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학의 자는커녕 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사회과 부도였습니다. 저 같은 분들 많지 않나요? 저는 특히 책의 맨 뒤에 있던 통계자료(?)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국가별 면적이나 인구수, 그리고 GNP·GDP 같은 것을 비교하는 게 무척 재밌었습니다. 책 여백에 인구수가 많은 순서대로 혹은 면적이 넓은 순서대로 적어 놓기도 했고요.

또 세계지도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지도를 좋아한 것은 아니고요, 지도에 표시된 산()을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요. ‘에베레스트 8,848m, 몽블랑 4,807m, 아콩카과? 이름 어렵네. 6,962m. 킬리만자로,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 뭐 이런 식으로요.

 

 이런 산()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높이가 얼마인지도 알았으니, 이제 다른 것들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을 뒤졌습니다. 친구 집에 가서도, 도서관에 가서도. 그러다가 우연히 킬리만자로 산을 보았는데, 세상에. ……. 그냥 최고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산이 있을 수 있을까, 가짜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멋지다(?)는 생각에 사진을 오려서 벽에 붙여 놓기도 하고,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초등학생이니까요). 그때 갖고 다니던 사진과 가장 비슷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이 사진과 거의 똑같은 것 같네요. 탄자니아의 초원에서 코끼리와 기린 같은 동물들이 있고, 그 뒤에 구름 위로 보이는 눈 덮인 산이 너무 그림 같았습니다. 산이 저 멀리에서 구름 위로 솟아 있는데도, 높다는 생각보다는 크다는 생각, 장엄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킬리만자로 산이 너무 좋은데, 어떻게 실제로 볼 수가 없으니 혼자서 상상을 했습니다. ‘5,892m면 얼마지? 저 산보다는 얼마나 더 높은 거지?’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5,892m이라는 높이는 솔직히 당시 저 같은 초등학생이 상상하거나 실감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럼 실감할 방법을 찾아야죠.

 

 먼저 제가 있는 곳에서 약 6km 떨어져 있는 곳을 파악합니다. 부모님께 물어보거나, 학교에서 집까지가 대충 몇 킬로미터니까……. 이렇게요. 그다음 6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가장 눈에 띄거나 높은 건물, 혹은 산을 콕 짚어서 정해둡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누워서 정해둔 위치를 올려봅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뭐야, 이게!……. , 초등학생이니까요.)

 대충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그냥 주변에 있는 산의 높이를 알아본 다음에, ‘저 산의 몇 배구나하는 식으로 상상해도 되는데, 왜 꼭 누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초등학생이 길바닥에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아마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상상하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곳에 그려보는 게 더 실감 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킬리만자로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산에도 관심을 두게 되면서 조금씩 과학, 특히 지구과학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화산이 어떻게 생겨나고, 히말라야 산맥은 어떻게 생겨나고, 열대 기후에 어떻게 눈 덮인 산이 있는지 등등.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 이런 행동을 좀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속도(!?)에도 흥미를 느꼈는데, 그때도 비슷한 행동을 했었습니다. 예컨대, 치타가 최고 속도가 120km라면, 이 역시 실감 나질 않으니 이해하기 쉬운 숫자로 바꾸자는 거죠. 제가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것은 ‘100m를 몇 초에 달리는지였습니다. 그래서 계산해 보는 거죠. 120km1시간(3,600)120,000m(120km)를 달린다는 이야기니까3,600*100/120,000=3().

 출발해서 최고 속도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등은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것까지 생각하긴 무립니다. 어쨌든, 치타가 100m3초에 달린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엔 실감해봐야죠. 제가 직접 100m를 달립니다. 전자시계를 차고 출발과 동시에 스타트를 누르고, 3초에 멈추는 거죠. ‘, 3초 동안 요만큼 왔는데, 치타는 도착했구나.’ 이런 식으로.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

 

 이래서 지구과학에 이어 물리()에도 호기심을 갖게 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흥미가 줄더군요. 나중에는 급속도로 사라지고요. 과학이라는 단어 앞에 진학, 입시를 위한이 붙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무작정 주기율표 외우고, 물리 공식 외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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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만 연달아 4권을 읽었더니,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서 과학책을 읽어볼까 했습니다. 과학책 중에서도 진화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등 특정 분야에 대한 과학책보다는 이것저것 다 다루고 있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책은 두껍고 무겁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걸로.

 그래서 책장을 훑어보다가 눈에 걸린 책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글방), 존 그리빈의 과학(들녘), 데틀레프 간텐(2)지식(이끌리오).

책을 꺼내면서 어렸을 때는 과학을 좋아한 것 같은데, 왜 좋아했지?’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떠올려보니 위에 적은 초등학생 때가 기억났습니다. 생각 외로 좀 길어졌지만.

 

 다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글방), 존 그리빈의 과학(들녘), 데틀레프 간텐(2)지식(이끌리오), 이 세 권이 가장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아마도). 그저 이 세 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습니다. 저는 책을 꽂아 놓을 때, 아무렇게나 꽂아 놓기 때문에 전집이 아닌 이상 비슷한 책이 나란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 세 권 말고도 비슷한 책이 몇 권 더 있지 않았나 싶지만, 기억나질 않네요. 뭐 책장이 아닌 박스에 담겨 있다면 찾는 것도 귀찮고요. 그리고 사실 기억나질 않는다면, 둘 중 하나죠. 허투루 읽어서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놓고는 전혀 읽지 않았거나.

