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오늘도 잘 참아냈습니다.

 

 모처럼 서평을 작성하려 마음먹었다가, 문자 하나에 마음을 바꿉니다.

‘[알라딘 신간알리미] 문 (나쓰메 소세키)’

 며칠 전에 ‘나쓰메 소세키 전집 3차분’ 관련 소식을 출판사 블로그에서 봤던 터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지난 페이퍼에서 예상했던 대로 『문(門)』, 『춘분 지나고까지(彼岸過迄)』, 『행인(行人)』.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되었고, 가격도 예상대로네요. 이제 남은 작품은 『마음』, 『한눈팔기』, 『명암』. 처음 계획보다 조금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년에 맞춰 기획한 만큼 내년에 맞춰 완간되겠죠.

 아마도,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에서 이번에 출간된 3차분이 가장 적은 관심을 받을 것 같습니다. 3차분이라는 순서로도 그렇고, 작품 목록을 보아도 그럴 것 같습니다. 1차분은 처음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이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 같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고, 2차분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잘 알려진, 그리고 상당히 인기 있는 『그 후』가 있습니다. 『산시로』도 있고요. 4차분은 만년작(晩年作)으로 꼽히는 『마음』과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 그리고 미완으로 종결된 유작 『명암』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죠.

 반면에 3차분은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문』)과 ‘후기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춘분 지나고까지』)과 두 번째 작품(『행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널리 알려진 소세키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도 어렵고요.
 무척 매력적인 작품들임에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아 짧게 적습니다.



 『문(門, 1910)』

 이 작품은 부도덕한 사랑을 선택한 데 대한 죄의식을 안고 세상의 눈을 피해 조용히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작 『그 후(それから, 1909)』의 속편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큰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과 내면의 묘사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마음(こゝろ, 1914)』과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저만 알고 싶은 그런 작품이죠.


 특히, 소설의 첫 장면은 너무나 좋아서 그 장면만 반복해서 읽기도 했습니다. 조금 많이(?) 길지만, 아래에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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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부터 소스케는 볕이 잘 드는 툇마루로 방석을 내와 마음 편히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으나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내던지고 벌렁 드러누웠다. 맑게 갠 가을날이라고 할 만큼 쾌청한 날씨인 데다 조용한 동네라 길 가는 사람들의 게다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팔베개를 하고 처마 위를 올려다보니 깨끗한 하늘이 온통 말갛고 파랗다. 자신이 누워 있는 비좁은 툇마루에 비하니 하늘이 무척이나 광활하다. 모처럼의 일요일, 이렇게 느긋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썩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미간을 모으고 반짝이는 해를 잠깐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이 부셔 장지문 쪽으로 몸을 뒤쳤다. 장지문 안에서는 아내가 바느질을 하고 있다.
 "이봐, 날씨가 좋은데"하고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내는,
 "네에"라고 할 뿐이다. 소스케도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아내가,
 "잠깐 산보라도 다녀오시지 그래요?"하고 말한다. 하지만 소스케는 그저"응"하고 건성으로 대꾸할 뿐이다.
 이삼 분 지나 아내는 장지문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툇마루에 드러누워 있는 남편을 내다봤다. 남편은 무슨 생각인지 두 무릎을 새우처럼 구부린 거북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리고 깍지 낀 두 손 안에 까만 머리를 집어넣어 얼굴을 팔꿈치에 가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여보, 그런 데서 자면 감기 걸려요" 하고 아내가 주의를 준다. 아내의 말은 도쿄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요즘 여학생들 말투다.
 소스케는 두 팔꿈치 사이에서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자진 않으니까 괜찮아"하고 조그만 소리로 대답한다.
 다시 조용해졌다. 바깥을 지나는 고무바퀴 인력거의 벨 소리가 두세 번 울리고 멀리서 때를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스케는 방적사 옷감으로 새로 지은 옷 등짝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따스한 햇볕을 속옷 아래로 탐하듯이 즐기며 멍하니 바깥 소리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장지문 너머의 아내에게,
 "오요네, 근래(近來)의 근 자 어떻게 쓰더라?"하고 묻는다. 아내는 별로 어이없어하는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젊은 여자 특유의 요란한 웃음소리도 내지 않으며,
 "오우미(近江)의 근 자 아니에요?"하고 대답한다.
 "그 오우미의 근 자를 모르겠거든."
 아내는 꼭 닫은 장지문을 반쯤 열어 문지방 너머로 긴 자를 내밀고는 그 끝으로 툇마루에 근(近) 자를 써보이며,
 "이거잖아요"하고만 말하고 자 끝을 글자가 멈춘 곳에 그대로 놔둔채 한동안 맑게 갠 하늘을 유심히 바라본다. 소스케는 아내의 얼굴도 보지 않고,
 "역시 그렇군"하고 말했는데,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별로 웃지도 않는다. 아내도 근 자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정말 날씨 좋네요"하며 반쯤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장지문을 열어둔 채 다시 바느질을 시작한다. … (p.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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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문(門)』의 해설은 로쟈님이 쓰셨습니다.




