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행동경제학, 혹은 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풀어놓은 책으로 착각한 것이죠. 실제로는 개발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 빈곤의 경제학(economics of poverty)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책으로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한비야의 추천 도서로도 잘 알려져 있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문제점들을 무척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그곳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에 반해 이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어떻게’라는 물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까닭은 그들이 지정학적으로 열대의 불모지에 위치해 말라리아가 극심할 뿐 아니라 육지에 둘러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대적인 초기 투자로 지역 특유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지 않으면 이들 지역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문제는 가난한 나라가 이러한 투자자금을 변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p.18)

 

 위와 같은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대한 제프리 삭스와 다른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 스스로 가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건강, 교육, 인구정책, 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가령 인도의 경우, 학교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부실한 건강상태나 어려운 가정형편의 이유도 분명 있지만,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학교에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더 큰 이유라는 것이죠.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교육이 부실할 경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로 나누고, 공부 잘하는 아이에 맞추어 교육할 때 다소 뒤처진 아이는 더욱 뒤처지게 됩니다. 게다가 그 아이를 ‘너는 똑똑하지 못하니 배워봤자 소용없다.’라는 식으로 방치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배워봤자 소용없다.’는 그 교사의 말을 믿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멕시코의 조건부 보조금(CCT; Conditional Cash Transfer) 프로그램인 프로그레사(PROGRESA) 사례(자녀를 꾸준히 학교에 보내고 예방보건 활동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가난한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교육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대안학교나 보충수업 등을 통해서 아이들이 각자의 수준에 맞게 학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 정보기술을 이용한 교육 제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과 같이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교육뿐만이 아니라 건강, 사회적 안전망 등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결국,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거시경제 정책이나 제도 개혁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작은 정책과 노력만으로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런 예를 거듭해서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세부적인 내용이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거대한 제도에서 낮은 수준의 제도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래로부터의 관점’, 즉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p.328)

 

 정치는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조금씩 개선할 수 있으며 실제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개입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주장해온 이 철학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p.340)

 

 정치 환경이 좋을 때 좋은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정치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정책이 시행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정치 환경이 좋아도 얼마든지 나쁜 정책이 시행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정책과 제도는 충분히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난에는 한계가 있죠.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흙 쿠키’라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국민의 7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최빈국. 언제부터인가 진흙으로 만든 쿠키가 주식이 되어버린 나라. 그리고 이렇게 만든 진흙 쿠키를 사 먹는 나라. 2010년에는 지진으로 25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10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나라. 바로 아이티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돈을 주고 사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먹는다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를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가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아이티에서 주식처럼 되어버린 진흙 쿠키. MBC 프로그램 W 중에서>

 

 다만 저자들의 주장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작은 변화가 갖는 한계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성격을 갖은 원조처럼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조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동반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한 상황에서 원조를 계속하면 정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p.325)

 

 위와 같은 저자들의 주장처럼 대부분의 원조는 정치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 개방’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죠. 그리고 이는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자칫 또 다른 문제점을 낳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남반구 지역 국가들의 부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자리 잡은 나라 현지에서의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이나 주식투자 등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외화로 본사가 있는 나라에 송금하는 관행을 들 수 있다.

 거기에다 로열티를 지급하는 체제까지 추가해야 한다. 네슬레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중략- 이제 브라질의 경우를 보자. 네슬레는 브라질에서 터무니없이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 이익의 일보는 브라질 전국에 설립된 25개의 공장에 재투자된다. 또 다른 일부는 기업 확장과 새로운 시장 개척(가령, 가축 사료 시장) 등을 위한 경비로 쓰인다. 하지만 가장 큰 몫은 네슬레의 본사가 자리한 스위스의 베베이로 보내진다.

