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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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연과 문명


동양과 달리 서양은 자연과 인간을 공존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이원론으로 구분하여 이를 정복 또는 지배해야할 대상으로 본다. 이는 그들 문명의 중심을 이루는 두 기둥,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공통의 생각으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존을 강조하는 동양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현대과학문명을 이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송나라 시기까지만 해도 우월했던 동양의 과학이 서양에 추월당한 것은 그들이 자연을 객체로 보고 관찰하고 연구하고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여러 나라들은 서구 열강에 짓밟힌바 있고 그 기억은 우리나라가 서양문명에 받아들이고 서양의 사고에 맞추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서양에서는 동양의 노자, 장자와 같은 사상가를 연구하고 자연의 공존에 대해 관심이 가지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문명의 고도화가 자연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그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을 완전히 분리시켜 인간을 자연의 우위로 놓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헤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에 비해 늘어난 자연재해와 상승하는 대기 온도는 자연의 변덕인 것도 있겠지만 인간의 문명에 영향 받은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자연과 문명을 인간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문명을 만들고 그 혜택을 받아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의 자식으로서 그 품을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 역시 인간의 문명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자연의 장엄함과 웅장함, 그리고 다양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모순적인 인간이다.

 

이 책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의 저자 호시노 미치오는 일본인으로 알래스카에서 장기 거주하며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다. 물론 단순한 사진작가라고 보기에는 그의 글이 예사롭지 않다.

 

일본은 동양이지만 서구의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인 전적이 있고 최근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국이다. 현대문명을 향유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래스카를 동경하여 그곳 사람들과 연을 맺고 그 삶을 관찰한 이 남자는 확실히 별종이다.

 

그는 많은 사진과 깔끔한 글로 알래스카라는 아직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이야기해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노래한다.

 

이에 따르면 알래스카라는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지금 매장되어있는 세계 최대급인 유전을 개발하려는 세력과 그곳의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보호하려는 세력이 맞부딪히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인간의 문명과 자연이 그 힘을 겨룬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시간은 근대에 들어와서 항상 문명의 편이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은 호시노 미치오의 시간에서 이미 파괴되고 있는 중이고 유전개발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하니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원주민들의 삶이 최선이라는 보장이 없는 이상, 그들 전통이 무너져가는 것이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회복지제도1)처럼 분명 미국의 개발과 개입으로 그들이 얻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고 미국의 자본주의적 삶이 최선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땅을 개인이 소유하고 자연을 개발하는 행위가 인간의 삶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집을 구하기 힘들어 결혼을 포기하는 남녀가 늘어나는 지금 땅의 사유화가 옳은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경제논리로 재단하여 불법침입 운운하는 것은 전에 읽었던 나무소녀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과연 땅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이와 대조적으로 알래스카 사람들의 삶은 자연친화적이다. 그들은 자연을 경이로 대하고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고래를 잡으면서 고래에 대한 감사제를 올리는 그들의 모습2)은 그들이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불교 용어를 차용하면 인드라망 사상이다.3) 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야할 존재로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문명의 폐해가 큰 탓인지 이들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이 자연이 없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임을 알고 있으며 자연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케니스 누콘처럼 기존의 삶을 고수하는 것도 나름 멋진 일이긴 하지만 인간의 문명은 기본적으로 그 생존을 위해 탄생한 것이다. 과연 문명이 사라지면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멋진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케니스 누콘과 같은 사람도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고 집이라는 인간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든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아내라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해보자.

 

우리는 자연 속에 살아가지만 결코 자연과 같진 않으며4)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다. 게다가 자연은 변덕스럽기도 하며 언제든지 인간의 삶을 침범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실 보통 우리가 예찬하는 자연은 이미 우리 손에 길들여진 우리의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 즐길 수 있는 자연으로 동물원에 있는 동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연을 다룰 능력이 있는 특별한 존재다. 또한 동시에 자연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또한 우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가 자연과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의미한다. 자연의 변덕에 대해서는 맞서야겠지만 자연의 질서에 대해서는 순응하는 것이 문명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자연의 질서를 아예 붕괴시키는 것은 문명의 근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다. 알래스카 원주민처럼 자연을 경이로 보는 샤머니즘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자연에 예의를 갖추는 그들의 정신은 배울 필요가 있다. 사실 인간의 만든 많은 발명품은 자연에서 따온 것이 많다. 인간이 만든 사회질서가 동물들의 사회질서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아직도 우리는 자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젊은 원주민의 삶


한편으로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호시노 미치오가 이 책을 낼 무렵 이미 그들의 삶은 전통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하긴,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코카콜라를 먹는다고 하는데 미국 땅임이 분명한 알래스카가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원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자의 친구 미러처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원주민들이 많은 모양이며, 동시에 자살률도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원주민들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에 해당되니 아마 차별도 받을 것이다.

 

과거 인디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는 듯 하다. 정치적 알력 문제가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보호구역을 설정하는 것만 가지고는 원주민의 삶을 보장해줄 수 없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그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곧 있으면 사회에 나오게 된다. 한국 사회는 과연 이들을 품을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것이 긍정심리학의 한계다. 기본적인 사회구조가 모든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그들이 드는 사례들은 다 일부로 그와 비슷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 중에 실패한 사람들도 상당수라는 것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미국의 동화정책에 의해 그들의 전통과 문화는 해체된 상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미국 사회에 그들이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정신적 아노미 현상에서 알래스카 젊은이들은 방황한다. 이들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교육이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책 96쪽에 따르면 서로 다른 부족들이 손을 잡고 조금씩 일어서려 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미미한 움직임이지만 이는 분명 희망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다.

 

최근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을이 혼자서 갑에게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자신이 을이라면 다른 을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자기 몫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1) 책에 따르면 이 사회복지제도가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다.

2) 비뚤어지게 보면 악어의 눈물이긴 하다. 그리고 굳이 잡을 필요가 없는 고래를 관습에 의해서 잡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정말 자연친화적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그냥 과거에 해왔던 데로 하는 것일 수도?

3)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에 의존한다.’라고 해야 옳다. 식물은 다른 생물에 의존하지는 않으니까.

4)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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