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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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책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심지어 이제는 전자책의 등장으로 책이라는 매체에 접근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자신의 폰을 켜고 터치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는 사람은 꽤 드문 편이다. 세계 출판률 7위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읽는 사람만 읽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출판사가 영세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벼리라고 부르는 자녀에게 마치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쓰여 졌다. 과거 책에 미치고 책만 알고 살아간 사람들의 옛이야기를 통하여 독서가 무엇이며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 나오는 독서광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자극하고 독려한다.

 

물론 옛사람들과 오늘날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금물이다. 게다가 오늘날 사람들이 옛사람들보다 책을 안 읽는다고 비판한 점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비교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실용적 관점으로만 접근해 수험서 위주의 책이 제일 잘 팔리는 현실에서 이 책에 주는 울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과거 독서가들은 독서를 어떻게 했을까? 독서는 크게 다독과 정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독이란 고래가 마치 한 번에 물고기를 빨아들이듯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밀도가 떨어지는 책들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을 때 적합한 방법이다.

 

정독은 소가 여물을 먹으면서 되새김질을 하듯이 읽는 것을 의미한다. 내용의 밀도가 높아 여러 번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을 읽을 때 적합하다. 주로 사서오경과 같은 기본 경전, 오늘날로 치자면 고전이 이에 해당된다. 고전보다 가볍고 물렁물렁한 책이 인기를 끄는 지금 깊이 생각해볼 말이다.

 

다독과 정독, 둘 다 독서가에게 필요하다. 특히 고전의 반열에 든 중요한 책의 경우 정독과 다독을 병행해야 한다. 정독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황, 이익, 박지원, 정약용, 특히 김득수와 같은 독서가들은 기본 경전의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들이 암기력이 뛰어나서 외운 것이 아니다. 정말 하루에 규칙적으로 여러 번 외워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거의 우공이산 수준으로 책을 읽었음을 알 수 있다. 조금씩이든 시간나는 데로 꾸준히 읽는다면 한 책을 만 번 이상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암기보다는 이해가 강조되는 시기고 무조건 암기의 부작용을 겪어봤기 때문에 외우기에 대한 찬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지식이든 최소한의 암기는 필요한 법이고 책에서 암기만 했다고 경전을 제대로 읽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외우기는 과거 선비들의 학습 방법 중 하나로 경전에 대한 그들의 열심의 결과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무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저자가 왜 그렇게 썼는지 따져봐야 하고 저자의 생각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음으로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 독서가들의 독특한 독서법이 더 있는데 바로 낭독 또는 음독이다. 오늘날 낭독은 시라는 장르에서 국한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교 외에서 낭독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마도 한자라는 함축적 의미를 가진 문자를 쓰던 시기를 벗어낫기 때문 아닌가 싶다. 여하튼 책을 읽을 때는 조용히 하는 것이 예의가 되었다. 설령 옆에 누가 있더라도 낭독보다는 묵독을 하는 것이 대다수 현대 독자들이다.

 

그러나 낭독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바고, 비록 입을 열지 않더라도 어감과 같은 말의 맛을 느끼기 위해 실제로는 입을 열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는 마치 입을 열어 읽는 것처럼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과거 종로담베가게 살인사건만 보더라도 낭독의 힘은 분명하며 과거 서구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가끔은 옛 선비들처럼 입을 열어 책의 글귀를 직접 읽는 것도 나쁘지 않는 듯 싶다.

 

위편삼절이란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을 너무 많이 읽어 그 가죽끈이 3번 끊어졌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다. 오늘날에는 많이 읽는다고 책의 끈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공자 흉내를 낼 수는 없다. 게다가 너무 많은 책이 출판되는 지금 한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은 왠지 미련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도 다시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듯 이미 읽었던 책도 특히 고전의 경우 다시 읽으면 새로운 맛이 느껴진다. 천성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진 못하지만 꾸준히 읽어야겠다. 그렇다면 나도 과거 독서가들에 버금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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