 이와 같은 자본의 유출은 브라질 중앙은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슬레는 안정적인 교환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레알화가 아니라 달러로 송금하기 때문이다. -중략- 환전을 마친 돈은 즉시 대서양을 건너 본사로 향하게 되므로, 브라질 국내의 외채 사정은 한층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 중에서 p.248~p.249)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위와 같은 문제는 국가의 자본이 축적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가 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처럼 정치적인 성향을 갖는 원조의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소지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경제 분야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더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과 관련된 문제는 여러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의 작은 정책변화만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책이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그에 맞추어 국제적인 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용은 무척 구체적이고 전문적입니다. 즉 술술 읽히는 경제도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읽어볼 만한 도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사례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그와 함께 독자에게 깊은 고민과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도서니까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7-21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1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9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9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제/경영/자기계발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콘드 - 이브 스미스

 

경제는 經世濟民(경세제민)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세한다.’라는 ‘인문(人文)’적인 개념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Economics(경제학)으로 사회과학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즉 ‘과학’적인 학문이라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경제학이 과학에 가까워진 이유에는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된 주류 경제학자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류 경제학에 관한 비판은 과거에도 끊임없이 제기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도 주류 경제학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어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책 <이콘드>는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과 함께 그 답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합니다.

 

 

 

외로워지는 사람들 - 셰리 터클

 

얼마 전 TV 방송에서 한 사연을 소개하더군요.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를 휴대폰을 통해서 한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어느 곳에 있든지 서로 소통할 수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의 관계가 그렇게 폭넓고 좋은 관계로만 유지되고 있을까요? 하루에 사람보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마주하며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진 세상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이러한 기술의 변화를 좀 더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기술의 발달이 인간 ‘관계(關係)’에 미치는 영향을 조망한 책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답해줄지 궁금합니다.

 

 

CEO의 서재 - 한정원, 전영건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이나 포털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명사들의 서재는 항상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읽은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서재는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공간이며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지요. 작년에 <지식인의 서재>라는 책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 는 그 책의 연장으로 한국의 비즈니스를 이끄는 8명의 CEO와 그분들의 서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재를 통해서 그분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의 영향을 받았는지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냥 단순히 그분들의 서재를 둘러보기만 해도 좋구요.

 

 

콰이어트 - 수전 케인

 

우리는 어려서부터 ‘겸손’을 가장 큰 미덕으로 배우며 자라왔습니다. 남들 앞에 함부로 나서기보다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보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더욱 필요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자신감을 더욱 많이 강조하고 있으며, 서점 가에도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으라는 책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이 책 <콰이어트>의 저자 수전 케인은 내성적인 성격, 침묵, 혼자만의 시간들이 큰 힘이 되며, 우리는 이를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0분 동안의 TED 강연을 듣고 나니 저자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티플라이어 - 리즈 와이즈먼, 그렉 맥커운

 

간혹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할 때면 ‘리더의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누군가가 말을 하면 더욱 설득력을 갖추고 더욱 신뢰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무언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 <멀티플라이어>의 저자는 ‘멀티플라이어(Multiplier)란 상대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팀과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리더’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모두가 바라는 리더겠지요. 20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누구도 멀티플라이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7-07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 세계은행 총재 김용의 마음 습관
백지연 지음 / 알마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세계은행의 총재에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느낌은 ‘놀랍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우선 아무리 한국계라 하더라도 미국인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두 번째는 저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계은행의 총재에 ‘한국계’인 김용 총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은 놀라웠습니다. 아마 세계은행이 이름은 ‘세계’ 은행이지만 그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놀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저는 그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이 책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역시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은 상황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궁금했고 알고자 했던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떤 인물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중점을 두는 물음이기도 한데요, 삶의 순간에서 왜 그러한 선택을 했으며, 어떻게 실천을 해나갔는지가 저에겐 무척 궁금한 사항들 이었습니다.

