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여름이다. 매미가 낭창낭창 우는 그런 여름. 이 여름에, 나는 무섭고도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끌린다. 그러나 이번 8월에 읽고 싶은 책은 공포도 아니고 미스터리도 아니다. 기대되는 책이 워낙 많아서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1.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

 

 

 

내가 읽은 스티븐 킹의 작품은 <유혹하는 글쓰기>가 전부다. 유명한 작품을 읽기는커녕, 읽으려고 하질 않았다. 언젠가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종말 문학 걸작선>이란 소설집에서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스티븐 킹이 말하는 종말은 외계인이 침략하거나, 좀비가 나타나거나, 것도 아니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종말은 인간이 스스로 멸망하는 것이었다.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인간이 폭력적으로 변해 서로를 멸망시키는 이야기. 그 단편을 읽고 나서 스티븐 킹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번 신작 소설은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선정되지 않더라도 훗날 읽을 계획이다. 어떤 작품일지 잘 모르겠지만 스티븐 킹이란 이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2.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쓰는 법이 적힌 책을 추천해주었다. 뭣도 모르고 구입했지만 아직 손은 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싶은 까닭은, 그의 작품 세계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뭣도 모르지만, 읽다 보면 저저롤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그렇기에 읽고 싶다고 여겼다.

 

 

3. 정지향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작가의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다.

 

 

낯선 곳을 홀로 헤매다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사랑은 그날에만 있다.'

미루어둔 감정은 영영 가라앉아버리거나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일그러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매일 열심히 써야 하는 것이었다.

 

_'수상 소감' 중에서

 

이런 소감을 읽고 나니 이 작품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정지향이 말하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성장'이란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어쩌면 믿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작가였다. 문장웹진에서 <준>이란 단편을 볼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젊은 작가지만 깊이가 남다른, 그런 느낌의 작가. 그래서 끌렸다.

4. 익명 작가들의 <익명 소설>

 

 

재미있는 기획이다. 익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그걸 모은 소설집이라니. 제목부터, 끌리는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검색하는 중, 어떤 작가가 썼는지 모른다는 그런 기획이 신선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어떤 작가가 썼을지 남 모르게 유추해 읽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골랐다. 독자로서의 재미는 작품을 그냥 읽는 게 아닐 것이다. 수수께끼 작가들을 모아두고 그게 누구인지 가늠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참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골랐다.

 

 

5.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겠다고 벼르고 있던 중에 이승우 작가님의 소설집 출간 소식을 들었다. 아니, 이건 꼭 읽어야해! 소설집은 단편들만 모아둔 게 아니라, 한 작가의 어떤 생각을 총체적으로 모아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단편이 좋아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이 작품집은 내게 이승우 작가와의 첫만남이기도 하면서 그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문학은, 그저 기대만 해도 좋은 것이다. 하. 하. 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국의 목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의 목가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질주하는 무질서의 삶 속으로

세대가 거듭하면서 빚어지는 인간의 역사.

 

 

스위드. 달콤하게 울리는 이 마법 같은 이름에는 어떤 역사가 있다. 찬란한 금발에 키가 190cm나 되는 잘생기고 멋진 청년은 어디에 가도 주목을 받았고 어디에 가도 사랑을 받았다. 그 완벽함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파괴적인 것. 파괴로 빚어지고 파괴로 망가지는 어떤 작은 것이 그의 안에 숨겨진 것도 모른 채 그는 살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인인 돈 드와이어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부유해졌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가졌다. 그들은 행복했고 행복해야만 했다.

 

행복해야만 했다.

 

 

그러나 레보브 가족에게 어떤 비극적인 일이 생긴다. 그 비극은 가히 그들에게는 이질적인 것이다. 어떤 파괴, 그간 숨겨져 있던, 존재하지도 몰랐던 어떤 파괴가 정면으로 그들에게 나타나기로 한 것이다. 메리는 말더듬이가 되었고 전쟁을 혐오했고 폭탄을 터트려 사람을 죽였다. 사람을 죽였다. 폭탄을 터트려서.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이 아닌 장밋빛이어야 했다. 그에게 가시밭길과 같은 황량하고 척박한 땅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향기로운 꽃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부인과 토끼처럼 귀여운 자식과 함께 죽을 때까지 순탄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리라 믿었다. 레보브 가문이 이룩한 것. 전쟁 전, 할어비지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레보브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유대인으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그는 미국적인 삶을 영위하리라 굳게 믿었다.

