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두 번째 날이다. 오늘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유, 초, 중학교가 함께 있는 종합학교를 방문했다. 

어제 갔던 학교와는 달리 분위기가 매우 개방적이었다. 특별히 사진에 대한 제지가 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나와 학교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셔서 학교 시설과 환경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처음 갔을 때 본 것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이다. 어제 간 학교와 달리 이 곳에는 흙 바닥인 놀이터가 있었다. 물론 넓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다투지 않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또 안전을 위해 교사들이 나와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따로 안전요원이 아니라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한다. 영어가 짧아서 다른 선생님들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좀 과격하게 노는 우리 아이들에게 중간놀이 시간을 주면 어떻게 될까 고민스럽긴 하지만 매우 보기 즐거운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사진 찍는데 거부감이 없어 어떤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서 환대해주셨다. 교장선생님은 상당히 쿨한 이미지였다. 학교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셨는데 협의회 때도 나온 이야기지만 정말 감탄했다. 재봉틀이 있는 공예실에 사진인화기가 있는 미술실, 각종 장비가 있는 기술실, 요즘 아이들의 트랜드에 맞춰 전자 기타 등이 구비된 음악실 등, 한국에서는 간신히 한두 실 있을까말까한 시설들이 학교에 존재했다. 이런 시설들은 과거 여도초등학교 방문할 때를 제외하고 공립학교에서는 찾아보기 불가능한 것들이다.

학교의 전반적인 디자인도 참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중앙현관에서 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마치 파티장 계단 같았고 식당은 한국의 식생활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었다. 마치 대기업 식당 같았다. 

수업도 참관했는데 부진아지도 교실, 4학년 교실, 코딩 교실 등을 보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반쪽짜리 참관이긴 했지만 주워들은 설명 만으로도 제법 배우고 느낀 점이 없진 않다. 

4학년 수업은 과제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보면 교실 복도에서도 여자 학생 2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유로운 핀란드 교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한국 학생들에게 이런 허용이 당장 가능한지는 의문이 든다. 핀란드 아이들이 내성적이서 그런지는 몰라도 복도에서 큰소리 내는 학생들도 없었고 뛰는 학생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허용에도 다른 반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상당수가 복도에서 뛰고 고함을 지른다. 교사는 참더라도 다른 학급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허용적이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 이 문제는 한국인의 특성,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 옆 반은 부진학생, 즉 배움이 더딘 학생을 위한 교실이다. 처음에는 그곳이 4학년 교실인지 알았다. 교사가 학습지와 컴퓨터,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대답을 정리하여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교사는 다른 교사들보다 1년인가 1년 반 정도 더 공부를 한 분이라고 한다. 석사와 박사의 중간 과정을 수료했다고 보면 된다. 내용은 더 쉽지만 더 많은 공부를 한 셈이다. 교사는 지식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부진아 지도를 대충 비정규직에 맡길 수 밖에 없는 한국 현실과 비교하면 매년 퍼붓는 부진아 지도 예산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특이했던 것이 화장실이 1인실이라는 사실이다.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학교폭력 문제 때문에 이렇게 디자이 되었다고 한다. 보통 학교폭력이나 왕따는 교사의 눈이 보기 어려운 곳에서 이루어지고 그런 최적의 장소 중 하나가 화장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핀란드 인들의 섬세함을 잘 알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건 하나의 방편일 뿐 본질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질문 시간도 있었는데 대다수가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한 것들이었다. 다만 핀란드 학교의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답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핀란드는 10년마다 교육 시스템이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 역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한다. 바로 그런 변화의 흐름에 어떻게 맞춰나갈지가 교장 선생님의 고민이라고 한다. 

한국의 고민하고도 어느정도 일치하는 측면이 있지만 보통 그런 고민들을 우리나라는 교육운동가나 교육 NGO들이 한다. 그런 질문에 한국 교장 선생님들은 뭐라 답할까? 어떤 대답이든 이런 거시적인 관점의 대답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나라는 그만큼 학교에 자율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율성이 없는 학교의 장이 하는 고민의 범위가 얼마나 넓겠는가? 기껏해야 사회적 관심이나 국가적 요구, 학부모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 정도가 고민일 것이다. 나는 방문학교 교장선생님의 대답을 들으면서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자율적인 풍토가 매우 부러웠다. 

핀란드에서의 학교방문은 여기서 마우리 된다. 지금 배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는 학교방문이 어려운 모양인데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여튼 시설도 시설이지만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와 존경, 그에 따른 자율권이 정말 인상적이다. 저신뢰사회인 한국에서 이런 신뢰를 어떻게 구축할지가 고민의 지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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