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부모는 이 기술을 통해 자신의 자녀들이 우수한 형질을 갖고 태어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부모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출생, 혹은 생물학적 차별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기술을 시행할 것인지 아니면 금지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시점은 바로 오늘이다. 누군가가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그 일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아니오, 그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시점이 될 것이다.” - <2018~2028 핫이슈 빅트렌드, 트렌즈지 특별취재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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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19세기와 20세기에는 기술이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근대 초기에는 기술의 중요성에 한계가 있었다.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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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지어 그때도 유럽은 아시아 강대국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유럽이 어찌어찌 미 대륙을 정복하고 바다의 패권을 획득한 것은 주로 아시아의 강대국들이 그런 지역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덕분이었다. 근대 초기는 지중해의 오토만 제국, 페르시아의 사파위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과 청 왕조의 황금시대였다. 이 제국들은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인구와 경제가 전대미문으로 성장했다. 1775년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만으로도 세계 총생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유럽은 경제적 난쟁이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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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의 배는 군대의 보호를 받은 과학탐사대였을까, 아니면 소수의 과학자가 따라붙은 군사원정대였을까? 이것은 연료통이 반쯤 찼는지 반쯤 비었는지를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 다에 해당한다. 과학혁명과 현대 제국주의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제임스 쿡 선장과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 같은 사람들은 과학과 제국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불운한 트루가니니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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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The New Instrument》 이라는 과학 선언문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1백 퍼센트 정확한 이론은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결과, 진리인가의 여부는 지식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검사법으로서는 부족한 것이 되었다. 진정한 시금석은 유용성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이론이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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