 내면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비판 중 가끔 접하는 것이 근대 여성의 모습을 개성 없고, 지나치게 수동적인 대상으로 그린다는 점입니다.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도 그렇고요. 제 기억에 그 같은 면이 가장 도드라져 보였던 작품이 『행인(行人, 1912)』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면 마치 제가 『행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덧붙이면, 『행인』 역시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다운 매력이 선명해서, 소세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싫어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
1) 『문(門, 1910)』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고선, 제일 짧게 썼네요.

2) 완간이 보이기 시작하니, 이번 전집에서 단편이나 산문집이 빠진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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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막 책을 산 것처럼 종이봉투를 들고 있어 무슨 책을 샀는지 물었습니다. 보여준 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2009).

 

 평소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과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2009)의 조합이 문득 궁금하기도 해서 이 두 권을 고른 이유도 물었습니다. 지인의 대답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가장 많은 지식인이 추천한 두 권이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과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2009)라고 하더군요. 저도 평소 ‘지식인의 서재’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즐겨보는 편이기에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갔으면 끝났을 일인데, 집에서 컴퓨터를 두들기다가 그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찾아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아래 그림이 그 순서입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추천도서 TOP10>
(http://book.naver.com/bookshelf/recommendbook_list.nhn)


 목록을 살펴보다가 문득,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경우엔 어떻게 집계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예컨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은 <백년의 고독>(민음사, 2000)도 있고, 절판된 판본들도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만 해도 생각나는 판본이 한둘이 아니죠. 이럴 때는 어떻게 집계하고, 어떤 판본을 대표 이미지로 설정하는지 궁금했습니다(사실, 목록이 조금 뜻밖인 것도 이것저것 찾아본 이유 중 하나입니다. ㅎㅎㅎ).

 

 확인해보니, 전부 개별적으로 집계했더군요.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과 <백년의 고독>(민음사, 2000)을 다른 책으로 집계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현재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출간된 판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2009)과 ‘밀란 쿤데라 전집’의 하나로 출간된 판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2011), 그리고 절판된 판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1990)이 있습니다. 이 세 판본은 저자, 역자, 출판사가 모두 같은, 말 그대로 같은 책임에도 개별적으로 집계했더군요. 개정판이 나와도 별개로 집계합니다.

 

 이런 책은 다 더해서 집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경우, 열린책들 판본을 추천했든, 민음사 판본을 추천했든, 하서 판본을 추천했든 모두 같은 <죄와 벌>을 추천한 것으로요. 번역 때문에 판본을 굳이 따져야 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외국’ 지식인의 추천도서를 더하면, 번역 문제를 따지기 힘들어집니다. 카프카의 <소송(심판)>의 경우 ‘철학자 셸리 케이건’, ‘응용수학자 존 캐스티’, ‘소설가 팀 보울러’가 추천했는데, 셸리 케이건이 콕 집어서 문학동네 판본을 추천하고, 존 캐스티와 팀 보울러가 문예출판사 판본을 추천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다시 집계해봤습니다. 새로 집계했을 때 위의 목록 10권 중에서 제외되는 책은 두 권이지만, 순서는 꽤 많이 바뀌더군요. 집계할 때는 먼저, 한 저자의 동일한 작품을 추천한 경우, 역자, 출판사 등이 다르더라도 같은 책으로 간주했습니다. 카프카의 <소송>(문학동네, 2010), <심판>(문예출판사, 2007), <소송>(솔출판사, 2005), <심판>(범우사, 1999) 등 모두 한 권으로 집계했습니다. 시와 단편의 경우 상당 부분이 겹치거나, 겹치는 부분이 다소 적더라도 대표작을 포함하고 있다면 같은 책으로 간주했습니다. 예컨대, <백석시전집>(창비, 1987),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2007), <백석전집>(실천문학사, 2003),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와사회, 1997) 등 모두 한 권으로 집계했습니다(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돌베개’와 ‘보리’의 판본에 더해,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그린비, 2008),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북드라망, 2013)도 <열하일기>로 간주하고 한 권으로 집계했습니다).