 

 먼저, 김용 총재는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나라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의학과 인류학을 전공했고요. 왜 의학과 인류학을 택했으며, 왜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요? 어려운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전쟁을 치른 한국을 떠난 부모님과 가난에 허덕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퇴계 이황과 유교철학을 연구하신 어머니의 가르침의 영향도 무척 크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실용을 중시하신 아버지의 조언과 충고에 따라 의학을 전공으로 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와 함께 자신이 배우고 싶은 인류학을 함께 배워나간다는 것이죠. 의학과 인류학을 함께 전공하고, 가난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자신의 바람이 결국 국제 의료봉사 조직인 PIH의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런데 김용 총재는 현장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왜 현장을 떠나 다른 길을 택하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좌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신속한 약품 지원을 위해 카라바이요의 성당(페루) 옆에 약국을 지었는데, 이 약국이 그만 반군의 테러로 폭파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 김용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PIH가 다른 곳에 다시 약국을 짓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김용도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추쟁 같았을 것이다. -이하 생략- (p.68)

 

 페루에서의 경험을 통해 김용과 폴 파머는 더욱 가까워졌지만 서로가 다른 길을 보게 만들었다. -중략- 김용은 폴 파머와는 달리 페루에서의 경험을 통해 보다 큰 기획, 국제기구, 거대 제약회사의 횡포, 저개발국에 공금되는 약값의 통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피라미드 위쪽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부터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그것만이 가장 큰 실행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p.70)

 

 이처럼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그는 현장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세계보건기구의 에이즈국장을 거쳐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에 임명되고, 다시 세계은행의 총재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면 김용 총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 왔을까요? 이는 이 책의 2부에서 다루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습관(Mind of Habit)끈질김(persistence)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글로벌시티즌이 되라. 여기서 말하는 글로벌시티즌이란 것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의미의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이죠.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통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지닌 인재가 아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그를 인지할 수 있는 안목과 통찰을 갖춘 인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서 추론적 유연성(discursive flexibility)을 기르길 주문합니다. 글쓰기는 다양한 모든 소통을 효과적으로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다시 김용은 지적한다. 과학의 커다란 돌파구를 마련하는 진짜 위대한 과학자, 혹은 정말 창의적인 과학계의 지성들은 좁은 과학의 영역에만 관심사를 한정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정말 위대한 과학자, 지성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거나 위대한 작가였다. 한 분야만 잘 아는 전문지식의 바보가 아닌 음악, 문학, 문화 등 융합과 통섭의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인재만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다양한 관점을 적용해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되고, 사물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데 추론적 유연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창의력은 이런 탄탄한 실력 위에서 터져 나온다. (p.188)

 

 세 번째, 냉소주의에 함몰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식의 태도가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매우 식상한 이야기죠. 그런데 속뜻을 살펴보면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성적 판단에 의한 긍정과 낙관이 아니라 도덕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거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옳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당위성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한 도덕적 필연성이 ‘반드시 달성한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긍정으로 이어짐을 이야기 합니다.

 

 네 번째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문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하게 믿습니다. 너무 일찍 분야를 좁혀서 특정 주제에만 집중하게 되면 정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합니다. 음악, 예술 등을 배워야 합니다.” (p.203)

 

 김용 총재는 이와 함께 이러한 지식과 경험들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교육이 갈등 해결능력에 도움을 준다거나, 연기 수업이 물리적 학습(기억력 향상 등)에 도움을 주고, 공학과 문학을 병행한 것이 사람을 더욱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든다고 말이죠.