 

 

 세 권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책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교양과학 도서 중에선 유명한 책이죠. ‘무슨 추천도서목록 같은 데에도 자주 보이고요. 저 역시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저자가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 노력한 게 보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실제로 상대적인 크기까지 고려해서 태양계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과서에 여러 쪽을 펼칠 수 있는 면을 만들거나, 폭이 넓은 포스터용 종이를 사용하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하다. 상대적 크기를 고려한 태양계 그림에서, 지구를 팥알 정도로 나타낸다면 목성은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만 하고, 명왕성은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야만 한다(더욱이 명왕성은 세균 정도의 크기로 표시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켄타우루스를 그런 그림에 나타내려면 16,000킬로미터 바깥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목성을 이 문장 끝에 있는 마침표 정도로 표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축소하면, 명왕성은 분자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10미터 떨어진 곳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p.38)

 이렇게 설명하니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과학 지식을 하나의 실로 엮듯이 설명해 나가니 인기가 많을 법도 합니다. 다만, 그림이 전혀 없는 점이 아쉽더군요.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합니다. 설명하기도 편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그림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도 훑어봤습니다만, 역시 없네요.

 

 

 다음은 존 그리빈의 과학.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난 후에, 서점에서 우연히 구매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교양과학, 혹은 과학사라고 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구성의 책인 것 같습니다. 과학사에 가까운 책이니 시간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과학자와 당시 시대적 상황까지 적지 않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가 두 개의 주요 우주체계에 대한 대화(Dialogue on the Two Chief World Systems)를 출간할 때의 상황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요.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두께인데, 책의 주요 내용은 15세기 후반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해 20세기 과학까지 다루고 있으니 어느 정도 짐작을 될 것 같습니다.

 반면에 과학사에 기초해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저처럼 휘발성이 강한 뇌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억에 남는 내용이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당연한가요?).

 또 한 가지, 책의 내용은 포털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는 물론, 추천의 글, 감사의 글, 사진까지 포함한 전문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할인은 물론, 마일리지도 없이 정가 그대로 구매했는데().

 

 

 마지막으로 데틀레프 간텐(2) 지식. 세 권의 책 중에서는 가장 덜 알려진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저자의 인지도 때문이지 않을까요? 과학 관련 책은 저자의 인지도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제목이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면 책이 독자의 눈에 띄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지식이라는 단어로 검색해 보아도 알 수 있죠. 이 책이 과연 몇 페이지에 나올지. 제목에 지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잔뜩 쏟아질 텐데, 눈에 띄기 어렵죠.

 

 책이 비교적 덜 알려져서 덜 팔렸고, 그래서 할인을 하고 있나 봅니다. 무려 74%(?). 38,000원의 책이 10,000원이니 말 다했죠. 저렴해서 저도 얼마 전에 부담 없이 샀습니다. 리뷰도 별로 안 보이고, 참고할 만한 것도 없지만 (992페이지 중에서) 200페이지만 읽어도 아깝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했지요. 그랬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구성 방식은 가장 단순합니다. 5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진화생물학 위주로, 2부는 지구과학, 3부는 물리학, 4부는 생명과학, 5부는 뇌 과학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방식입니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편하기도 합니다. 뇌 과학만 읽고 싶으면 5부를 읽으면 되고, 물리학부터 읽고 싶으면 3부부터 읽어도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요. 책 끝에 부록으로 과학사의 명저(?), 추가 권장 도서 목록들도 정리돼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기원전 250만 년 전부터 2003년까지의 과학 연대표도 정리해 놓았고요.

 

 이 책도 앞의 책들처럼 아쉬운 점을 꼽으면, 좋은 책이지만 특별한 매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글을 재미있게 쓰는 방식도 아니고요. 또 하나는, 저자를 전혀 모르고 읽어도 이거 독일에서 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독일 냄새가 납니다. 서론도 칸트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생소한 독일 과학자도 종종 나옵니다. 이게 왜 단점이냐고 물으면……. 뭐 저한테는 낯설고 생소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사람마다 취향이 크게 다르니 어떤 책이 제일 낫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대개 과학책은 비싸잖아요. 그러니까 만약 괜찮다면 지식은 현재 10,000원에 판매 중이니까(알라딘에서만 74% 할인입니다. 다른 서점은 20% 할인이거나 품절입니다) 구매하고, 과학은 포털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읽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지 않을까요?(도서관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없을 리가 없으니)

 

 

*

1) 그나저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출간 전에 어떤 분이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신 걸 보고는 꽤 기다렸는데, 가격과 두께가 놀랍네요. 읽고는 싶은데 1,400페이지라는 걸 보니, 사더라도 언제 읽을지 짐작이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일단 보류.

 

 

2) 21세기 자본도 출간 전부터 기다렸고, 출간되자마자 구매했는데……. 책 관련 글이나 기사, 혹은 리뷰 좀 읽었더니, 제 뇌가 자꾸 읽은 걸로 착각하네요. 어리석은…….

 

3) 오늘은 별것도 아닌 걸로 너무 길게 썼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 혹은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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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듀우 2014-10-0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왜 마지막에 살짝 추가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페이퍼 메인으로 올라갈까...
뭘 잘못 입력했나... 이것저것 손대봐도 바뀌질 않네. 이러면 민폔데. 킁.

혹시 아시는 분 계시려나요?

마노아 2014-10-0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메인에는 신간도서가 대표 이미지로 보이는 것 같아요.

만듀우 2014-10-01 20:4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작성자가 정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마노아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