 

 다시 집계했을 때 가장 많이 추천받은 도서 11권은 아래와 같습니다. 추천받은 수가 같은 책이 많아 10권이 아닌 11권입니다(판본은 가장 많이 추천받은 것으로 되어있는 판본이거나, 가장 널리 알려진 판본 중에 택했습니다. 단, 절판된 경우는 제외). 그리고 지금까지 ‘지식인의 서재’에 참여한 지식인은 모두 86명입니다.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17名

 

추천人: 대중음악가 이적, 소설가 신경숙, 디자이너 이영희, 만화가 이현세, 물리학자 정재승, 소설가 황석영, 소설가 조정래, 경제학자 장하준, 서양화가 황주리, 그림책 작가 백희나, 광고인 박웅현, 소설가 심상대, 길 내는 사람 서명숙, 소설가 김영하, 철학자 고병권, 소설가 김연수, 문학평론가 정과리

 

 



2.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민음사, 2009) - 14名

 

추천: 클래식음악가 장한나, 영화평론가 이동진, 소설가 조정래, 서평가 이현우, 소설가 한강, 소설가 이문열, 소설가 김연수, 번역가 천병희, 문학평론가 정과리, 영화배우 정진영, 소설가 김영하, 경제학박사 공병호, 광고인 박웅현, 건축가 승효상


 

 



3. 박지원 <열하일기>(보리, 2004) - 13名

 

추천: 소설가 신경숙, 소설가 김훈, 의사 박경철, 소설가 김탁환, 생물학자 최재천,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소설가 박범신, 역사학자 이이화, 철학자 고병권, 소설가 김홍신, 디자이너 이영희, 국악인 황병기, 번역가 김난주

 

 

 


4.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2009) - 12名

 

추천: 건축가 승효상, 사진작가 배병우, 소설가 김훈,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의사 박경철, 소설가 박범신, 소설가 조쟁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소설가 김연수, 시인 장석주, 길 내는 사람 서명숙, 광고인 박웅현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2009) - 12名


추천: 건축가 승효상, 소설가 신경숙, 디자이너 이영희, 의사 바경철, 작가 알랭 드 보통, 서양화가 황주리, 피아니스트 김대진, 서평가 이현우, 소설가 김영하, 예능PD 주철환, 광고인 박웅현, 소설가 김연수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하서, 2008) - 12名

 

추천: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스포츠해설가 허구연, 응용수학자 존 캐스티,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 철학자 셸리 케이건, 서평가 이현우, 클래식음악가 장한나, 디자이너 이영희, 경제학박사 공병호, 만화가 이현세, 철학자 고병권, 광고인 박웅현

 

 

 



7. 로버트 루트번스타, 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2007) - 10名

 

추천: 사진작가 배병우, 디자이너 이영희, 외화번역가 이미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미술평론가 이주헌, 영화평론가 이동진, 물리학자 정재승, 국악인 황병기,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광고인 박웅현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예경, 2003) - 10名

 

추천: 건축가 승효상, 만화가 이현세, 영화감독 장진, 미술평론가 이주헌, 의사 박경철, 물리학자 정재승, 소설가 은희경, 미술평론가 유홍준, 소설가 한강, 광고인 박웅현

 


 


박경리 <토지>(마로니에북스, 2012) - 10名

 

추천: 디자이너 이영희, 경제학박사 공병호, 만화가 이현세,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방송인 김제동, 소설가 박범신, 시인 김용택, 스포츠해설가 허구연, 광고인 박웅현, 소설가 김홍신


 

 

 


김훈 <칼의 노래>(문학동네, 2012) - 10名

 

추천: 건축가 승효상, 작가 고도원, 만화가 이현세, 영화평론가 이동진, 시인 김용택, 예능프로듀서 김영희, 스포츠해설가 허구연, 소비자학자 김난도, 소설가 김영하, 소설가 김연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은행나무, 2011) - 10名

 

추천: 클래식음악가 장한나, 생물학자 최재천, 만화가 이현세,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소설가 박범신, 목판화가 이철수, 의사 유태우, 타이포그라퍼 안상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시 쓰는 수녀 이해인


 


 