 

주커먼은 소설가다. 이 소설의 화자는, 스위드를 매력적이고 완벽한 남자로 묘사한다. 그런 스위드가 그를 '스킵'이라고 불러준 것을 영광으로 알고, 그가 편지를 보내 만나자고 했을  때 '당연히' 만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 번듯하고 멋지고 예의 바르고, 성공적인 삶을 가진 스위드에게 어떤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어둠, 있어서는 안 되었던 감정들. 불안이라 불리고 절망이라 불리고 파괴적인 것이라 불리는 그 모든 감정들. 주커먼은 스위드의 삶을 고민하고 고민하여, 스위드의 인생으로 스며들어갔다.

 

반짝반짝 빛이 나던 빛들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어떤 인생이 있다. 스위드의 삶이 그러했다. 그는 빛을 둘러싸고 태어나 빛에 둘러싸인 채 자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메리의 존재, 메리의 폭탄, 메리가 죽인 사람. 메리의 분노와 파괴적인 것. 그것이 스위드를 날려버렸다. 그때 터트린 폭탄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스위드의 인생마저 떠들썩하게 해버렸다. 한 번의 폭발이 스위드의 인생을 뿌리채 흔들어댔다. 그는 생각한다. 어째서 메리는 전쟁을 혐오하게 되었으며 어째서 메리는 폭탄을 터트리게 되었는가. 왜 그래야만 했는가. 그 아이는 왜 그랬는가.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는가.

 

메리와 스위드는 서로 반대의 길을 가는 존재다. 스위드가 언제나 활달하면서도 매너 있고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있다면 메리는 음침하고 분노하고 추한 존재로 남아있다. 메리는 아버지만큼 큰 키에 뚱뚱한 존재로 자랐다. 그리고 폭탄을 터트려 사람을 죽였다. 스위드는 심지어 메리가 그리 된 것에 대해, 말더듬증을 비롯하여 어릴 때 키스를 해줘서 그렇다고 믿어버리게 되었다. 이 말도 안되는 사정이 사실은 말이 되는 사정이 되었으며 메리의 그런 정당화되지 않을 행동을 설명하게 했다.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의 몰락을 다루고 있지만, 미국 폭동과 베트남 전쟁, 그 당시 일어났던 사회전반에 걸친 현상을 생각하면 미국의 어떤 현상을 몰락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겼다. 인종차별에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난 폭동, 베트남과 전쟁을 하면서 일어나던 무력시위. 급변하는 시대에 휩쓸린 사람들의 그런 무질서함이 스위드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번도 그런 무질서함을 느껴본 적이 없던 스위드였기에 메리의 행동은 그를 파괴시켰다. 메리가 결국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스위드가 원인이었기에 결국 그는 고꾸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꿈꾸었던 삶, 결코 존재하지 말아야 할 어둠 앞에서 그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그 아름다운 모습들은 그가 사랑을 받으려고 쳐둔 방어벽에 지나지 않았고 메리의 행동이 그의 방어벽을 조금씩 무너뜨려 그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게끔 하였다.

 

사람들은 결국 어떤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 스위드뿐 아니라 나도, 너도, 그리고 그들도. 그들이 갖고 있는 가면이란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때론 무심하게 넘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스위드는 그저 타인에게 깊이 들어가지 않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 자신을 제대로 짚어보지 않았기에 남들에게 언제나 만들어진 인물처럼 느껴지게끔 했다. 흠 하나 없는 완벽함을 연기함으로써 메리를 폭발하게 만들었고 메리가 떠나가게끔 했다. 리타 코언이 그를 괴롭혀 왔던 것은 단순히 그가 부르주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어떤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그를 직접 찾아와 모욕감을 주고, 다리를 벌려 섹스를 하도록 강요한 것도 그 안에 숨겨진 어떤 충동적인 내면을 드러나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메리를 사흘 동안 숨겨주었던 실라에게 그 폭력적인 것을 드러냈고 동시에 무너져내렸다.

