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살아있는 교육 13
윤태규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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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초등학생이던 시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리고 검사를 맡은 후 다시 가져갔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몰랐다. 그저 선생님이 시키셔서 혼나지 않기 위해서 일기를 썼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기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일기에 대한 어떤 특별한 기억도 없으며 그 당시 썼던 일기장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일기장 노트를 다 썼을 때마다 버렸을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특별히 일기를 쓰라고 하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학교와 우리 학교에서도 대다수의 학급은 일기 숙제를 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상당수의 선생님들께서 일기를 꼼꼼하게 검사하시는 것 같다. 때로는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그 많은 학생의 일기장을 검사하시는 선생님들의 노력에 감탄하기도 한다.

일기를 꼭 써야만 할까? 일기는 따지고 보면 개인 기록이다. 원론적으로 개인 기록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읽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물론 교사는 교육적인 의미에서 이를 행하니 만큼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읽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학생인권문제가 대두되면서 일기검사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학생들은 일기는 과거의 나처럼 강제로 쓴다. 일기를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쓰지 않으면 남아서 쓰고 가얀다던가 혼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아이들의 인권을 부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권이다. 때문에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필요가 있다. 만약 강제성이 있더라도 일기를 쓰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일기를 쓰는 게 교육적이지 않고 크게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일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기 지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읽은 윤태규 선생님께서 지으신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일기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이 너무 단편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일기 쓰기가 교육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아이들이 일기를 잘 쓰든 못 쓰든 오랜 기간 써도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고 밑에 도움말을 써도 읽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여학생의 경우 어머니가 꼬박꼬박 답글을 달아주면서 꾸준히 일기를 쓰긴 했지만 이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로 이 경우는 도리어 일기 지도 문제는 가정에 달린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일기 검사는 인권의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더 시큰둥했었다. 어떤 개인에게 자기 기록을 쓰라고 강제하는 것도 문제고 이를 내가 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내가 보는 줄 뻔히 아는데 누가 솔직히 일기를 쓰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솔직히 쓰지 않으면 그건 일기가 아니다. 그럴 바에야 따로 글쓰기 지도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은 너무 단순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기에 대한 어떠한 교육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기에 대해 회의적 입장만 유지했을 뿐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고 일기를 보고 밑에 답 글 달아주는 것이 일기 지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고 일기는 언어지도나 글쓰기 지도가 아니라 삶을 가꾸는 아주 좋은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책에는 일기지도에 대한 다양한 방법과 사례가 실려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상식과 전혀 다른 내용도 있었다. 보통 저학년은 그림일기를 쓰게 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언어능력이 부족함으로 그림으로 보충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역시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때문에 1학년도 그림일기보다는 처음부터 글로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반 상식적인 내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저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림일기를 써야 한다면 아이들이 말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적은 단어로도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고 적은 단어로도 일기를 쓸 수 있다. 그동안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생각해왔던 상식은 고정관념이고 글은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일깃감 고르는 3가지 잣대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고 꼭꼭 숨겨두고 싶은 이야기도 좋은 일깃감이 된다는 이야기도 놀라웠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가 좋은 글감이 되긴 하지만 교사가 매일 보는 일기에 쓸 수 있다는 상상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보통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물론 저자가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그 조건은 교사와 학생간의 깊은 믿음이다. 그러한 깊은 믿음 하에서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상한 이야기도 일기로 쓸 수 있고 자신의 약점이나 숨기고 싶은 비밀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모든 지면에서 강조하는 것은 일기는 국어공부나 글쓰기 공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기는 삶을 가꾸는 것이다. 때문에 교사는 일기를 지도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되며 아이들이 일기 쓰는 일을 즐겁게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책의 저자는 교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기를 쓰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고 생각하는 능력도 절로 자라게 된다. 그리고 글을 쓰는 힘도 생겨난다. 교육적 효과가 확실하고 교사와 아이들 사이의 믿음이 굳건하다면 인권의 문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도리어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이 더 인권적인 교육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가꾸지 못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삶을 가꾸기 보다는 부모가 만들어준 것을 수용하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학교에 옮겨져 와 아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교사가 알려주는 지식만 받아들일 뿐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성적은 우수한데 먼 이유를 물어보면 몰라요라고 답하는 학생이 요즘 눈에 띄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삶을 가꾸고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 일기쓰기 지도는 필요한 것 같다. 책에는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들이 들어있으면서 여러 가지 사례를 실어 놓고 있다. 이 책만 가지고도 일기지도 계획을 구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길잡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책이다. 이미 2학기가 시작한지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지금 적용하기는 아마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 되면 내년이라도 아이들의 삶을 가꿀 수 있는 일기지도를 해보고 싶다. 나부터도 그래야 하겠다. 부디 작심삼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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