 이상 11권(?)입니다. 이어서 <어린왕자>, <광장/구운몽>, <백석 시집>, <김수영 시집>, <변신>, <소송(심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논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이 9명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두 권이나 있는데 톨스토이는 어떠냐고 물으시면, 톨스토이의 경우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가 각각 5명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셰익스피어, 괴테, 카뮈, 헤르만 헤세, 조지 오웰, 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8명, 괴테의 <파우스트>가 7명, 카뮈의 <이방인>이 8명, 헤세의 <데미안>이 6명, 조지 오웰의 <1984>가 7명,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6명으로, 각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습니다. 몇 권만 더 말씀드리면, 대중 과학도서 중에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가장 많은 8명에게 추천받았으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도 8명에게 추천받았습니다.

 

 더 쓰고 싶지만 그만하겠습니다. 왠지 책을 일렬로 줄 세우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볼지도 모르는 도서 목록이 조금 잘못된 것 같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도서 목록은 ‘가장 여러 지식인’에게 추천받은 도서이지, ‘지식인이 가장 추천하는’ 도서는 아닙니다. 실제로 추천도서 약 100권과 함께 ‘내 인생의 책’을 5권 추천하는데, 그 책들은 (위의 목록처럼) 아주 많이 겹치진 않습니다. ‘내 인생의 책’들도 집계하면 재미있겠지만, 8회까지의 ‘지식인의 서재’에서는 내 인생의 책 5권을 추천하는 것이 없어서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고르는 데 있어 참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재미삼아 보시라고 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알라딘 고전 읽기 프로젝트’ 두 번째가 <열하일기>이었네요. 그때 구매하거나 읽으신 분들은 <열하일기>를 추천한 13명이 누군지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 싶습니다.

 책을 구매했으니 별점을 남겨달라는 알라딘의 요청을 무시하고, 오랜만에 남기는 글이 이런 쓸데없는 글이라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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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과학의 자는커녕 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사회과 부도였습니다. 저 같은 분들 많지 않나요? 저는 특히 책의 맨 뒤에 있던 통계자료(?)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국가별 면적이나 인구수, 그리고 GNP·GDP 같은 것을 비교하는 게 무척 재밌었습니다. 책 여백에 인구수가 많은 순서대로 혹은 면적이 넓은 순서대로 적어 놓기도 했고요.

또 세계지도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지도를 좋아한 것은 아니고요, 지도에 표시된 산()을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요. ‘에베레스트 8,848m, 몽블랑 4,807m, 아콩카과? 이름 어렵네. 6,962m. 킬리만자로,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 뭐 이런 식으로요.

 

 이런 산()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높이가 얼마인지도 알았으니, 이제 다른 것들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을 뒤졌습니다. 친구 집에 가서도, 도서관에 가서도. 그러다가 우연히 킬리만자로 산을 보았는데, 세상에. ……. 그냥 최고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산이 있을 수 있을까, 가짜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멋지다(?)는 생각에 사진을 오려서 벽에 붙여 놓기도 하고,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초등학생이니까요). 그때 갖고 다니던 사진과 가장 비슷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이 사진과 거의 똑같은 것 같네요. 탄자니아의 초원에서 코끼리와 기린 같은 동물들이 있고, 그 뒤에 구름 위로 보이는 눈 덮인 산이 너무 그림 같았습니다. 산이 저 멀리에서 구름 위로 솟아 있는데도, 높다는 생각보다는 크다는 생각, 장엄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킬리만자로 산이 너무 좋은데, 어떻게 실제로 볼 수가 없으니 혼자서 상상을 했습니다. ‘5,892m면 얼마지? 저 산보다는 얼마나 더 높은 거지?’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5,892m이라는 높이는 솔직히 당시 저 같은 초등학생이 상상하거나 실감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럼 실감할 방법을 찾아야죠.

 

 먼저 제가 있는 곳에서 약 6km 떨어져 있는 곳을 파악합니다. 부모님께 물어보거나, 학교에서 집까지가 대충 몇 킬로미터니까……. 이렇게요. 그다음 6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가장 눈에 띄거나 높은 건물, 혹은 산을 콕 짚어서 정해둡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누워서 정해둔 위치를 올려봅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뭐야, 이게!……. , 초등학생이니까요.)