 

스위드는 오컷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아하려고 하지만, 돈의 그런 비웃음을 들으면서 그에게 편견을 가지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오컷을 의식하여 오컷에게서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돈과 오컷이 바람이 났다는 것을 떠나, 스위드도 결국은 혼돈 안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조화에서 혼돈으로, 결국 인생이란 그렇게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같은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스위드가 믿고 있던 그 모든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녹록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메리의 폭탄은, 미국을 날려버렸을 뿐 아니라 스위드란 사람도 폭발시켰다. 그가 쳐둔 바리케이드를 모두 벗겨 그를 무방비 상태의, 가장 순수하고 여린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아름다운 아버지, 강한 아버지,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도 미움을 받을 수 있고 그에게도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을 폭로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이 글이 신비롭다고 느끼게 된 것은 주커먼의 상상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떤 사실적인 것을 밝혀내지도 못한 채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동창모임에서 주커먼은 스위드를 생각하다가, 스위드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스위드의 인생을 모두 재조명하게 되었다. 스위드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아니고, 제리가 말을 해준 것도 아닌데 어찌 그는 그것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또한 어떤 환상을 설명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지. 스위드가 꿈꾼 것이 모두 환상이었듯, 스위드의 이야기 또한 어떤 환상이 아니었는지.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가는 여정을 좇다 보면 이 글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된다.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 심지어 소름마저 끼치는 결말에서 이 글이 보이려고 한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미국적인 것을 좇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스위드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의 인생을 다루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 질서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무방비 상태로 무질서로 뛰어든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무질서에서 살아남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메리야말로 그 혼돈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벌써 7월이다. 한해의 반이 지났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 알라딘신간평가단도 벌써 네 달째다. 네 번째 신간도서를 선정하면서, 반이 지났다고 하니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낀다. 6월 신간중에서는 유난히 보고 싶은 책이 적었다. 그래서 고르기가 조금 버거웠다. 그래도, 유난히 눈길이 가는 소설이 있어서 그걸 적어보고자 한다.

 

1. 성석제 작가님의 <투명인간>

 

 

 

 

성석제 작가님의 글은 아직 접한 적이 없다. 이름은 익히 들어왔건만 아직 읽질 못했다. 이번 기회에 읽었으면 싶어서 적었다. 성석제 작가가 보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고 할까나.

 

 

2. 제더다이어 베리의 <탐정 매뉴얼>

 

 

 

 

표지부터 끌리지 않나?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독특하단 생각을 했다. 제목에 대해서도 탐정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줄 것 같다. 엘릭시르 신간은 언제나 재미있고 기대가 가지만 이번 책은 유독, 더 끌린다. 표지 탓인 듯하다. 표지가 내용을 잘 표현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과연 어떤 미스터리를 선사해줄지.

 

 

3. 전경린 작가님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 지인이 전경린 작가님의 팬이란다. 나는 전경린 작가님의 책은 <황진이>가 유일한 것 같다. 역사 소설을 읽고 싶어 찾아본 책이었다. 이번 소설집은 트위터에 올라온 구절을 보니, 읽고 싶어졌다.

 

 

4. 기 드 모파상의 ​<기 드 모파상>

 

 

 

 

805페이지나 된다. 이 책을 보니 <우울과 몽상>이 떠오른다.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이 수록된 책이었다. 기 드 모파상의 단편이 모두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이 수록했다는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니, 정말 많이 수록했다 싶다. 805페이지.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그래도 읽고 싶다.