 

 다섯 번째는 윤리의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Money), 시장(Market), 자신(Me)이라는 3M 패러다임을 탁월함(Excellence), 사회적 약속(Engagement), 윤리(Ethics)라는 3E로 바꿔나가자고 주장합니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과도 일치하는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한국 교육에 대한 조언으로 끝맺습니다. ‘스펙 쌓기’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죠. 그보다는 무엇이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라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인식되고 고쳐 나가려고 하는 부분이고요.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른 자기계발서나 자서전 등과 비교해 볼 때 특별함은 찾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원론적인 이야기들이지요. 그것은 반대로 이러한 주장들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실천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 그리고 이렇게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내용임에도 김용 총재의 이야기는 저를 무척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마음과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것들을 김용 총재는 평생에 걸쳐 행해 왔던 것이죠. 그리고 김용 총재가 말하는 ‘성공의 정의’는 더더욱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저에게 성공이란 전에도 말했듯이, 이곳에 누군가가 되고자 온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성공입니다. 내가 세상을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나의 지위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스스로 이 일에서 물러날 겁니다. 이런 일(총장직)은 엄청난 압력과 책임감을 느끼기 보다는 어떤 지위를 누리는 마음을 갖기 쉬운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직업이니까요. 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총장실에서 만나고, 그래서 이런 직업의 함정은 사람이 변해서 이 지위를 누리게 되기 쉽다는 겁니다.” (p.226)

 

 “저에게 있어, ‘이제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시점은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 성공이란, 저의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이자 저자 백지연의 마음을 움직인 김용 총재의 말은 ‘무엇이 되고 싶으냐? 무엇이 되라.’는 질문만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충분한 고민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이 되는 것(what to be)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what to do)를 늘 생각했죠.”

 "What I've said before and I always say. I came here to DO something, and I didn't come here to BE something"

 

 

 

 

 

 

 

(참, 중요한 실수가 있더군요. 'p.149 -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오천 원권 지폐 속 인물로만 퇴계 이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계 이황은 천 원권 지폐인데 말이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6-18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뒤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동급 수준이다.” 『블랙스완』이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나심 탈레브의 평입니다. 아마도 최근에 제가 본 서평 중에 가장 강력한 문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1776년에 출간되어 훗날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1900년에 출간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정식분석학을 탄생케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두 책은 세상을 바꿔놓았던 책이죠. 그런데 이런 책들과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이 동급이라니.

 

 대니얼 카너먼은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은 잘 알려져 있듯이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을 뒤엎으면서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아마도 추측건대 나심 탈레브가 그토록 극찬한 이유는 『생각에 관한 생각』이 경제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니얼 카너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나심 탈레브의 말이 꼭 과장됐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던 리처드 탈러의 『넛지』나 댄 애리얼리의 『경제 심리학』,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읽었던 『가격은 없다』 등 수많은 행동경제학 관련 도서들도 사실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에서 시작된 것이죠. 제가 언급한 책 이외에도 행동경제학에 관련된 수많은 책 중에서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를 언급하지 않는 책은 없을 것입니다.

 

<대니얼 카너먼(左)과 故 아모스 트버스키(右)>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는 저자의 말처럼 시스템 1과 시스템 2, 이콘과 인간, 기억자아와 경험자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 시스템 1과 시스템 2입니다.

 

 나는 키스 스타노비치와 리처드 웨스트가 최초로 제안한 용어를 수용해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 가지 시스템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고 부르겠다.

 

-시스템 1: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시스템 2: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한다. 활동 주체, 선택, 집중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작용하는 경우도 잦다. 때가 종종 있다. (p.33)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어를 보시고 ‘단어의 색’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별다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어의 색’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그림에서 단어의 색을 말할 때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것입니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단어의 뜻과 단어의 색이 일치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답을 말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그림에서는 단어의 뜻과 색이 달랐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단어를 자동적으로 읽으려 하는 것이 시스템 1, 이를 통제하고 단어의 색상을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시스템 2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의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에서 A와 B 중에서 더 어두운 부분은 어느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A가 B보다 더 어둡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보시다시피 A와 B는 같은 색입니다. 단지 우리의 뇌가 원기둥의 그림자를 인식하여 A가 B보다 더 어둡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제 다음번에 이 그림을 본다면 우리는 ‘A와 B의 색은 같다’고 할 것입니다. A와 B가 같은 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안다고 해서 눈에도 A와 B의 색이 같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는 A가 B보다 어두워 보이지만 같은 색임을 알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 시스템 1, A와 B가 같은 색임을 알고 인지하는 것이 시스템 2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1970년대 사회과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폭넓게 수용했다. 첫째,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고는 건전하며 행동은 합리적이다. 둘째, 공포와 애정, 증오 같은 감정들은 인간이 합리성과 거리를 두는 대부분의 경우를 설명해준다. (p.15)