 대충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그냥 주변에 있는 산의 높이를 알아본 다음에, ‘저 산의 몇 배구나하는 식으로 상상해도 되는데, 왜 꼭 누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초등학생이 길바닥에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아마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상상하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곳에 그려보는 게 더 실감 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킬리만자로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산에도 관심을 두게 되면서 조금씩 과학, 특히 지구과학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화산이 어떻게 생겨나고, 히말라야 산맥은 어떻게 생겨나고, 열대 기후에 어떻게 눈 덮인 산이 있는지 등등.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 이런 행동을 좀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속도(!?)에도 흥미를 느꼈는데, 그때도 비슷한 행동을 했었습니다. 예컨대, 치타가 최고 속도가 120km라면, 이 역시 실감 나질 않으니 이해하기 쉬운 숫자로 바꾸자는 거죠. 제가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것은 ‘100m를 몇 초에 달리는지였습니다. 그래서 계산해 보는 거죠. 120km1시간(3,600)120,000m(120km)를 달린다는 이야기니까3,600*100/120,000=3().

 출발해서 최고 속도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등은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것까지 생각하긴 무립니다. 어쨌든, 치타가 100m3초에 달린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엔 실감해봐야죠. 제가 직접 100m를 달립니다. 전자시계를 차고 출발과 동시에 스타트를 누르고, 3초에 멈추는 거죠. ‘, 3초 동안 요만큼 왔는데, 치타는 도착했구나.’ 이런 식으로.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

 

 이래서 지구과학에 이어 물리()에도 호기심을 갖게 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흥미가 줄더군요. 나중에는 급속도로 사라지고요. 과학이라는 단어 앞에 진학, 입시를 위한이 붙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무작정 주기율표 외우고, 물리 공식 외우고…….

 

.

.

 

 지난 일요일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만 연달아 4권을 읽었더니,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서 과학책을 읽어볼까 했습니다. 과학책 중에서도 진화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등 특정 분야에 대한 과학책보다는 이것저것 다 다루고 있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책은 두껍고 무겁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걸로.

 그래서 책장을 훑어보다가 눈에 걸린 책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글방), 존 그리빈의 과학(들녘), 데틀레프 간텐(2)지식(이끌리오).

책을 꺼내면서 어렸을 때는 과학을 좋아한 것 같은데, 왜 좋아했지?’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떠올려보니 위에 적은 초등학생 때가 기억났습니다. 생각 외로 좀 길어졌지만.

 

 다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글방), 존 그리빈의 과학(들녘), 데틀레프 간텐(2)지식(이끌리오), 이 세 권이 가장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아마도). 그저 이 세 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습니다. 저는 책을 꽂아 놓을 때, 아무렇게나 꽂아 놓기 때문에 전집이 아닌 이상 비슷한 책이 나란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 세 권 말고도 비슷한 책이 몇 권 더 있지 않았나 싶지만, 기억나질 않네요. 뭐 책장이 아닌 박스에 담겨 있다면 찾는 것도 귀찮고요. 그리고 사실 기억나질 않는다면, 둘 중 하나죠. 허투루 읽어서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놓고는 전혀 읽지 않았거나.

 

 

 세 권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책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교양과학 도서 중에선 유명한 책이죠. ‘무슨 추천도서목록 같은 데에도 자주 보이고요. 저 역시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저자가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 노력한 게 보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실제로 상대적인 크기까지 고려해서 태양계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과서에 여러 쪽을 펼칠 수 있는 면을 만들거나, 폭이 넓은 포스터용 종이를 사용하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하다. 상대적 크기를 고려한 태양계 그림에서, 지구를 팥알 정도로 나타낸다면 목성은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만 하고, 명왕성은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야만 한다(더욱이 명왕성은 세균 정도의 크기로 표시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켄타우루스를 그런 그림에 나타내려면 16,000킬로미터 바깥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목성을 이 문장 끝에 있는 마침표 정도로 표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축소하면, 명왕성은 분자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10미터 떨어진 곳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p.38)

 이렇게 설명하니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과학 지식을 하나의 실로 엮듯이 설명해 나가니 인기가 많을 법도 합니다. 다만, 그림이 전혀 없는 점이 아쉽더군요.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합니다. 설명하기도 편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그림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도 훑어봤습니다만, 역시 없네요.