 

 

5.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 책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를 정의하는 ​다른 작품을 접하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년이 온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엔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페이지)

 그날이 오면,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80년 5월을 떠올리면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강렬하게 쏟아져오는 햇살이 두려워 참을 수 없어집니다. 꿈속에서 저는 몇 번이나 도망을 칩니다. 도망치지 말자, 도망치지 말자 되뇌어도 제 두 다리는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로 돌아가게 되면 맞서 싸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느 작가가 그날의 현장을 담은 기록을 적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바로 그 책을 구입했지만 막상 책을 펼칠 수는 없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펼쳐질까봐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그 작가에 대한 인터뷰나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열 살 즈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이사를 했을 때가 광주민주화운동 직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외가친척은 물론 여러 친척들과, 주위 지인으로부터 그날의 참상을 들었다고 기사에서 읽었습니다. 그날부터 작가에게는 1980년의 5월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뇌리엔 왜 자신의 주변인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의문이 떠올랐고, 피할 수 없던 것처럼 소설로 적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작가가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사를 했던 것이 참상을 피하게 한 운명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참 많이 일어나지요. 그때 태어나지 않았던 제가 1980년 5월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도저히 그때를 상상할 수 없겠지요. 그날의 기록을 읽는다고 해도, 혹여 영상이 남아 있어 그것을 본다고 해도 결코 저는 그때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째서 사람은 그리 잔인해질 수 있는가, 왜 그들은 싸워야만 했고 왜 그들은 그렇게 시들어가야만 했는가, 그런 질문들을 제가 던지는 것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날의 일을 본다고 해도 그날의 시간은 저를 비켜갈 것입니다. 제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저는 한 걸음 멀어진 채 그날의 시간에서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저는, 그 책을 펼쳤습니다. 작가가 "피할 수 없었던" 일을 적었듯, 저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그날의 기록을 읽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에 하나씩 무언가 덧씌어졌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 상상이 현실로 빚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시민들은 총을 들고 군인들은 시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총을 쏘아댑니다. 그들에게 총을 쓰는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총을 든 이유는 단순한 사냥처럼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왜 싸워야만 했을까요? 어째서 그들은 싸워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가 책에 적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민주화운동이라고 역사에서는 말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만 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싸웠는데 그들은 포기해야만 했는지, 괴로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를 이어나가야 했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해야 하는지, 권리를 주장하면 왜 무참히 총을 쏘아대는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 하나였을 텐데, 왜 군인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죽인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은 그날, 무수히 많은 꿈을 쏘아버렸습니다. 

 
동호는, 제가 책에서 만난 동호는, 어떤 작은 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수히 많이 죽어가면서 그 아이는 나라에 대해 고민을 했더군요. 왜 시신을 태극기에 싸서 묻느냐. 그는 은숙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은 평생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무수히 죽고 무수히 잡혀가고 잡혀간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고문을 받고서 살아남았습니다. 누군가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과거로부터 도망을 쳤습니다. 누군가는 아들을 잊지 못해 늘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만약 사람이 죽은 후에, 정말 그 사람의 혼이 그 주위에 있다면 육체가 타기 전까지 육체에 매달려 있다면 그들은 육체가 타기 전까지 살아있는 생명일 것입니다. 열십자로 포개어지는 단순한 시체가 아니라, 아직은 떠나지 못한 고결한 영혼이라고. 그것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결국엔 부서진 꿈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그들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그들이 그렇게 일어선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꿈을 꾸지 말라는 의무를 부여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동호는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정대가 바로 눈앞에 죽었단 이유로 죄책감이 시달릴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던 것일까요? 왜 그는, 그날 총을 들어야만 했을까요?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선택에 아니라, 반사적으로 해야만 했을 뿐이라고. 나는 동호를 떠올렸습니다. 수많은 중학생과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떠올렸습니다. 그 젊은 피가 거리에 흩뿌려졌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나요? 