 『춘분 지나고까지(彼岸過迄, 1912)』

 이 작품은 제목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피안 지날 때까지』(예옥, 2009), 『피안 지나기까지』(소명출판, 2012), 『춘분 지나고까지』(현암사, 2015)로 번역됐습니다. 이는 책에서 소세키가 직접 밝히듯이,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이 지날 때까지 쓸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마감 날짜(?)를 제목으로 정한 것이죠.

 이 작품을 연재하기 전 1911년에 건강 문제에 안 좋은 일들이 겹친 이유에선지, 『춘분 지나고까지』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면 『춘분 지나고까지』는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옥에서 출간된 판본에는 이 작품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현암사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 길지 않아 아래에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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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지날 때까지』는 소세키의 재출발이다. 즉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죽음을 통과한 사람의 새로운 출발인 동시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출발점으로의 회귀이다
 소세키는 사생문으로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기 시작했다. 사생문은 ‘소설’처럼 보이지만 근대소설에 반(反)하는 것이다. 즉 소세키는 당시의 ‘문단’과는 다른 곳에서 출발했는데, 그것이 ‘문단의 뒷골목을 엿본 경험’도 없는 독자들에게 예상 외의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부터 소설가로 여겨졌고 제자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를 여러 근대소설의 유파로 규정하고 비평하게 된다. 여기서 소세키가 ‘나는 나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원래 ‘근대소설’과는 이질적인 것을 추구해 왔음을 스스로에게 타인에게도 선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소세키가 시대상황과는 무관한 고유의 고뇌를 분석하고자 했음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원경으로 상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쓰고 있다. 심각한 사태를 결론이 없는 채로 하나의 풍경으로서 ‘사생’하는 것이 이 작품의 장치다.
 『피안 지날 때까지』라는 작품 자체가 ‘탐정적’바꿔 말하면 정신분석적이다. 게이타로의 방황 속에서 문제는 시대상황, 남녀관계, 부모자식 관계,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과 의 관계에 존재하는 부조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어긋나면서도 깊어진다.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도 않았고 출구도 없다. 하지만 소세키는 이러한 광경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여유를 가진 ‘사생문’으로서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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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行人, 1912)』

 형 이치로는 동생 지로에게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 달라 요구합니다. 만약,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면 동생 지로와 아내 나오의 관계를 평생 의심하겠다고 하죠. 그 후 동생 지로와 아내 나오는 여행을 가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별일 없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형 이치로의 의심도 풀릴 것 같았지만, 이치로의 의심은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갑니다.

 이 같은 과격한 시작 때문에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기대와는 반대로 인물 간의 갈등과 내면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비판 중 가끔 접하는 것이 근대 여성의 모습을 개성 없고, 지나치게 수동적인 대상으로 그린다는 점입니다.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도 그렇고요. 제 기억에 그 같은 면이 가장 도드라져 보였던 작품이 『행인(行人, 1912)』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면 마치 제가 『행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덧붙이면, 『행인』 역시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다운 매력이 선명해서, 소세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싫어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
1) 『문(門, 1910)』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고선, 제일 짧게 썼네요.

2) 완간이 보이기 시작하니, 이번 전집에서 단편이나 산문집이 빠진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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