 

 

 다음은 존 그리빈의 과학.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난 후에, 서점에서 우연히 구매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교양과학, 혹은 과학사라고 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구성의 책인 것 같습니다. 과학사에 가까운 책이니 시간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과학자와 당시 시대적 상황까지 적지 않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가 두 개의 주요 우주체계에 대한 대화(Dialogue on the Two Chief World Systems)를 출간할 때의 상황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요.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두께인데, 책의 주요 내용은 15세기 후반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해 20세기 과학까지 다루고 있으니 어느 정도 짐작을 될 것 같습니다.

 반면에 과학사에 기초해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저처럼 휘발성이 강한 뇌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억에 남는 내용이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당연한가요?).

 또 한 가지, 책의 내용은 포털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는 물론, 추천의 글, 감사의 글, 사진까지 포함한 전문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할인은 물론, 마일리지도 없이 정가 그대로 구매했는데().

 

 

 마지막으로 데틀레프 간텐(2) 지식. 세 권의 책 중에서는 가장 덜 알려진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저자의 인지도 때문이지 않을까요? 과학 관련 책은 저자의 인지도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제목이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면 책이 독자의 눈에 띄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지식이라는 단어로 검색해 보아도 알 수 있죠. 이 책이 과연 몇 페이지에 나올지. 제목에 지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잔뜩 쏟아질 텐데, 눈에 띄기 어렵죠.

 

 책이 비교적 덜 알려져서 덜 팔렸고, 그래서 할인을 하고 있나 봅니다. 무려 74%(?). 38,000원의 책이 10,000원이니 말 다했죠. 저렴해서 저도 얼마 전에 부담 없이 샀습니다. 리뷰도 별로 안 보이고, 참고할 만한 것도 없지만 (992페이지 중에서) 200페이지만 읽어도 아깝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했지요. 그랬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구성 방식은 가장 단순합니다. 5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진화생물학 위주로, 2부는 지구과학, 3부는 물리학, 4부는 생명과학, 5부는 뇌 과학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방식입니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편하기도 합니다. 뇌 과학만 읽고 싶으면 5부를 읽으면 되고, 물리학부터 읽고 싶으면 3부부터 읽어도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요. 책 끝에 부록으로 과학사의 명저(?), 추가 권장 도서 목록들도 정리돼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기원전 250만 년 전부터 2003년까지의 과학 연대표도 정리해 놓았고요.

 

 이 책도 앞의 책들처럼 아쉬운 점을 꼽으면, 좋은 책이지만 특별한 매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글을 재미있게 쓰는 방식도 아니고요. 또 하나는, 저자를 전혀 모르고 읽어도 이거 독일에서 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독일 냄새가 납니다. 서론도 칸트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생소한 독일 과학자도 종종 나옵니다. 이게 왜 단점이냐고 물으면……. 뭐 저한테는 낯설고 생소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사람마다 취향이 크게 다르니 어떤 책이 제일 낫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대개 과학책은 비싸잖아요. 그러니까 만약 괜찮다면 지식은 현재 10,000원에 판매 중이니까(알라딘에서만 74% 할인입니다. 다른 서점은 20% 할인이거나 품절입니다) 구매하고, 과학은 포털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읽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지 않을까요?(도서관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없을 리가 없으니)

 

 

*

1) 그나저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출간 전에 어떤 분이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신 걸 보고는 꽤 기다렸는데, 가격과 두께가 놀랍네요. 읽고는 싶은데 1,400페이지라는 걸 보니, 사더라도 언제 읽을지 짐작이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일단 보류.

 

 

2) 21세기 자본도 출간 전부터 기다렸고, 출간되자마자 구매했는데……. 책 관련 글이나 기사, 혹은 리뷰 좀 읽었더니, 제 뇌가 자꾸 읽은 걸로 착각하네요. 어리석은…….

