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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ㅣ 문학동네 시인선 61
임경섭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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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드라마인 <베드로의 장렬>을 모두 보았다.
사기꾼이었던 한 남자가 버스를 탈취한다. 그는 경찰에게 세 명의 '악인'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데리고 오길 바랐다. 그 요청이 들어지기도 전, 경찰이 버스에 연막탄을 던진다. 남자는 자살을 하고 말았다. 남자는 죽기 전 인질들에게, 위자료를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위자료를 받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스기무라는 그 남자에 대해 알고자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남자를 알면 알수록, 자신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위자료라고 받은 돈을 보고서는 욕망과 싸우기도 해야 했다. 그 돈이 온전히 제 몫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기를 해서 번 돈이라는 것을 알고는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다. 스기무라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아내만을 사랑했던 스기무라에게, 불륜은 크나큰 죄악이다.
그들은 모두 '베드로'였다.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남자 베드로.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란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베드로는 예수를 저버렸다. 위자료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가지지 않을 것인가. 사기로 번 돈을 가져도 되는 것인가. 인질이었던 자들은 모두 고민한다. 탐욕스럽게 탐을 내다가도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들 안에 어떤 감정이 피어난다. 그들은 떳떳해지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죄책감'이었음을 나는 깨닫는다.
나는 크나큰 착각을 했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하게 깨끗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베드로의 장렬>에서 스기무라는 다정하고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결고 '블륜'을 저지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베드로의 장렬>에서 스기무라는 마노라는 여인에게 흔들렸다. 그녀에게 유혹당했다. 마지막에 스기무라는 울었다. 아내와 딸에게 못할 짓을 한 자신을 자책하며. 그것은 슬프기도 했고 인간적이기도 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우는 그 남자가 그 순간만큼 인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죄책감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인간다워보일 수 없었다.
<휘날린>
휴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건
언제나 더럽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나의 유년은
쌓여 있는 시간들 사이에
숨은,
뽑으면 더러워지고 뽑지 않아도
더러워지는,
한없이 순서를 기다리거나 한순간 구겨져
사라질,
얇은 고백들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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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게 몸을 세우려고 해도 구부러진 몸뚱이가 있다. 그것을 보며 추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이다. 구부러진 몸이기에 저절로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잘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숙여지는 고개처럼,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천국은 하늘 위가 아니라, 바로 내 발 아래 있다고 믿고 싶다. 고개가 숙여지면 바로 보이는 바닥 너머에 존재하는 감정이 죄책감이 아니라, 상냥함이라고 믿고 싶다. 어느 누군가를 만나기 전엔 몰랐을 감정들이, 어느 누군가를 만나 폭발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까, 고개를 숙일 때 느껴지는 감정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정말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따스하다. 내가 나고 자라 만난 얼굴을 떠올리면 그렇다. 부모님에게도, 내 형제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는 하루에 몇 개의 잘못을 저지를까. 무의식이든, 의식적이든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깨끗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가 깨끗하길 바라는 마음은, 결코 모순적이질 않을 것이다. 나는 휴지를 들고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휴지를 들고 살아왔음을.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어진 휴지로 내가 만들어낸 잘못을 닦아내고 다시 잘못을 흘리고 다시 닦아내는 것이라고.
<죄책감>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따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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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온기를 전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을 늘 한다. 상냥하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떤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세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냥하길 바라면서 상냥해지질 않는다. 그것이 나의 죄책감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그것은 내가 내 안으로 들어서는 길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가야 할지 몰라 빙빙 돌다가, 결국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려간다는 것은 안으로 향한다는 의미다. 나의 잘못을 하나씩 되짚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러면서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 인간이었던 자가 다시 인간임을 깨닫는 시간. 그것은 고해성사를 하는 것과 같다. 어두운 성당에서 신부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하는 고해성사. 성호를 그으며 신을 찾다가 말아버리는 것.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간을 형성한다고 말이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성스럽다.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과 마주하여 새로 태어난다.
<탄성잔효>
구름을 새각할 때마다 들리는 음악이 있다
너를 녹음한 입자들이 잠들어 있는
기슭의 돌드을 모조리 던져넣는다 해도
이 시간은 범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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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바람이 불어오는 시작점은 어디인가. 바람이 사라지는 끝은 어디인가. 나무는 왜 푸른가. 나무의 뿌리는 왜 단단한가. 새들은 왜 하늘을 나는가. 어째서 인간은 그렇게 완전하지 않는가.
오늘은 하늘이 무척 파랬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있는 얼룩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눈이 시큰해서 고개를 돌려야 할 때까지 하늘만 오롯이 보았다. 하늘은 나의 잘못을 알아차린다. 고개가 숙여지고 내 아래 있는 어떤 감정을 들여다볼 즈음, 나는 다시 믿었다. 천국은 저 아래 있다고. 인간다운 감정은 저 아래 있는 것이라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가 나를 버리지 않는 것, 나에게 주어진 것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 피하지 말고 바라봐야 할 것들. 그런 것이었다.
마음 밑바닥에 숨겨둔 죄책감을 응시한다. 나의 정체성이 그곳에 있다. 나는 이제부터 다시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정체성>
한 공간의 이동이 정지한다
한 공간의 규모가 조각난다
충돌은 야간에 이루어지지
관측도 야간에 이루어진다
관측되지 않은 별은 별이 아니다
어떤 형편과 형편이 충돌하면
때론 거대함만이 살아남는다
아무도 위반한 적 없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았다
누구도 버린 적이 없어서
버림받지 않았다 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타살이 아니라 했다
정체성은 작아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다져지고 흩어져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