 
2014년 4월 16일, 수많은 영혼이 하늘로 떠나갔습니다. 1980년 5월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1980년 5월은 가만히 있지 못한 이유로 죽음을 당했지만 2014년 4월은 가만히 있었단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란 말이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배 안에 있던 수많은 영혼들도, 배 밖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결국 배는 가라앉았고 가라앉는 동안 찍힌 동영상이 유렁처럼 배회했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았습니다.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한 그 어린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그날의 사고가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1980년 5월의 일은 아직 잊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국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자가 더 많습니다. 비겁한 자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저도 비겁합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끝없이 그날의 일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그날의 일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게 그날은, 멀고 먼 날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의 모든 파도가 제게 오는 게 아닌, 저를 피해 나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심장이 깨지고 싶습니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수첩 박람강기 프로젝트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검은 안개>라는 책이 있다. 모비딕에서 출간한 책으로 마쓰모토 세이초가 일본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을 조사하여 기록을 한 논픽션 형태의 에세이다. 이 책을 완독하진 않았지만 조금 읽었을 때에는 무척 흥미로웠다. 형사들의 기록과 함께 법의학적인 접근도 함께 수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론이 들어가 있었다. 탐정이 어떤 사건을 꿰뚫듯, 마쓰모토 세이초 나름대로 찾아낸 진실의 조각이 수록된 책이었다. <일본의 검은 안개>의 축소판이라고 해야 할지, 그의 작품론이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검은 수첩>은 마쓰모초 세이초의 작품과 더불어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논픽션의 에세이다. 

 

재미있는 구성이 있다. 추리소설이 대중화된 것에서부터 출발한 이 이야기 중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메모가 수록되어 있다. 날짜와 연도별로 짤막하게 적혀 있지만 그의 메모습관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혹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볼 수 있어서, 왜 일본에서 마쓰모초 세이초의 작품이 매년 드라마화되고 추리소설계로부터 우상화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책보단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작년에 방영된 <얼굴>이란 드라마가 충격적이어서, 원작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성별이 바뀌었다. 원작은 남자가 주인공이고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서로 뒤바뀐 성별이었지만 마지막에 보여지는 결말은 여전히 짜릿했다. 오히려 성별을 바꾸어 각본했기에 원작과 드라마 모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다지 기복이 크게 바뀌지 않는 잔잔한 배경의 드라마였지만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주인공의 심리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버렸던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보이는 범인은, 어떤 고뇌가 있었다. 그가 왜 사람을 죽여야만 했는지, 사람을 죽인 죗값을 왜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마쓰모토 세이초는 한 인간을 통해 어떤 세계를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는 <모래 그릇>과 <검은 복음>, <3억엔 사건>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드라마로 그의 작품을 접했지만 <얼굴>이란 드라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가 원작을 크게 각본했을 것 같지는 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2013년도에는 일본에서 미해결사건으로 남은 '3억엔 사건'에 대해 재조명한 드라마가 유독 많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나마 사실에 근접했고 가장 그럴싸한 추론을 보인 것만 같았다. 그가 대하는 작품의 방식은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어느 것 하나도 그저 흘러보내지 않는 섬세함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믿고 봐도 되겠다 여겼다.

 

바로 그런 때에, 북스피어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세계를 담은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자교정을 모집한다기에 잽싸게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출판사까지 찾아가 날것 그대로의 원고와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이 책에는 <일본의 검은 안개>에 수록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런 기록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 범죄학의 대가인 표창원 교수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 함께 떠올랐는데, 내 안에 숨어 있던 범죄에 대한 흥미를 일깨웠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형사의 자취를 쫓아가듯, 사건을 찾아내고 기록했던 글들은 그가 사회에 숨겨진 이면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작품이 허구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의 검은 안개>와 <검은 수첩>을 보니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조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제 있었던 사실을 적었기에 그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읽고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런 '현실감'이었다. 언제 현실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범죄와 범죄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런 것은 지금 현실에서도 보여주고 있었기에 결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작년에 있었던 용인살인사건도 <모방범>을 읽고난 후 접하게 된 사건이라 무시무시하다고 느꼈다.

 

미스터리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유희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워준 건, 바로 이 사회파 미스터리다. 탐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회를 꼬집는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스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봐야할 미스터리는 바로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홈즈나 뒤팽과 같은 멋진 탐정이 있는 미스터리도 좋지만, 가끔은 경각심을 일깨워줄 사회파 미스터리도 찾아 읽어야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검은 안개>를 완독해야겠지. <검은 수첩>도 다시 재독해야겠다. 

 

한 번 더, 사회를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