 

3) 오늘은 별것도 아닌 걸로 너무 길게 썼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 혹은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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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듀우 2014-10-0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왜 마지막에 살짝 추가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페이퍼 메인으로 올라갈까...
뭘 잘못 입력했나... 이것저것 손대봐도 바뀌질 않네. 이러면 민폔데. 킁.

혹시 아시는 분 계시려나요?

마노아 2014-10-0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메인에는 신간도서가 대표 이미지로 보이는 것 같아요.

만듀우 2014-10-01 20:4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작성자가 정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마노아님, 감사합니다. ^^
 

 

 나코이 온천의 숙소에서 남자()가 잠든 사이 여자(나미)는 슬며시 들어와(손님이 없을 때 자신이 사용하던 방)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나갑니다. 그리고 남자가 잠들기 전에 적어 놓은 하이쿠를 보고는 그 밑에 자신도 하이쿠를 남겨 놓습니다.

 

 

 “해당화에 맺힌 이슬을 떨어뜨리네, 미치광이”
 “해당화에 맺힌 이슬을 떨어뜨리네, 아침 까마귀”

 

 “꽃 그림자, 몽롱한 여자 그림자인가”
 “꽃 그림자, 겹쳐진 여자 그림자인가”

 

 “정일품, 여자로 변신했나 으스름달”
 “도련님, 여자로 변신했나 으스름달”

 

 사실 이 장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습니다. 그저 남자는 잠이 들고, 잠결에 여자가 방에 들어왔다 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오매(寤寐)의 경계를 소요하고 있을 때 입구의 장지문이 쓰윽 열렸다. 문이 열린 곳에 환영처럼 홀연히 여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는 놀라지도 않는다.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다. 바라본다고 말하면 말이 너무 강하다. 감고 있는 내 눈꺼풀 안에 환영의 여자가 양해도 없이 미끄러져 들어온 것이다. 환영은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선녀가 파도 위를 건너는 것처럼 다다미 위에는 사람의 발소리 같은 것도 나지 않는다. 감은 눈 안에서 보는 세상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살갗은 하얗고 머리는 짙으며 목덜미가 긴 여자다. 요즘 유행하는 바림 사진을 등불에 비쳐 보는 것 같다.
 환영은 벽장 앞에서 멈춘다. 벽장이 열린다. 소매를 미끄러지는 하얀 팔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벽장이 다시 닫힌다. 다다미의 파도가 저절로 환영을 돌려보낸다. 입구의 장지문이 저절로 닫힌다. 나의 잠은 차츰 깊어진다. 사람이 죽어 소나 말로 환생하기 전의 상태가 이럴 것이다. (p.52)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방에 돌아와 보니 자신이 적은 하이쿠 밑에 누군가가 하이쿠를 적어 놓았다는 묘사만 있을 뿐이죠.

 아무 생각 없이 방석 위에 앉아 보니, 당목으로 만든 책상 위에 내 사생첩이 연필이 끼워진 채로 마치 소중한 부분인 듯 펼쳐져 있다. 꿈속에서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간 하이쿠를 아침에 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 손에 든다.
 “해당화에 맺힌 이슬을 떨어뜨리네, 미치광이”라는 하이쿠 밑에 누군가 “해당화에 맺힌 이슬을 떨어뜨리네, 아침 까마귀”라고 적어놓았다. 연필이라 서체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여자치고는 너무 딱딱하고 남자치고는 너무 부드럽다. 이런, 하고 다시 놀란다. 다음을 보니 “꽃 그림자, 몽롱한 여자 그림자인가”라는 하이쿠 밑에 “꽃 그림자, 겹쳐진 여자 그림자인가”라고 적혀 있다. “정일품, 여자로 변신했나 으스름달”이라는 하이쿠 밑에는 “도련님, 여자로 변신했나 으스름달”이라고 되어 있다. 흉내를 낼 생각이었을까, 첨삭을 할 생각이었을까, 풍류를 나눈 건가, 바보인가, 바보 취급을 한 건가, 나는 무심코 고개를 갸웃했다. (p.57)

