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 켈트 영성 이야기
필립 뉴엘 지음, 정미현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모처럼 기독교 관련 책을 읽었다. 그동안 읽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책 내용이 워낙 감명깊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이 책은 기독교에서도 비주류인 켈트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닮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통교회에서 우리가 배웠던 교리와 상반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물론 더 높은 관점에서 통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저자 역시 이를 희망하긴 하나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비롯한 원죄 신학과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죄성에 초점을 맞추어 원죄론을 설파했다면 켈트 신학은 인간의 죄성이 아니라 인간의 선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현대 신학자 중 하나인 메튜 폭스가 주창하는 '원복'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펠라기우스를 필두로 한 켈트 영성이 마치 불교처럼 인간의 자력갱생을 통한 구원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이 점은 펠라기우스가 오해받은 측면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선함 역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인간은 아무리 악에 가려져도 그 본질적인 부분에 한줄기 빛, 그러니까 신의 창조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자력갱생이라는 것조차 신의 선물인 것이다. 메튜 폭스의 경우 이를 '원복'이라 부르고 있다.

 

  반면 로마교회를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죄성에 주목하여 그들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아마 그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참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를 비롯한 기독교 주류 교리는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불순종에 의하여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원죄'론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 저자는 펠라기우스를 비롯한 켈트 신학의 근본을 성 요한에게, 아우구스티누스를 필두로 한 로마 신학의 근본을 성 베드로에게 두고 있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주장이라 꽤 흥미로왔는데 요한복음과 마태복음의 구절을 절묘하게 대비시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확실히 두 복음서는 성격이 다르긴 하다. 좀 충격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이 이야기는 신중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주류 기독교의 원죄론, 즉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양날의 칼과 같다.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어째서 비기독교인들이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는 기독교 주류 신학에서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이 일어나는 현상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고 하든지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난제에 대한 여러가지 대답이 이미 나오긴 했다. 내가 신학자가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나름 설득력있는 주장들을 본 기억이 난다. 은총을 자연은총, 계시은총으로 나눈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는 글을 어디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좀 불만족스럽긴 했다.

 

  이 두 신학의 대립을 보면 유학에서 유명한 맹자와 순자의 대립이 떠오른다. 물론 기독교와는 다르게 유학에서는 맹자가 도통을 계승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 뭐랄까,, 아이러니 하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인 걸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 또한 새로운 관점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리 타락했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최고의 피조물이라는 인간에게 선성이 완전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사라졌다면 인간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아예 새로 만들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비록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였지만 그를 없애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지는 않았다. 인간에겐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물론 위대한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간이 선을 행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마 이상으로 악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그의 원죄론 역시 새롭게 볼 필요가 있긴 하지만 의미가 깊다.

 

  하나님을 인간과 완전 분리된 초월적이과 외재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인간이 다시 신 앞으로 돌아가기를 바란 신학자다. 하나님의 손길이 어떤 맥락에서 개입되냐로 이단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큰 차이일까 싶다.

 

  저자는 켈트 신학을 자연의 신학이라 불렀다. 하나님이 만들고 스스로 보기 좋았다 말씀하신 이 세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을 또 하나의 성서라고 주장한 프랜시스 콜린스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낼 수 있다. 세상은 타락하고 성경만 존귀하다는 생각은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아마 한국 주류 교회에서는 결코 인정될 수 없는 아마 이단 취급을 받을 책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의 모순을 극복하고 리처드 도킨스로 대변되는 현대 무신론의 도전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책이 필요하다. 기독교 비주류로서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해온 켈트 신학과 그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저자와 역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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