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들의 추억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으며, 어린 시절에 디프테리아가 돌았거나 엄청난 폭풍을 겪은 걸 가지고 우쭐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러한 경험이 자신들의 업적이나 되는 듯이.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 P18

모든 직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고, 다른 소재와 다른 의식(儀式)을 가지고 있었다.  - P27

슬픔과 외로움 때문에 나는 목재 더미 사이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이가 참 대견하군요.」
 이웃 사람들이 칭찬을 할 때면 아버지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뭐가 될는지 두고 봐야죠.」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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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소설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배경지식도 없이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고 투명하고 예쁠 것 같은 제목에 끌려 책을 펼쳤다.
읽을 수록 자꾸만 멀어지는... 한없이 탁한.
탁하기 그지없는 우울한 blue에 가슴은 답답하고 오심이 스멀스멀 일어나고 어지럽다.


1976년 <군조> 신인상과 아쿠타가와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유를 모르고 덤볐다가 쨍하고 깨졌다.




요즘은 창 너머 혼자서 경치를 봐 자주 봐, 비라든지 새라든지, 그냥 길을 걸어가는 사람 같은 거. 가만히 보고 있어도 재미있어, 세상을 보겠다는건 바로 이런 뜻이야, 요즘 무슨 영문인지 풍경이 너무 신선해 보여. "
"그런 노땅 같은 말은 하지 마, 류, 풍경이 신선해 보인다는 건 노화현상이야." - P147

그림자처럼 비치는 도시는 그 능선에서 미묘한 기복을 그린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나는 일어서서 내 방으로 걸어가며 이 유리처럼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 하얀 기복을 비쳐내고 싶었다. 나에게 비친 하얀 기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새를 기다렸다.
새가 날아 내리고 따스한 햇살이 여기까지 비치면 길게 뻗은내 그림자가 회색 새와 파인애플을 감쌀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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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숨을 들이쉬어도 공기는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도 입이나 코가 아니라 가슴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그곳으로스며드는 듯한 느낌이다. 



관자놀이에서 혈관이 무슨 생각이라도 떠올랐다는 듯 팔딱팔딱 떨어댄다.  - P23

눈앞으로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안개가 흘러가고 머리가 무겁고 멍해졌다. 손발을 천천히 움직이자 관절에 기름칠을 한 듯, 미끌미끌한 기름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를 잊어간다. 몸에서 온갖 것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내가 인형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방은 달콤한 공기로 가득 차고 연기가 폐를 마구 긁는다.
내가 인형이라는 감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놈들 생각대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최고로 행복한 노예다. - P79

썩어버린 시체에서 피어나는 발진처럼, 불어나는 암세포의 혈장처럼 꽃이 피었다. 하얀 천처럼 흔들리는 벽을 배경으로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바람에 날려 오르기도 하면서. - P100

비가 피부를 찌른다. 냉동고에 매달린 채 얼어붙어 껍질이 다벗겨진 내 살에 철봉이 관통하듯이 비가 피부를 찌른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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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의
물과 비스켓에게 한 최대의, 최고의 찬사!
이 보다 맛있을 수 없다!!!


[ 맙소사, 그 누가 생각이나했을까?  꿈에도 몰랐다.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노르웨이 먹거리는  세계 최고였다! 비스킷은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풍미가 진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고, 이로 물면 와삭와삭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침과  섞여서 걸쭉해지면서 혀와 입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삼키면  뱃속에서는 딱 한 가지 말만 터져 나왔다. 할렐루야! ]




내 기분이 어땠을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겠지만,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탐욕스런 목구멍으로 순수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수정 같은 물이 흘러들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건 촉촉한 생명력이었다. 그 생명수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신 후에도, 깡통에 난구멍에 남아 있는 물기를 빨았다.
"아아아아!!!!" - P181

평생 그보다 더 기분이 좋은 적이 없었다. 눈썹을 쓰다듬을 때의 기분이란! 신선하고 깨끗한 땀이 솟아 이마가 촉촉했다. 내 안의 모든것이, 피부의 땀방울까지 환희를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곧 행복감에 휩싸였다. 입은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목구멍 뒤쪽의 아픔은 잊었다. 피부가 부드러워졌다. 관절은 훨씬 유연해졌다.
심장은 즐거운 북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고, 피는 결혼 축하연을 마치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핏줄 안에서 신나게 돌았다. 근육에는 다시 힘과 유연성이 생겼다. 머리는 점점 맑아졌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찬란했다. 정말이지 찬란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술에 취하면 수치스럽지만, 물에 취하는 것은 숭고하고 황홀하다. 나는 몇분간 더 없는 기쁨과 충만감에 사로잡혔다. - P182

무지는 최악의 의사인 반면, 휴식과 잠은 최고의 간호사다. - P210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아쉽게도 구멍보트에는 성서가 없었다. - P258

여러 가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바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귀에 속삭였다. 바다는 호주머니에 든 동전처럼 쨍그랑댔다. 바다는 산사태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포로 나무를 문지르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람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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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란 말은 얼마나 맞는 말인가.] p177

Nil magnum nisi bonum. 
선함이 없으면 위대함도 없다. - P118

나는 여행에 대비해서 세계지도를 사왔다. 지도를 선실의 코르크판에 붙여놓았다. 아침마다 통제실에 가서 현재 위치를 알아와서는 지도에 오렌지색 펜으로 표시했다. 우리는 마드라스에서 출발해 벵골만을 지나 말라카 해협을 내려가서, 싱가포르를 빙 돌아 마닐라로올라갔다. 매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배에 타고 있다는 데 전율이 일었다.  - P132

.… 그게 문제였을까? 모르겠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답은 수천 길 물속에 신비로이 가라앉아 있으므로,
마닐라를 떠나 태평양으로 접어들었다. 나흘째 되던 날, 미드웨이제도로 가던 중, 우리는 가라앉았다. 내 지도에 뚫린 압정 구멍 속으로 배가 사라져버렸다. - P133

호랑이는 오감 중 주로 시각에 의존한다.
시력이 워낙 좋고,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 특히 뛰어나다. 청력도 좋다. 후각은 보통, 물론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보통이라는 뜻이다. - P141

사실 뭐든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하이에나의 취향은 감탄스러울지경이다. 하이에나는 소변을 보면 그 오줌을 마신다. 오줌을 다른 용도로도 사용한다. 날씨가 덥고 건조할 때면, 방광에 찬 소변을 따바닥에 뿌리고 젖은 진흙을 발로 긁어대며 몸을 식힌다. 하이에나는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좋아하며 먹는다. 하이에나가 먹지 않는 게 될까라는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그들은 같은 종족이 죽으면, 혐오감이 가시기를 하루쯤 기다렸다가 그 시체도(귀와 코는 애피타이저로 물어뜯고, 그 나머지를) 먹는다. 심지어 자동차에도 달려든다―전조등, 배기관, 사이드미러 할 것 없이. 하이에나가 먹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액 분비가 안 돼서가 아니라 씹는 힘 때문이다. 하이에나는 가공할 턱의 힘을 가졌다. - P152

보라. 십자가의 예수는 질식해서 죽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불평한 것은 갈증이 아니었던가.
갈증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신까지 불평하게 만들 만큼 힘든 것이라면, 보통 인간은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를.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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