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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책>
이번에 고른 신간은 모두 다 좋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알려준 책들이 있는가 하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한 책도 있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 익숙했던 작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읽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제르미날>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기 전만 해도 굉장히 어렵게만 느껴졌다. 프랑스 자유주의 문학을 써왔던 에밀 졸라의 이름을 철학서에서 몇 번 보았던 탓이다. 그가 쓰는 글은 딱딱하거나 읽기 버거운 글이 아닐까 지레 겁을 먹었는데 <제르미날>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편견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제르미날>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술술 읽혔다. 제르미날이 보이는 프랑스 1800년대의 모습, 노동자들의 삶, 탄광의 묘사. 그 모든 것이 책 안에 담겨 있었다. 탄광의 사실적인 묘사와 노동자들의 고충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며, 그들의 처절한 생존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 깊숙이 와 닿았다. <제르미날>이 보여준 그들의 투쟁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투쟁이었다. 결코 이 글은 1800년대에 끝이 날 글이 아니다. <제르미날>의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이 자나라고 있었다'란 표현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문장일 것이다. 고전이 주는 힘이 어떤 것인지 <제르미날>을 통해 실감하게 되었다. 장엄하고 숭고하며,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자 파업을 보이는 글이 아니라 한 무리의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가슴이 떨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감정을 갖게 하는 글. 나는 에밀 졸라에게 반했고 <제르미날>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목도했다.
<제르미날>은, 부르주아와 노동자의 대립을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결국, 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드러낸 글이 아니었나 싶다. 대립해야 할 두 계층이 자연 앞에서 고꾸라졌을 때 하나로 뭉쳤던 장면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노동자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막상 그들이 위험에 처하자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던 부르주아의 용기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저 깊은 땅 속에서 리블렌을 두드리며 다시 싸울 수 있기를 희망하는 자들이.
나는 <제르미날>이 좋다. 위대하고 숭고하며, 장엄하기까지 한 이 작품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대로 좋은 책 베스트5>
1. 기 드 모파상의 <기 드 모파상>
프랑스의 당시 모습은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인간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다. 오싹한 것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고 사랑에 대한 글에서는 웃음과 함께 간질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우스꽝스러운 글도 있었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글, 신비스러운 글, 환상이 있는 글. 많은 단편을 보면서 기 드 모파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나에게 기 드 모파상은 공포소설을 잘 쓰는 작가였는데, 생각해보면 공포는 인간의 가장 취약한 면을 드러내는 장르니 당연히 기 드 모파상은 심리에 달관할 수밖에 없단 생각을 했다.
2.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5. 18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보았다. 민주주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임은 분명하나, 일부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는 운동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고자 했던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들이 피를 흘린 것은 그저, 올바른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한강 작가님은 그들의 죽음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 오랜 고민을 한 것이 틀림없다. 소년을 중심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의 삶을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어루만지고 있으니 말이다. 숭고하게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글,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 하진의 <자유로운 삶>
이민자의 삶을 잘 담았다. 중국의 텐안먼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 운동처럼,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다. 막상 이 작품을 떠올리면 <소년이 온다>와 <저지대>가 함께 떠오른다. 어떤 작품을 통해 어느 나라의 현대사를 떠올리는 것은, 그것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면 더 애틋해진다.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를 보아도 그렇다.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비단 이민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한 나라에서 나고 태어나 그 나라에서 죽을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4. 김중혁 작가님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유쾌할 수도 있는 분위기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처럼 쓰고 싶었다는 작가님의 고백을 떠올리면, 하드보일드한 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거칠고 투박한 느낌의 문장이 많았다. 딜리팅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뒤로 하고, 지우고 싶은 것을 지울 수 있는 삶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했다. 내 존재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말아야 할 삶이라니. 그렇기에 이 글은, 진지하고 무겁고 또 진실하다.
5.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의 세계관을 알게 된 작품이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중하고, 철학적이면서도 단순하다. 죽음에 대한 농담을 이렇게 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농담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는 것이고. 하지만 그런 농담 안에 숨겨진 진실은 어마어마하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때론 그것을 의미있게 관통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좋았고 밀란 쿤데라를 더 알고 싶게 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