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문학동네 청소년 27
유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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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를 읊조려본다. 시골과 변두리는 분명 다를 것이다. 변두리란, 그야말로 어느 중심에서 한껏 벗어나 가장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중심에서 비껴간 삶이 그렇듯, 변두리란 단어에서 나는 아픔과 슬픔을 보았다.


도살장이 모여 있는 황룡동에 사는 사람들은 내장과 선지가 익숙하기만 하다. 난 선짓국도 못 먹고 돼지 내장이나 소내장을 먹어본 일이 드물다.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황룡동에 사는 사람들은 도살장이 일어나면 눈에 보이듯, 그들이 먹는 선짓국이나 내장국은 익숙한 풍경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다 하더라도, 백정의 딸이나 부모님이 도살장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부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인가 보다. 주인공 수원이 선지통을 매일 사고 갈 때면 선지가 아니라 약수라고 거짓말을 하듯, 도살장이 있는 황동룡에서의 삶은 어느 정도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서려 있다.


그렇기에 수길은 그곳에서 떳떳하고 당찬 아이처럼 빛이 난다. 나중에 도살장의 초원을 지키는 카우보이가 되겠단 소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는 날까지 가장 아름다운 꿈으로 간직되어 있다. 어린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할 진실을 가리는 어른들의 세계란 어딘지 모르게, 도살장과 닮았다. 매일 돼지나 소의 멱을 따서 죽여야 하는 그 피 비린내 나는 곳에서 어른들은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살기 위해서 그들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린이들은 그저 순진무구하게 첫꽃을 따먹거나, 좀 더 희망찬 꿈을 꿀 수 있는 동심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에겐 도살장은 피 비린내가 나는 곳이 아니라 초원을 뛰어노는 소가 있는 그런 낙원 같은 곳이다. 그런 대립된 세상에서 도살장은 존재하고 있다. 그런 도살장이 있는 곳이야말로 삶의 변두리라고 생각한다.


수원은 정구가 수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변두리가 아닌 어느 중심에 서 있는 것.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껴가는 것이 아닌 관통하는 삶을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는 딸기밭도 많고 밤나무도 많다고 한 밤할머니의 말은 아득한 꿈결처럼 느껴진다. 아카시아 향이 가득한 수원에서의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더 꿈꾸고 싶고 더 바라게 되는 게 아닐까. 밤할머니가 옛시절을 잊지 못해 자기 친정인 수원을 그렇게 과장해서 말하는 것도, 찬란했던 그날을 그리워하거나 혹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찬란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도살장이라는 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거북하고 낯부끄러운 인상을 주지만 그곳을 묘사하면 묘사할수록 묘하게 안정감을 느낀다. 아, 우리는 모두 똑같은 곳에서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변두리라는 것은, 아무리 사전에서 어느 한 지점의 가장자리라고 설명해도, 그곳이 바로 중심이 될 수도 있다. 황룡동이 개발로 인해 아카시아 나무가 뽑힐 때, 그곳은 변두리가 아닌 어느 한 곳의 중심이 되어가는 과정에 서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삶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비록 지금은 수원과 수길이 황룡동이라는 변두리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정말 수원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정구와 정호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어도 되는 것이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희망차다가도 절망에 빠지고 절망에 빠지다가도 희망차다. 변두리란 그런 걸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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