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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센의 읽기 혁명 -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가 들려주는 언어 학습의 지름길
스티븐 크라센 지음, 조경숙 옮김 / 르네상스 / 2013년 1월
평점 :
전통적인 언어 습득 방법
요즘 읽기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말이 많다. 저 미국에서도 문맹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방송이 있었다 하니 읽기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아예 읽고 쓸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 역시 의무교육의 힘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는 기초적인 것이다. 오늘날 현대사외에서 요구되는 읽기능력, 흔히 문해능력이라고 부르는 이 능력은 문맹을 면하는 것보다 더 고등능력을 의미한다.
기초적 문맹이 거의 사라진 한국에서 이제 문맹의 기준을 한층 더 높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학교에서 추구해야할 것이기도 하다.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 사람들 중 몇이나 문맹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복잡하거나 긴 글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상당수가 문맹이 아닐까 싶다. 한국이 독서 수준은 처지지만 인터넷 강국이 된 것은 어쩌면 짧은 글과 단순함을 좋아해서 아닐까?
물론 짧고 간단하게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을 지나치게 간추리게 되면 그 내용이 손상된다. 글 쓰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내용의 손실 없이 독자를 배려하기 위하여 노력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짧고 단순한 글만 읽을 줄 아는 것은 큰 문제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공교육 학교들은 그동안 학생들의 언어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문법을 배우게 하고 이를 꾸준히 연습하여 읽히게 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는 외국어 습득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야 경향이 달라졌다지만 내가 받았던 학교 교육에서 영어 공부란 부지런히 어휘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고 이를 계속 공책에 되풀이하는 연습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영어 실력은 좋지 않다. 더불어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가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언어 습득 방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좋은 강사를 둔다 하더라도 문법실력이 언어능력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우리가 한국말을 할 때 무슨 문법을 고려해가며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문법이란 필요할 때 잠깐 보고 교정하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굳이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납득이 가면 순식간에 그 문법을 사용하게 된다.
언어를 배우는데 중요한 것은 연습이 아니라 이해 아닐까? 연습과 이해를 구분 짓는 것이 어색한 것은 인정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해오던 낱개 낱말과 문법을 계속 외우고 쓰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우리가 기존의 언어 습득 방법을 버린다면 그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자발적 읽기의 힘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크라센은 남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육학 교수로 외국어 습득 이론을 정립한 언어학자로 유명하다. 또한 자연 접근법의 공동 창시자이며 이민자 학생들을 위한 영어 교수법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자발적 읽기’라는 방법을 제안한다. 읽기는 독서를 의미하고 자발적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책을 선정해서 하는 독서가 아니라 학생이 자발적으로 책을 선택함을 의미한다. 즉, 학생이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하여 수행하는 독서를 의미한다. 이는 분명 그동안 학교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학교만 보더라도 양서를 구분하여 권장도서목록을 만들어 배포하고 최근에는 독서이력서를 작성하라고 권하고 있다. 이는 입학사정관제를 고려한 정책이기도 한데 분명 크라센이 주창하는 ‘자발적 읽기’와는 대치되는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통계자료와 논문은 ‘자발적 읽기’를 할 때 학생들의 리터러시 능력이 다른 어떤 경우보다 높게 상승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책의 내용만 가지고는 분명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간단히 말하면 반복훈련과 연습만으로 언어를 배우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를 하나하나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너무 힘들 일이라는 이야기는 누가 봐도 합리적일 것이다.
그가 내세운 근거들은 대개 미국 학교를 관찰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니 한국에서도 과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화책과 TV
흔히 만화책과 TV는 독서에 방해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나 역시 아이들이 만화책만 읽는 모습을 보면서 만화책을 금지시켜야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었고 아침시간에는 만화책을 금지시킨 적이 있다.
하지만 크라센은 이 책에서 만화책은 ‘가벼운 읽기’로서 ‘더 깊이 있는 책 읽기’로 가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외국어 역시 만화책 읽기로 해결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확실히 만화책에 나오는 어휘나 문장들은 일반 그림책이나 아동문학과 비교해 봐도 그렇게 뒤처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국 만화책의 경우 학교 공부에 초점을 맞춰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내용의 것이 많고 또 아이들도 만화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그냥 그림을 보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만화책을 어떻게 읽힐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TV의 경우도 저자의 말에 따르면 부정적인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면 독서를 덜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TV를 더 많이 보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몇몇 연구에서는 TV를 시청하면 학업성취도가 약간 증가한다고도 한다. 단, 이 상관관계는 하루에 약 2시간 정도 TV를 시청할 때만 나타난다.
TV는 과도할 때만 부정적인 영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TV를 탓하기보다는 흥미 있는 책을 아이들이 접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나만 하더라도 TV만 계속 보지는 못한다. 독서를 더 흥미 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선이다.