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하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소설 『설국』과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가장 유명한, 혹은 최고의 첫 문장을 꼽으면 빠지지 않는 소설들입니다.


 이번에 다시 읽은 『동물농장』의 첫 문장은 "그날 밤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닭장 문을 단속하긴 했지만 너무 술에 취해 작은 출입구 닫는 일은 잊어버렸다." 『설국』이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첫 문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멋진(?) 마지막 문장이라면 있습니다. 만약, 최고의 첫 문장처럼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도 어떤 목록을 꼽는다면, 『동물농장』은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또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왔다갔다 분주했다. 그러나 누가 돼지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했다.(p.123)"



 책과 관련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말을 무척 믿는 편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했다고 해서 반드시 읽진 않지만, 기억해두려 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빨간책방'을 진행하기 몇 년 전에 TV의 책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패널로 참여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는 매주 고전을 한 권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번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책을 소개하는 사람은 『동물농장』 민음사판을 옮긴 도정일 교수였죠. 옮긴이가 소개하기도 하거니와 프로그램의 성격상 좋았던 점이나 자기 생각을 간략히 말하는 정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는 『동물농장』이 앞으로 계속 고전으로 남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간단히 옮기면, '『동물농장』이 처음 출간된 1945년에는 그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지금은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이 책은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한 부분의 특성 때문에 고전으로 끝까지 남아있기가 굉장히 어렵지 않겠나 추측한다' 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태도가 무척 인상 깊었고, 그 같은 이유가 하나둘 쌓여 책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선택을 믿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동물농장』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당시 상황을 풍자한 색은 바래겠지만, 대신 권력과 헛된 희망이나 기대에 대한 풍자가 점점 짙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예컨대 흰색과 검은색의 스펙트럼에서 조금 이동한 것이지 완전히 다른 색이 되었다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풍자한 것인지 전혀 모른 채 읽었기 때문입니다.



 『동물농장』을 처음 읽었던 이유는 이번에 다시 읽은 이유와 같습니다. 얇은 두께. 꽤 오래전에 약속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있어, 도서관에 가서 그 안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워 무작정 세계문학전집 앞으로 갔죠. 그리고 고른 책이 『동물농장』(민음사, 1998)입니다. 고른 이유는 두 가지. 앞서 말한 얇은 두께와 권장도서목록에서 자주 본 것 같은 기억 때문입니다.


 평소라면 읽기 전에 어떤 책인지 찾아보기도 하고, 앞·뒤표지에 적힌 글도 읽어보고, 저자 소개 등도 빠트리지 않고 읽지만, 그때는 무작정 본문부터 읽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동물농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읽은 것이죠. 물론 소설을 다 읽은 뒤에 해설이라든가 저자 소개 등도 모두 읽었지만, 이와 상관없이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에 섬뜩했고, 특히 마지막 문장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인간은 대부분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유혹에 약하고, 무언가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소설 속의 나폴레옹처럼 커다란 권력이 손에 쥐어졌을 때 어느 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자신은 나폴레옹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삶이 고되고 힘들어 지쳤을 때, 혹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누가 눈앞의 희망을 의심할 수 있을까요? 의심보다는 소설 속의 복서처럼 눈앞의 희망을 믿고, 헛된 기대를 품고 묵묵히 따르는 게 쉽지 않을까요? 예컨대 매번 선거 때가 그랬던 것 같고, 몇 년 전 멘토 바람(?)이 불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독재자 나폴레옹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재자에게 지배당하는 복서가 될 수도 있고,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스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견제하고 부당함에 저항하고, 헛된 희망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힐 것으로 믿습니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역사는 쉽게 반복되니까요.



 옛날에 품었던 꿈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한 것은 없었다. 영국의 푸른 들판이 인간의 발에 밟히지 않을, 즉 메이저가 예언했던 ‘동물 공화국’은 여전히 추앙 받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모른다. 지금 살아 있는 동물들의 생애 동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향은 지금도 다가오고 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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