 

 즉, 인간이 오류를 범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감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나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은 감정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오류를 범하는 ‘합리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통해서 설명해 나갑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각각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시스템 1은 인상, 느낌, 성향을 만들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며, 직관을 발휘하며, 감정적 정합성을 과장(후광효과)합니다. 또한, 기존의 증거에 집중하고 없는 증거는 무시하며(WYSIATI;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어려운 질문은 쉬운 질문으로 대체(휴리스틱)해서 생각합니다. 시스템 1의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우리가 저지르는 많은 오류가 시스템 1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시스템 2는 시스템 1을 통제하고, 비교·판단하고, 시스템 1의 제안을 승인하고 검토합니다. 그러나 시스템 2는 게으르기 때문에 대체로 시스템 1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고, 우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경제학에서는 대체로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경제 이론의 행위 주체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취향에 변화가 없다.” (p.345)

 

 그리고 여기서 합리성이란

 

 합리성의 유일한 테스트는 어떤 사람의 믿음과 선호도가 이치에 맞는지 여부가 아니라 내적으로 일관되는지의 여부이다. -중략- 합리성은 이치에 맞는지와 상관없는 논리적 일관성이다. (p.501)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주장에 반박합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통해서 인간의 선호도가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그리고 합리적으로 판단해도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1) 당신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확실히 900달러를 얻기 VS. 1,000달러를 얻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

 

 2) 당신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확실히 900달러를 잃기 VS. 1,000달러를 잃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 (p.359)

 

 대부분의 사람이 물음 1)에서는 ‘확실히 900달러를 얻기’를 선택하고 물음 2)에서는 ‘1,000달러를 잃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을 택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똑같은 확률임에도 이익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위험을 회피’하고, 손해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위험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바로 프레이밍 효과입니다.

 

 95달러를 딸 확률이 10퍼센트이고 5달러를 잃을 확률이 90퍼센트인 도박을 하겠는가?

 

 100달러가 당첨될 확률이 10퍼센트이고 아무것도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90퍼센트인 복권을 5달러에 사겠는가?

 

 현실주의자라면 두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내놓겠지만 그런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실제로 이 중 한 가지 질문이 더 많은 긍정적인 대답을 얻는다. 바로 두 번째 질문이다. 나쁜 결과이지만 단순히 도박에서 진다는 묘사보다는, 전혀 당첨되지 못한 복권 가격으로 프레임될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인다. 손실은 비용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선택은 현실주의적일 수 없다. (p.443)

 

 위의 사례는 같은 질문임에도 단어와 문장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와 이론을 통해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인간과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러한 오류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노력을 통해서 그저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질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생각의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 2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죠.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상황을 인지하는 민감성을 기르길 바라고 있습니다.

 

 합리적 행동주체 모델의 신봉자와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회의론자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일까? 전자는 어떤 선택의 표현도 중대한 문제의 선호도를 결정할 수 없다는 걸 당연시한다. 그들은 그 문제를 더 알아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열등한 결과들을 갖고 만다. 반면 합리성에 대한 회의론자는 놀라지 않는다. 그들은 하찮은 요인들이 선호도의 결정요인으로서 갖는 힘에 민감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도 이런 민감성을 습득하길 바란다. (p.455)

 

 시스템 1이 저지르는 수많은 오류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책은 ‘굉장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별 다섯 개가 아니라 열 개라도 줄 수 있을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정말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번역’입니다. 경제 관련 도서는 번역할 때 반드시 원문의 느낌을 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최대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만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은 지나치게 원문을 그대로 살리려 했기 때문인지 번역이 매끄럽지가 못합니다. 저는 특별히 번역에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문장이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뇌졸중은 모든 다른 사고들을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죽음을 유발하지만, 응답자들 중 80퍼센트는 사고로 인한 사고의 발생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p.200)

 

 위와 같은 방식의 번역이죠. ‘사고로 인한 사고의 발생 확률’‘사고로 인한 사망발생 확률’로만 바꾸어도 이해가 좀 더 수월할 텐데 말이죠. 또한, 곳곳의 실수도 눈에 띕니다.