 『풀베개』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목욕탕에 들어온 나체의 나미, 그 묘사는 압권이자 안쓰러움이다.’ 라고 적힌 것처럼 많은(?) 분들이 목욕탕의 장면에 대한 묘사를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는 앞에 적은 것처럼 ‘나’의 하이쿠 밑에 ‘나미’가 하이쿠를 적어 놓은 장면이 더 좋았습니다. 작가의 직접적인 묘사가 없으니 상상하게 되고, 상상하다 보니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 말고는 가가미가 연못에서 동백꽃을 묘사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보고 있으니 빨간 것이 물 위로 뚝 떨어졌다. 고요한 봄에 움직인 것은 그저 이 한 송이뿐이다. 잠시 후 다시 뚝 떨어졌다. 저 꽃은 결코 지지 않는다. 무너진다기보다는 단단히 뭉친 채 가지를 떠난다. 가지를 떠날 때는 한 번에 떠나기 때문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떨어져도 뭉쳐 있는 것은 어쩐지 독살스럽다. 또 뚝 떨어진다. 저렇게 떨어지는 동안 연못의 물이 붉어지리라 생각했다. 꽃이 조용히 떠 있는 근처는 지금도 약간 붉은 듯하다. 또 떨어졌다. 땅 윙에 떨어진 건지, 물 위에 떨어진 건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조용히 뜬다. 또 떨어진다. 저것이 가라앉는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p.137)

 어쨌든. 사실 위의 하이쿠를 주고받는(?) 장면은 어찌 보면 하나도 특별한 것도 없어 보입니다. ‘나’는 그저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놓은 것일 뿐이고, ‘나미’는 그것을 읽고는 그 밑에 ‘그저 가볍게’ 또 적어 놓은 것뿐이죠. 그리고 하이쿠가 특별히 좋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좋을까요? 잘 생각해보니 저의 ‘산만하고, 어리석고, 가볍고, 깨끗한’ 뇌 때문인 것 같더군요.

 

 우리 뇌 속의 신경은 언제든지 서로 연결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죠. 그래서 만약, A라는 신경과 B라는 신경이 동시에 자극을 받으면 신경 간의 연결이 강화되어, 나중에는 A신경에만 자극을 주어도 B신경도 같이 반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신이 ‘아주 싫어하던’ 사람이 캔커피나 자판기 커피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캔커피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것을 보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전에 있었던 무엇 때문에 저 장면이 좋다고 생각했을까, 하니 영화 한 편이 떠오르더군요. 어렸을 적에 본 왕조현, 장국영 주연의 ‘천녀유혼’. 하하하. 어렸을 적에 <천녀유혼>을 보고 슬프면서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풀베개』에서 하이쿠를 주고받는(?) 장면을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천녀유혼>의 한 장면을 떠오른 게 아닐까 합니다. 영채신(장국영)과 소천(왕조현)이 헤어지면서 그림에 시를 나누어 쓰는 장면이요. 물론,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아무튼,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쳔녀유혼>에 대한 좋은 감정까지 떠오른 것 같습니다. 아닐까요?

 

 <천녀유혼(1987) 中>

 

 아아. 왕조현….
 아아. 장국영….

 물론 헛소리 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그 장면이 좋았을 뿐일 수도 있지요.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말도 안 듣고, 생긴 것도 모르는 제 뇌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냥 잡생각과 헛소리가 고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 왕조현.

 

 


 

 

 

 

 

* 그러고 보니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차분 세트도 나왔더군요. 2차분 세트를 구매하면 [1] ‘노트’를 준답니다. 1차분 사은품도 노트였고…. 요즘엔 사은품으로 노트를 주는 경우가 정말 많군요. 반면에 펜 같은 필기도구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요(노트보다 비싼가?). 그리고 [2] SNS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세트(…길다…) 출간 소식을 주위에 전하면, 댓글 남긴 사람 중 2명을 추첨해서 ‘암체어’를 준답니다(저처럼 SNS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벤트 참여의 기회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알라딘 블로그도 되려나? 받으면 잘 앉을 자신 있는데. 킁.). SNS 하시는 분들은 가볍게 응모해보시길.

 

이벤트 주소: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40923_hyun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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