 

 만일 어떤 인구의 U 지수가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진다면 그들이 감정적 불만이나 고통에서 보낸 전체 시간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p.480)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졌다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가 아니라 ‘10분의 1 줄어들었다’가 되겠죠. 이 두 문장의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처럼 번역으로 인한 아쉬움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너무나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개정판이 나온다면 조금에 망설임도 없이 구매할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요. 앞으로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늘수록, 행동경제학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의 위상 역시 더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책의 겉표지에 적혀있는 ‘행동경제학의 바이블’이라는 문구처럼 말이죠.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6-17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7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제/경영/자기계발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인사이드 애플 - 애덤 라신스키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애플은 가장 관심 받는 IT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고 그의 전기가 출간되면서 출판계에서도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바라본 애플을 이야기 한다면 애덤 라신스키의 <인사이드 애플>은 조직과 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애플’이라는 기업을 이야기하는 책은 이미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애플’은 여전히 흥미로운 기업이며, 앞으로도 주목받을 기업이라는 점, 그리고 이 책이 미국에서도 인정받은 애플관련 도서라는 점에서 추천해 봅니다.

 

 

단단한 경제학 - 나카하라 케이스케

 

경제학 교재는 대부분 수요와 공급으로 처음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탄력성, 소비자와 생산자 등 개념과 이론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교재는 지식을 차곡차곡 쌓거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는 무척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현실상황에서 경제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거나 다양한 경제관련 요소들의 연관성을 쉽게 파악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카하라 케이스케의 <단단한 경제학>은 ‘사건과 스토리로 읽는’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를 사건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쉽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현실의 경제상황을 스스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에 흥미와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성공엔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 삼성경제연구소

 

기업의 성공스토리와 성공전략을 다룬 책은 정말 많습니다. 이정도면 기업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비법’은 다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나가던 기업이 몰락하고, 갑자기 등장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합니다. 이 책은 각각의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기업들의 성공스토리 45편을 싣고 있기 때문에 다소 깊이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기업의 자세한 이야기 못지않게 다양한 기업들의 핵심전략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진출한 기업 ‘이케아’에서부터 일본의 ‘반다이’까지 많은 기업들의 성공전략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도서라 생각됩니다.

 

 

두 얼굴의 구글 - 스코트 클리랜드, 아이라 브로드스키

 

애플, 페이스북과 함께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 구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서 온라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함께 논란을 가져오는 기업. 이러한 구글의 목표는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통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 <두 얼굴의 구글>은 구글이라는 기업은 결코 공정하지 않으며, 비윤리적이고, 투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제는 인터넷을 ‘지배’한다고 표현되는 구글의 힘과 미래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저자를 통해서 구글의 새로운 면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중력, 마법을 부리다 - 샘 혼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1시간은 60분이고, 1분은 60초. 그래서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현대사회와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간관리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때문에 시간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집중력의 중요성도 주목받고 있지요. 몇 년 전에 출간된 서울대 황농문 교수의 <몰입>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황농문 교수의 <몰입>이 ‘몰입’상태와 방법, 효과 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했다면, 이 책 <집중력, 마법을 부리다>는 좀 더 포괄적인 범위에서 집중력과 몰입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추천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치 2012-06-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경제경영/자기계발 신간평가단 파트장 키치입니다.
추천신간 체크 완료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